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 선생님은 이중인격체, OOO 선생님은 허당?

[과활마당 생생리포트 ③] 충화초등학교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

등록 2009.02.18 09:20수정 2009.02.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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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과활마당의 하이라이트인 셋째 날. 이틀이나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눈이 쉽게 떠지지 않았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결국 아이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꾸벅 졸고 말았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부디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했기를.

과활마당의 ‘과활’은 ‘과학 공감 활동’의 줄임말로,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한국과학창의재단 주관으로 진행되는 과학 봉사활동이다. 대학생들이 안동, 울산 등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져 아이들과 3박4일간 다양한 과학 체험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애정을 심어주는 것이다. 과활마당은 활동 기간에 따라 1차와 2차로 나뉘어져 1차는 14일에, 2차는 19일에 시작했다.

그 중 2차인 부여 팀은 충화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과활마당을 하게 됐다. 충화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3명인 작은 학교다. 그 중에서 과활마당에 참여한 아이들은 24명. 48개의 똘망똘망한 눈이 오늘 진행할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로 빛나고 있었다.

과활마당 셋째 날 시작!

이날 첫 수업의 이름은 ‘에디슨 전구 만들기’였다. 즉, 에디슨이 만든 전구의 원리를 알아보는 실험 시간이었다. 두 집게에 필라멘트 역할을 하는 니크롬선을 끼우고, 그 위에 플라스틱을 씌우고, 이에 건전지를 연결하면 금세 ‘충화표’ 전구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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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에 들어온 불빛을 관찰하는 손나연(3학년) 학생과 이민준(1학년) 학생. ⓒ 이지수


하지만 이것으로 수업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필라멘트의 길이에 따른 전구의 밝기와 빛이 지속되는 시간을 알아봐야 했다. 곧 숫자를 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목적실을 가득 채웠다. 60초가 넘어가는데도 아이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인내심이 남다른 아이들이었다. 아니면, 역시 순수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빛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덕에, 지쳐있던 선생님들의 표정도 한층 더 밝아졌다.

신나는 '호버크래프트 만들기'


그 다음 수업은 ‘호버크래프트 만들기’였다. 호버크래프트(hovercraft)는 '물에서도, 육지에서도 자유자재로 이동 가능한 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수업은 선생님들이 일부러 셋째 날로 미룬 야심찬 프로그램이었다. 역시나 아이들의 반응은 최고였다.

하지만 호버크래프트 만들기는 에디슨 전구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특히 전선 끝의 피복을 벗겨 전선을 물체에 연결할 때는 저학년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도와주기에 무척 바빴다.

그런데 수업 도중, 정유진(4학년) 학생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선생님, 이것 좀 봐요!” 아래를 보니, 정유진 학생이 건전지 포장 껍데기와 청테이프를 이용해 안경을 만들어 쓰고는 씨익 웃고 있었다. 기발한 생각이었다. 내게는 단순히 쓰레기로만 보였던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재료가 되었다.

정유진 학생은 옆에 앉아있던 윤정선(2학년) 학생도 안경 만들기에 동참시키고서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아이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잠시 호버크래프트를 만들다 한눈을 팔긴 했지만, 아이들은 참 다양한 방법으로 선생님들을 즐겁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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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버크래프트 만들기 시간에 장난치고 있는 정유진(4학년) 학생과 윤정선(2학년) 학생. ⓒ 이지수


몇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모든 아이들이 호버크래프트를 완성하고 경주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임의로 만들어놓은 경주 코스 옆에 우르르 모여섰다. 1대 1 토너먼트 경주로 시작된 게임 앞에서 아이들은 친구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참가자가 많아서 거의 1시간 동안 진행된 경주의 최종 우승은 최동현(6학년) 학생이 차지했다. 최동현 학생은 우승 소감도 1등다웠다.

“기쁩니다! 이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고요! 저를 열심히 응원해준 우리 친구들에게 이 영광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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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버크래프트 경주에서 1등한 최동현(6학년) 학생. ⓒ 이지수


OOO 선생님은 이중인격체, OOO 선생님은 허당?

경주로 후끈했던 열기가 조금 가라앉은 뒤, 학생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체험수기 백일장’을 진행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에 대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장난도 치고 스티커도 붙이며 재미있게, 그리고 제법 진지하게 체험수기를 완성했다.


체험수기를 걷은 뒤에는, 이틀 동안 고생해서 만든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시간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님들도 함께 계셨기 때문에 괜히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는 아이들의 밝은 표정에 마음이 후련해졌다.

과활마당이 끝나고 관사로 돌아온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체험수기를 차례대로 봤다. 사실 아이들의 체험수기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약속한 이상 순위를 가려내야 했다. 그런데 체험수기 중 하나가 선생님들의 눈에 띄었다.

“신기현 선생님은 어떨 땐 여자 같고 어떨 땐 남자 같아서 이중인격체인 것 같아서 신기했다. (...) 블랙홀 선생님(양혜정 선생님의 별명)은 우리랑 같이 선생님을 하면 망치는 일이 많았다. (,,,) 한나희 선생님은 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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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백일장 글 부문에서 1등을 한 유지상(6학년) 학생의 체험수기. 선생님들에 대한 평가를 솔직하고 예리하게 적었다. ⓒ 이지수


유지상(6학년) 학생의 글이었다. 물론 이를 부정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겨우 2박3일 동안 함께 있었을 뿐인데, 선생님들을 이렇게 솔직하고 예리하게 평가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유지상 학생을 1위로 선정했다. 다음 날, 유지상 학생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환했다.

"선생님, 다음에 또 오세요!"

이 날은 4일 중 가장 화창하고 맑은 날이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에어로켓을 만든 뒤 운동장으로 향했다. 에어로켓과 연결된 페트병을 힘차게 밟으면, 그 안에 들어있던 공기의 압력으로 에어로켓이 멀리 날아갔다. 200m까지 날아가는 에어로켓을 보면서, 나도 아이들과 멀리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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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에어로켓을 날리는 아이들. ⓒ 이지수


그 와중에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을 찍었다. 조금은 사심을 품고, 아이들에게 어느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지 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요? 전부요!”

손나연(3학년) 학생과 윤정선(2학년) 학생이 말했다. 그러고서는 카메라에 대고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덧붙였다.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시키지 않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기에 놀라기도 했다. 그날 윤정선 학생의 목소리는 헤어진 이후에도 내 귓속을 떠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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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찍는 도중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말한 윤정선(2학년) 학생. ⓒ 이지수


졸업하더라도 선생님들을 잊지 말아줘!

과활마당이 진행된 3박4일간, 아이들은 한 때 ‘원수’였고, 또 한 때는 ‘친동생’이었다. 첫 날 산만하고 어색했던 아이들은, 마지막 날 직접 종이를 내밀며 선생님의 연락처를 묻는 귀엽고 정 많은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물론 순수한 모습만큼은 4일 동안 한번도 변함이 없었지만.   

원래 과활마당 선생님들의 목적은 ‘봉사’였다. 4일 동안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리어 나는 나와 무려 10년 이상 차이나는 아이들로부터 귀중한 ‘사실’을 배웠다. ‘사람간의 정’은 ‘나이’라는 벽을 언제든 쉽게 넘나들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심지어 형식적으로 찍는다는 단체 사진 한 장조차 성공하지 못했지만, 단체 사진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눈만 감으면 아이들의 행동과 말투가 떠오르니 말이다.

하지만 잊는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다. 과활마당이 끝난 지금은 홈페이지를 통해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오늘은 충화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는 날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떠나더라도, 선생님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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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화초등학교 학생들과의 단체 사진. ⓒ 이지수

#과활마당 #과활 #충화초등학교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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