"아저씨는 지금도 혼자 사슈?"

아내에겐 미안한 노릇이지만

등록 2009.02.13 10:51수정 2009.02.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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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퇴근길에 역전시장에 들렀습니다.

시장은 자주 들르는 편인데 재래시장인 역전시장은 대전역의 바로 지척에 있지요.

 

늘상 약두구리가 되어 노상 약으로만 사는

마누라가 아침에 출근하는데 퇴근하면서 사 오라는 게 있어서였습니다.

 

탑승한 613번 버스를 대전역에서 내려 역전시장으로 들어섰지요.

먼저 콩나물을 1천원어치 샀습니다.

 

총각이 파는 콩나물은 굵은 것과 가는 것도

덩달아 취급하는데 우리 식구들은 가는 콩나물을 좋아합니다.

 

“이걸로 천원어치 주세유. 그나저나 설은 잘 쇠었슈?”

단골이랍시고 그리 인사를 하니 총각은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덕분에...”라고 금세 화답을 했습니다.

 

아울러 평소에도 많이 주는 콩나물을

어젠 얼추 한움큼이나 더 얹어주지 싶었습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은 인지상정이라고 그러자 마치 횡재한 기분이더군요!

 

이어 역시도 단골로 가는 생선을 파는 노점의 할머니께 다가갔지요.

“안녕하셔유~!”

 

‘생선 할머니’께서도 이내 저를 알아보시곤 활짝 웃으셨습니다.

“홀아비 아저씨 오셨네? 설은 잘 보냈수?”

 

“네, 감사합니다. 동태 한 마리만 주세유.”

할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동태를 도마에 올려놓자마자

탁탁 칼로 자르곤 배까지 갈라서 내장을 빼 손질을 해 주셨습니다.

 

검은 봉지에 동태를 담아주시는 할머니께

함께 취급하는 물오징어의 값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본디 여섯 마리에 5천원인데

얼마 안 남은 거라서 떨이로 한 마리를 더 줄 터이니 가져가라더군요.

 

하지만 수중의 ‘현실’이 맞지 않아 오징어는 다음에 사기로 했지요.

“할머니, 안녕히 계셔유.”

“근디(데) 아저씨는 지금도 혼자 사슈?”

 

그 질문에 저는 그저 씩 하니 웃고 말았습니다.

“또 와유, 홀아비 아저씨~”

 

아내가 버커리처럼 자리보전을 한 지도 벌써 몇 년 째입니다.

하여 제가 어제처럼 장을 보는 경우는 이제 어쩌면 당연지사의 일과와도 같습니다.

 

간혹 기운을 차리는 경우에 아내는 못 사는 살림에

일조한답시고 백화점에 나가 알바 주부사원으로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이고 보니 이튿날엔 더욱 꿍꿍 앓기가 일쑤지요.

 

재작년의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그날도 아내는 평소 좋아하는 매운탕을 먹고 싶다며

시장에 가서 싱싱한 동태 한 마리와 무를 사오라더군요.

 

그래서 어제 뵌 생선 할머니를 찾았지요.

근데 저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사는 동태를

가만 보아하니 그저 동태를 숭덩숭덩 썰어주기만 할 뿐

정작 동태의 내장까지 쏙 빼 주는 수고는 없어 보였습니다.

 

하여 제 차례가 왔기에 어떤 기지(機智)를 발휘했지요.

“할머니,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저는 아예 내장까지 빼 주셔유.”

 

할머니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바빠서 그렇게는 안 해 주는 건디(데)...!”

 

저는 결정적 한 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지(제)가 홀아비라서 그런 거니께(까) 이해하셔유.”

 

그러자 할머니의 눈은 금세 번뜩이면서 손 또한 요란스러워졌습니다!

“저런! 쯧쯧~ 어쩌다가...”

 

그 이후로 생선 할머니는 저만 보시면

어제처럼 홀아비로 아예 자리매김을 하신 것입니다.

홀아비의 사칭은 분명 멀쩡한 아내에겐 실로 미안한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홀아비 ‘사칭’은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있어

때론 오징어 한 마리라도 ‘불쌍하다’며 공짜로 더 얹어주는

모티프의 일환이기도 하기에 굳이 나쁜 짓은 아니(었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장에서의 그같은 에피소드는 집에 와서

아내에게도 떠벌려 함께 웃곤 하니까 말입니다.

 

끝으로 아내가 어서 건강을 되찾아 장을 보는 일은

이제 주부인 아내가 모두 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2009.02.13 10:5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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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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