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는 마음과 책을 읽는 손길

[헌책방 나들이 189] 서울 신촌 〈공씨책방〉

등록 2009.03.05 16:14수정 2009.03.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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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공씨책방>이 자리한 서울 신촌 밤거리. ⓒ 최종규


 (1) 책읽기란?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으면 한 해에 삼백예순다섯 권입니다. 하루에 책 두 권씩 읽으면 한 해에 칠백서른 권입니다. 하루에 책 세 권씩 읽으면 한 해에 천아흔다섯 권입니다.


오늘날 같은 세상에서 날마다 책을 한두 권, 또는 서너 권씩 읽기란 거의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지지만, 책은 느긋함과 한갓짐만으로는 읽어내지 못합니다. 밥벌이를 안 한 다고 하여 더 많이 읽어내는 책이 아니며, 밥벌이를 한다고 하여 덜 읽게 되는 책이 아닙니다.

제 책읽기를 더듬어 보면, 한 해에 천 권 사서 읽기를 1999년부터 넘겼습니다. 사서 읽는 책만 이만큼이니, 사지 않고 책방에 선 채로 살피거나 읽는 책은 더욱 많습니다. 이리하여 집에 모셔 두게 되는 책은 여러 만 권에 이르게 되고, 책이름만 훑은 책은 수천만 권을 웃돕니다. 세상 모든 책을 다 훑기조차 어렵기는 할 터이나, 꾸준하게 바지런을 떨면 웬만한 책을 어렴풋하게나마 훑어낼 수 있습니다.

책 천 권이란 숫자는 참으로 우습습니다. 흔히들 이런 숫자에 크게 짓눌리는 듯한데, 만 권을 읽든 십만 권을 읽든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백만 권 읽은 분께서 세상을 그릇되게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천만 권 읽은 분께서 세상을 비뚤어지게 바라보면서 허튼 짓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뽐내는 이라 할지라도, 올바르게 몸가짐을 추스르지 못하면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아무리 빼어난 몸매와 얼굴을 자랑하는 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말을 일삼으면 사랑받지 못합니다.

한 권을 읽어도 꼼꼼히 잘 읽을 노릇입니다. 두 권을 읽어도 가슴으로 새길 노릇입니다. 세 권을 읽어도 온몸으로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네 권을 읽어도 기꺼이 제 얕은 지식이나마 세상과 널리 나누면서 펼쳐 보일 노릇입니다. 책이란, 머리속에 가두려고 읽는 책이 아니니까요. 책이란, 머리가 아닌 팔다리에 새기면서 가슴으로 삭이고 몸뚱이로 녹여내는 책이니까요.

헌책방 〈공씨책방〉 아주머니는 어느새 열여섯 해째 꾸준하게 뵙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 〈공씨책방〉에 찾아오던 날을 더듬으니, 그때만 하여도 저는 열아홉 푸름이였고, 헌책방 아주머니는 한창 젊은 날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한창 젊은 날을 맞이하는 셈이고, 헌책방 아주머니는 할머니 나이로 다가섭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만나거나 스친 책이 몇 권이었을까 어림해 보고, 또 이곳에서 장만한 책은 또 몇 권이었을까 헤아려 보면서, 스스로 놀랍니다. 그리고, 꽤나 많은 책을 오랜 나날에 걸쳐 사 읽으면서 제 삶을 얼마나 가꾸었는지 돌아보는 동안, 참슬기와 참사랑과 참믿음을 잘 추스르고 있나 아닌가를 짚으면서 부끄러워집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모자라다 하여도 앞으로 하나둘 채우면서 보듬으면 되니까, 아직까지 어설프다 하여도 이제부터 조금씩 북돋우면서 가꾸면 되니까, 아직까지 뒤떨어져도 찬찬히 몸과 마음을 갈고닦으면서 거듭나면 되니까, 모자라고 어설프고 뒤떨어진 그대로를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생각합니다. 제 눈과 머리와 가슴과 몸에 들어온 책 여러 만 권에 머물지 말고, 오늘부터 새롭게 만날 '새로운 책 한 권'에 마음을 쏟자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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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발자취를 보여주는 낡은 사다리와 촘촘히 꽂힌 책꽂이. ⓒ 최종규


 (2) 이야기 담는 책

헌책방 아주머니한테 꾸벅 인사를 합니다. 새해 인사도 드리고 안부 인사도 건넵니다. 아주머니도 책손한테 꾸벅 인사를 하면서 새해 인사와 안부 인사를 건넵니다. 해가 갈수록 서로 늙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이처럼 늙어가는 나이를 깨달으면서 말매무새며 몸매무새며 새삼스레 여미게 됩니다. 다른 헌책방 소식을 주고받다가는, 돌아가신 분과 떠나가신 분 뒷자리가 쓸쓸하지 않기를 비손합니다. 지금 살아내는 헌책방 모두 튼튼하게 이어나가기를 거듭 비손하고, 서로서로 책 하나로 맺은 이음고리가 앞으로도 더 나은 책과 삶으로 새로워지기를 비손합니다.

몇 마디 인사를 마친 다음 슬그머니 골마루 안쪽으로 들어옵니다. 제가 늘 처음으로 들여다보는 자리에는 다른 책손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옆 골마루로 들어가 책을 살핍니다. 안쪽에는 음반을 빼곡히 꽂아 두는 자리로 싹 바꾸셨군요.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 사진 몇 장을 찍다가 《유종호,염무웅 엮음-문학과 상황인식》(전예원,1977)이라는 묵은 책을 봅니다. 예전에 읽은 적이 있던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 얼마쯤 읽다가 그만둔 책이라고 떠오르지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 잘 생각나지 않으면 다시 처음부터 읽을까?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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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최종규

.. [정한모] 지금까지 신문학사들이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문학양식에 의한 문학부터 기점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잘못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양식에 의한 문학의 현상이 문학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물론 표현 자체가 문학의 생명이긴 합니다만, 내면의 의식이나 정신을 생각할 적에 내부적 발단이나 출발에 관점을 두면 근대문학의 기점은 충분히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김주연] 제가 왜 언어 문제를 중시해야 되느냐는 것을 말했냐 하면 이미 우리 나라는 오랫동안 국한문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그냥 받아들일 때, 그러면 언어학적인 방법으로 문학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란 건 어떤 편법 내지 한계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일관된 논리로써 적응될 수 없지 않는가 하는 것이고, 도 하나는 언어를 중시함으로써 문학사의 시대 구분에 좋은 편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을 우리 말로 자각한 것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문화의식이니까요.
[김현] 연암이 한문으로 글을 쓴 것은 당시 사대부 계층이 사용하는 문자는 한문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절감토록 하기 위해서 한문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밑바탕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지 않은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겠고요. 어쨌든 국문의식이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  (17∼25쪽/한국근대문학의 기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마주이야기'를 모은 《문학과 상황인식》입니다. 이 책이 나오던 때만 하여도 '중견 + 새내기'였던 숱한 평론가인데, 이제는 '거의 모두들 돌아가신 님 + 아주 오래된 고참'입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한참 젊은 날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한 줄 두 줄 읽으면서, 이분들이 아직까지 살아 있으시다면 당신들 젊은 날 이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까 하면서 가만히 눈을 감게 됩니다.

.. [김종길] 물론 일본에서도 한시를 쓰기는 했지만 역시 자기 나라 말로 쓰는 시형을 완성해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내려왔어요. 거기 비해서 우리 나라는 우리 한글을 15세기에 만들어 놓고도 실제로 지식층들이나 문화인들이 별로 사용하지 않고 해서 이조 말엽까지 압도적이었던 것은 여전히 한문이어서 시조나 가사 형식이 있어도 그것은 개화기까지 큰 세력을 갖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잖아요?
[조지훈] 우리 글에는 한문이 너무 많이 침식되었기 때문에 우리 말은 한자어의 토 구실밖에 안 되는 형편이었으니까 순수한 우리 말 자체를 만드는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지요.
[김우창] 문제는 한국 시인들이 지금까지 우리 언어를 방치해 두었다는 데 있지요 ..  (53∼55쪽/언어ㆍ사상ㆍ시대))

1970년대에 부지런히 이루어진 숱한 말다툼과 말나눔이 2010년을 바라보는 오늘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합니다. 평론가나 전문가나 학자한테는 좀 다를 텐데, 저로서는 마흔 해 가까이 묵은 이야기들이 '조금도 낯설'지 않고 '하나도 안 묵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직까지 더 피튀기며 나눌 이야기요, 앞으로 좀더 파고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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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안쪽에 음반을 빼곡히 갖춘 자리를 새로 마련했습니다. ⓒ 최종규


조선 때에도, 개화 때에도, 해방 뒤에도, 197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갈고닦거나 빛내려고 애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애쓴 사람은 있으나 애쓴 흐름이 없고, 애쓴 모임이 아주 드물게 있으나 나라에서 힘껏 도운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 나라 지식꾼 가운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거나 손을 거든 사람을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는지요. 영어 프랑스말 독일말 러시아말 중국말 일본말 잘하는 전문 지식인은 수두룩하지만, 우리 말 잘하는 전문 지식인으로 누가 있을는지요.

잡지 《나그네》를 봅니다. 부산을 특집으로 다룬 1985년 1월호(10호)와 울릉도를 특집으로 삼은 1984년 8월호(5호)를 집어듭니다. 부산에서 헌책방 꾸리면서 부산 자료를 모으는 분한테 나중에 선물로 드리면 좋아하시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아마도 그분은 이 잡지를 한 부쯤 챙겨 놓고 있을 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부 인사를 건네는 김에 한번 전화라도 해 볼까.

잡지 《대학의 소리》 1989년 4월호(2호)를 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학생운동 한 축을 이루었던 이들이 엮은 잡지입니다. 이 잡지를 엮은 이들 가운데 퍽 여럿이 1990년대부터 책마을로 뛰어들어 책만들기를 했고, 이 가운데 몇 사람은 출판사 사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빠른가, 책이 늦는가, 사람이 더딘가, 세상이 쏜살같은가, 곰곰이 돌아봅니다.

사진책 《강위원-중국의 초상》(신유,1997)이 보여서 집어듭니다. 강위원 님 사진책은 여러 권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한 가지 더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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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신유

- 미니스커트에 뾰족구두로 한껏 멋을 낸 아가씨가 농산물 시장에서 손수레와 자전거를 조합해 만든 짐차에 농산물을 가득 싣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98.7.북경)
- 활기차게 등교길을 서두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서 중국과 조선족의 밝은 내일의 모습을 본다. (94.6.용정)
- 도로변의 소음도 잠의 유혹 앞에서는 속수무책인가 보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든 소녀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92.8.북경)

 그런데 길가 그물침대에 누운 소녀는 '잠이 들지 않'고 '책을 읽'고 있는데. 참으로 여러 모습을 골고루 찍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사진에 붙인 말은 그닥 가슴으로 와닿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강위원 님 사진은 당신이 찍으려 하던 사람들 삶으로 좀더 속깊이 다가서지 못한 탓이 아니랴 싶습니다.

《Peter Stewart-Korea, the next step》(Euromoney books,1994)이라는 책을 봅니다. 사진은 몇 장 안 실리고 온통 글인데, 사이사이 넣은 사진 가운데, 1990년대 첫무렵 서울 옛 궁궐에 놀러 온 여고생을 담은 사진이 돋보입니다. 손수건을 손목에 두른 모습, 이무렵 흔히 쓰이던 자동사진기, 운동화, 안경, 머리띠, 머리길이 들을 더듬어 봅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던 국철 사진이 하나 실립니다. 이 사진에 나오는 국철에는 선풍기가 달려 있습니다. 인천-서울 국철은 2000년대를 넘어서도록 선풍기 달린 차가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첫무렵까지만 하더라도 국철이나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요즈음처럼 '거부감'을 많이 느끼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지난날 국철에서 여느 사람들 모습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담아낸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제가 모를 수 있을 텐데,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전철이든 기차이든 이런 곳에서 '여느 사람 여느 삶'을 사진으로 꾸준히 담는 분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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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앉아서 책을 읽고 쉬는 자리에도 책으로 가득합니다. ⓒ 최종규


 (3) 책을 사는 마음

소설 《바스콘셀로스/이승덕 옮김-사막으로 간 연인에게 바친다》(청맥,1990)를 고릅니다. 이런 책도 우리 말로 옮겨졌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들은 거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광란자》와 《햇빛사냥》쯤만 알 뿐, 다른 작품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에서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하나만 수많은 해적판을 쏟아낼 뿐, 바스콘셀레스 수많은 다른 작품을 옮겨서 나누려 하지 않아요. 이분이 어느 한 작품에서만 빼어나고 다른 작품은 형편없을지 모릅니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치우쳐 먹기'가 아닌 '골고루 먹기'로 문학을 맛볼 수 있도록 애쓰는 책마을 일꾼이 너무 적지 않느냐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림책 《에즈러 잭 키츠/공경희 옮김-꿈꾸는 아이》(어린이중앙,2001)를 집어듭니다. 나라 안팎에는 《피터의 의자》라는 작품이 무척 알려진 그림책작가인데, '어린이중앙'과 '랜덤하우스중앙'에서 옮겨낸 키츠 님 그림책만 품절 또는 절판이라는 길을 걷고 있어서 시중 새책방에서는 구경할 수 없던 녀석입니다. 오늘 또 누군가한테 고마운 책 선물을 받았다는 느낌입니다. 헌책방 아니고서는 만날 길이 없는 책을 만났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사막으로 간 연인에게 바친다》도 헌책방 나들이를 했기 때문에 알게 된 책입니다. 오늘 구경하는 다른 책들 《Korea, the next step》도 그렇고, 《중국의 초상》이나 《대학의 소리》도 그래요. 《나그네》라는 잡지도 헌책방이었기에 고맙게 구경할 수 있던 책이며, 《문학과 상황인식》이라는 평론모음도 새책방은커녕 도서관에서조차 찾아볼 길이 없는 책입니다. 이러한 책들은 헌책방에서 오래오래 새 임자를 기다리게 되는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 마땅한 새 임자를 만나지 못하면 더 오래도록 다시 기다리기도 하지만, 책꽂이에 '또다른 새 헌책'을 꽂아야 하기 때문에 폐지수집상으로 떠나야 하기도 합니다.

하기는. 새책방 새책도 날마다 새롭게 나오는 다른 '새 새책'한테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책도 새책대로 돌면서 우리한테 새로운 이야기를 건넬 수 있어요. 아무리 훌륭하다 손꼽을 만한 새책들이라 하더라도 다른 새책이 꽂혀서 팔리도록 해 주어야, 우리 삶과 생각과 책 모두 발돋움하게 됩니다. 쌓이기만 할 수 없고, 쌓이도록 할 수 없습니다.

만화 《강풀-바보 1,2》(문학세계사,2005)을 봅니다. 오, 이런. 이 만화는 새책방에서도 살 수 있는 책입니다. 주머니 짐을 덜어 주는 셈이군요. 아니, 이 만화가 나와 있음을 오늘 처음 알았으니, 저로서는 새책으로도 아니고 헌책으로도 아닌 '책'으로 만난 셈이지만.

책으로 나온 지 네 해째인데, 그동안 강풀 님 만화 가운데 《바보》는 놓치고 있었군요. 응? 아닌가? 예전에 읽었는데 잊었나? 어쩌면, 참말, 예전에 읽고서 잊는 바람에 주책없이 한 질 새로 사들이는 셈 아닐까 슬며시 걱정이 되는군요. 아무래도 집에 갖추고 있는데 또 산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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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손이 찾는 책을 꼭대기에서 꺼내려고 사다리를 받고 올라간 <공씨책방> 아주머니. ⓒ 최종규


 (4) 책을 읽는 손길

책값을 셈합니다. "언제나 잊지 않고 찾아와 주어 고마워요." "무슨 말씀을요, 저야말로 늘 좋은 책을 살 수 있도록 갖추어 주시니 고맙지요." 헌책방 〈공씨책방〉 아주머니가 부르는 대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내밉니다. 아주머니는 종이돈을 한 장 두 장 세다가 "자, 여기요." 하면서 이천 원을 덜어 줍니다. "엇?" "돌아가실 때 차비로 쓰시라고요." "아이구, 안 주셔도 되는데."

가방에 책을 꾹꾹 눌러 담습니다. 헌책방 오는 길에 전철에서 읽고 사진가방에 넣어 둔 책을 꺼내 짐가방으로 옮겨 담습니다. 제법 두둑합니다. 모처럼 하는 서울 나들이였기에 헌책방 한 군데를 더 들르고 싶은데, 가방이 견디어 줄 수 있을까 근심이군요. 그래도, 우리 가방님께서 잘 버티어 주시겠지, 미안하지만. 정 안 되면 장바구니에 나누어 담으면 되고.

"다음에 또 들르겠습니다. 잘 계셔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꾸벅 인사를 남기고 돌아섭니다. 헌책방 아주머니는 문간에서 손을 흔듭니다. 다시금 고개를 꿉벅 숙이고 뒤뚱뒤뚱 걷습니다. 코끝이 살짝 찡합니다. 헌책을 만지느라 새까매진 손으로 코를 슥 비비다가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헌책 만진 그대로 사진기를 쥐어드느라 사진기에도 이 새까만 책때가 배었는데, 이 두 손은 책을 읽는 데에 부끄럽지 않은가, 그리고 사진기를 드는 데에 남우세스럽지 않은가 하고 새삼 되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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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으로 묶인 채 우리를 기다리는 전집붙이 책. ⓒ 최종규


술집 밥집으로 몰려가는 왁자지껄 사람들 물결을 헤집고 다음 헌책방으로 발길을 부지런히 옮깁니다. 건널목에 멈춰서며 별 하나 볼 수 없이 환한 서울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숨을 길게 들이마십니다. 건널목 신호가 푸른불로 바뀝니다. 다시 왁자지껄 사람들 물결과 섞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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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책 #책읽기 #공씨책방 #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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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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