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이 보고왔느냐고 물어본다는 세가지 보물은?

많은 사람이 찾아와 소원 빈다는 논산의 3대 명물

등록 2009.03.10 15:24수정 2009.03.10 16:33
0
원고료로 응원

논산에 사는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답니다. 바로 세 가지 보물을 보고 왔느냐는 것이랍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이 세 가지 보물은 논산에 사는 시민이라면, 아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볼만한 역사적인 유물임에는 틀림없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 세가지 보물은 바로 하나는 고려의 개국사찰인 개태사내에 자리잡고 있는 철확이며, 두 번째는 조선조 영조때인 1731년 축조돼 자기 나이만큼 왕래하면 그 해의 액운이 소멸된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강경 미내다리이고, 세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빈다는 관촉사의 은진미륵입니다.

 

이 세가지 보물의 공통점은 모두 논산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리적 특성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며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는 점입니다.

 

[보물 1] 재앙에서 백성을 구하고 풍년을 들게 했다는 개태사 철확

 

a

지름이 무려 3m에 이르는 철확 개태사내 우주정에 보관되어 있는 철확 ⓒ 김동이

▲ 지름이 무려 3m에 이르는 철확 개태사내 우주정에 보관되어 있는 철확 ⓒ 김동이

 

특히, 이 중에서도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라는 나라를 세우면서 개국사찰로 정했던 개태사의 철확(鐵鑊)은 단연 그 크기나 철확에서 풍기는 위엄만큼 그 안에 숨겨진 사연도 많습니다.

 

충남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철확은 개태사 내 우주정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솥안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하나씩 던진 수많은 동전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철확은 본래 승려들이 식사를 위해 밥과 국을 만들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며, 그 크기는 지름이 무려 3m에 이르고 높이는 1m, 둘레는 9.4m로 성인남자 서너명이 힘껏 팔을 뻗어야 겨우 닿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a

무엇이 그리 간절했기에 동전을 던지며 빌었을까 철확속에 던져진 수많은 동전은 이곳에서 소원을 빌었던 많은 이들의 자취이다. ⓒ 김동이

▲ 무엇이 그리 간절했기에 동전을 던지며 빌었을까 철확속에 던져진 수많은 동전은 이곳에서 소원을 빌었던 많은 이들의 자취이다. ⓒ 김동이

이 철확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는지는 현재 보관되어 있는 상태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점은 실로 대단하지만, 그 단단한 쇠로 만들어진 철확이 지금은 이빨이 빠진 것처럼 주둥이가 듬성듬성 깨져 있다는 것은 무슨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외모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철확은 많은 시련이 있었는데, 철확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해의 일이다. 큰 스님 한 분이 개태사를 찾아와서 얼마 후 대홍수가 나서 본당의 부처님이 위험할 것이니 이 솥으로 본당에 이르는 물길을 막으면 불상은 안전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스님들은 가마솥으로 본당 앞을 막았다. 과연 대홍수가 났는데 불상은 안전했지만 가마솥은 떠내려가 지금의 고양리 다리 근처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 쇠솥으로 제방을 쌓으면 수해를 막아주고 풍년이 들게 한다고 한다」 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점 하나, 과연 이 철확의 뚜껑은 어디에 있을까요? 가마솥이 있다면 그 뚜껑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 철확의 뚜껑은 개태사 인근 천(川)의 어디 엔가에 묻혀 있으며, 지금도 흐린 날에는 '윙'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죠.

 

여하튼 이 철확은 고려의 개국사찰인 개태사 내에 자리 잡고 있고, 비록 전설이긴 하지만 재앙으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올 정도로 영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지금과 같이 경제가 어렵고 마음이 심난할 때 머리도 식히고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라도 개태사 철확을 찾아 소원을 빌어보는 건 어떨까요.

 

[보물 2] 다리를 건너면 액운을 없애준다는 강경 미내다리

 

a

강경 미내다리 나이만큼 다리를 왕래하면 그 해의 액운을 없애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미내다리의 모습. ⓒ 김동이

▲ 강경 미내다리 나이만큼 다리를 왕래하면 그 해의 액운을 없애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미내다리의 모습. ⓒ 김동이

강경 미내다리 또한 논산지역의 명물일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강경 미내다리'를 보고 왔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유명한 명소입니다.

 

미내다리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 바(미내다리 전설만 알았어도 액운 끝인데... 2.13자)가 있어 미내다리에 대한 기록만 잠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내다리는 강경의 대표적인 역사유적으로, 이 지역의 명물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강경 미내다리를 보고 왔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중요성을 반영하듯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승되어오고 있다.

 

옛날 미내다리 부근의 개울에 다리가 없어 늘 아쉬움을 느끼던 이곳 사람들이 돈을 걷어 마을의 두 청년에게 다리를 놓게 시켰다. 다리를 다 놓고 보니 경비로 쓰고 남은 엽전이 얼마가 남았다.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두 청년은 나중에 다리를 보수할 때 쓰기로 하고 남은 엽전을 모두 다리 밑에 묻어두었다.

 

그리고서 얼마 후에 한 사람이 우연히 병을 얻어 눕게 되었다.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지만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심해져만 갔다. 그러자 그의 다른 친구가 전에 묻어 두었던 엽전이 있음을 생각하고는 이것을 파내 친구의 병 치료에 쓰려고 다리 밑을 파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리 땅을 파도 엽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병든 친구는 병세가 더욱 위중해져만 갔고,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구렁이로 변했다. 그리고 집을 나온 구렁이는 미내다리 밑으로 스스로 들어가 흔적을 감추고 말았다. 이로부터 이상하게 이 다리는 점점 토사에 묻히게 되고 통행하는 사람들도 적어졌다.

 

그러고서 다시 상당한 세월이 지나게 되면서 미내다리는 거의 폐교(廢橋)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이에 일부 주민들은 다리돌을 마음대로 빼다가 집으로 가져가려고 까지 했다. 그러자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천둥이 쳤다. 이에 겁에 질린 주민들이 다시 돌을 갖다 놓자 천둥이 그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미내다리 돌은 구렁이돌이라 하여 누구든 함부로 손을 대거나 훼손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정월 보름날 이 다리를 자기 나이만큼 왕래하면 그 해의 액운이 소멸된다고 하며, 추석날 이 다리를 일곱 번 왕래하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미내다리 안내간판 전문>

 

[보물 3] 우리나라 최대 석불 관촉사 은진미륵

 

a

관촉사 은진미륵 아침햇살에 비쳐지는 불상의 미소가 더욱 자비스러워보인다는 관촉사 은진미륵. 지난해 석가탄신일에 찍은 모습. ⓒ 김동이

▲ 관촉사 은진미륵 아침햇살에 비쳐지는 불상의 미소가 더욱 자비스러워보인다는 관촉사 은진미륵. 지난해 석가탄신일에 찍은 모습. ⓒ 김동이

간절한 소원을 비는 또하나의 보물은 바로 관촉사 은진미륵입니다. 이곳은 시도때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두손을 모아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대학 입시를 앞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100일 기도를 위해 많이 찾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논산 시민들은 물론 전국의 많은 불자들이 관촉사를 찾기도 합니다.

 

지난 2007년 5월에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청장이 관촉사를 찾아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회를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도 유청장은 은진미륵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술이 계속된다면 논산의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집필할 생각이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고대의 것으로서는 우리나라 최대의 석불로 알려진 은진미륵은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그 역사는 태조 왕건의 세 번째 부인의 아들인 고려 광종 20년 969년에 승려 혜명(慧明)이 조정의 명을 받들어 970년에 기공해 목종 9년인 1006년에 완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2대에 걸쳐 무려 3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조성된 은진미륵은 아침 햇살에 비쳐지는 불상의 미소를 보면 더욱 자비스럽게 보인다고 합니다.

 

a

관촉사 해탈문 부처님께 조심스러운 자세를 견지하게 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들어놨다고 전한다. ⓒ 김동이

▲ 관촉사 해탈문 부처님께 조심스러운 자세를 견지하게 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들어놨다고 전한다. ⓒ 김동이

이에 덧붙여 관촉사에 가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꼭 거쳐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관촉사 '해탈문'입니다. 이곳을 지나 관촉사 안으로 들어오면 해탈에 이른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 해탈문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부처님께 조심스러운 자세를 견지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만큼 이곳을 들어올 때는 반드시 고개를 숙이고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산지역의 3가지 보물인 개태사 철확, 강경 미내다리, 관촉사 은진미륵은 염라대왕도 확인(?)할 만큼 한번쯤은 볼만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그동안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빌었던 많은 사람들처럼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신비의 힘이 있는 듯합니다.

 

논산에 올 일이 있으신 분은 꼭 시간을 내서 이 세 곳에 들러 간절한 소원도 빌어보고 마음의 평온을 얻어보는 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2009.03.10 15:24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관촉사 은진미륵 #개태사 철확 #미내다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원룸 '분리수거장' 요청하자 돌아온 집주인의 황당 답변
  2. 2 나이 들면 어디서 살까... 60, 70대가 이구동성으로 외친 것
  3. 3 "걷기 싫으니 버스 탑니다, 어차피 무제한이잖아요"
  4. 4 이렇게 어렵게 출제할 거면 영어 절대평가 왜 하나
  5. 5 궁지 몰린 윤 대통령, 개인 위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