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 3학년이 되다

새로 만난 아이들

등록 2009.03.17 18:25수정 2009.03.1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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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새학년이 되면 정들었던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익숙한 선생님과도 헤어져 낯선 선생님과 낯선 친구들이 있는 낯선 교실로 가는 것이 늘 두려웠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새학년이 된 기분을 일기로 써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제목도 붙였군요. 짧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읽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오늘 3학년으로 올라갔다.

선생님도 새로 만났다. 선생님께서도 친절하시다.

친구들도 착하고 재미있다.

앞으로 1년 동안 재미있는 생활을 즐기고 싶다.

 

이름이 없는 일기장엔 일 년 동안 재미있는 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썼어요.

짧은 글 속에 자기 생각은 다 표현했더군요. 누구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3학년이 되어서 기분이 참 좋다.

그래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나는 새 선생님을 만나서 기분이 좋다.

선생님 성함은 김현숙 선생님이시다.

나는 3학년이 되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다.(문일오)

 

일오는 '*** 마을'이라는 복지기관에 사는 아이랍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그늘은 없어보입니다. 이 마을에 사는 아이가 두 명이 더 있더군요. 우리 반엔 두 아이 포함 생보자가  5명이랍니다.

 

3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경민이랑 조은이, 성민이와 같은 반이 되고 싶었는데

같은 반이 안돼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래도 성호랑 범준이가 같은 반이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친한 친구들이랑 떨어졌지만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함영준)

 

어린 시절엔 친구와 떨어지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전학 온 아이들이 적응할 때까지 힘들어하구요. 영준이는 붙임성이 좋아보이는 걸 보니 금방 친구를 사귈 듯 합니다.

 

제목 : 3학년이 된 날

오늘 3학년이 되었다. 3학년이니까 더 성실해지고 착해져야겠다.

그런데 선생님이 예전의 민혁이 오빠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첫날이라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양준이, 정민이가 악을 지르고 해서 기분 다 망쳤다.

나는 양준이, 정민이처럼 되지 않고 성실해지겠다.

나는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선생님 일 년 동안 잘 부탁드려요.(서소현)

 

소현이는 작년 우리 반 우등생의 동생이랍니다. 작년에 오빠를 담임했는데 발표도 잘하고 공부도 제일 잘하는 우등생이었습니다. 동생 역시 야무지고 공부도 잘 하는 모양입니다. 자기소개 시간에 척척박사가 되고 싶다고 하자 앞자리에 앉은 민욱이가 소현이는 척척박사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나는 오늘 3학년이 되었다.

3학년이 되었으니 의젓한 언니가 되었다.

이제 엄마아빠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그리고 숙제도 잘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야겠다.(박지현)

 

수업태도도 좋고 말이 없는 지현이는 아직 특색을 잡지 못하겠군요.

너무 평범해서 그럴까요?

 

제목 : 새학년

나는 오늘 3학년으로 한 학년의 소감을 적는다.

오늘 난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선생님 이름은 김현숙 선생님이시고 직년 우리 반 아이들도 조금 있었다.

그리고 함영준과 문일오가 있어서 기뻤다.

3학년 첫날 가슴이 뛰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

리고 3학년 때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임현범)

 

현범이는 천진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이였습니다. 구김살 없는 얼굴이 아마도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모양입니다. 가슴이 뛰었다는 현범이의 표현 앞에 나도 덩달아 가슴이 뛰었습니다.

 

오늘 학교 새 학년 개학을 했다.

그래서 좋았지만 2학년 선생님하고 떠나 안 좋고 쓸쓸했다.

그래도 3학년이 되었으니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숙제도 열심히 해야겠다.(김민욱)

 

가장 바른 자세로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초롱초롱 빛나던 아이가 민욱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제일 먼저 외웠는데……그런 그 아이의 마음속은 그렇게 쓸쓸했었군요. 선생님 역시 형들과 헤어져 쓸쓸하다고 적어주었습니다. 아이들 마음이 대부분 그러겠지요. 따뜻하게 대해주어야겠요.

 

오늘은 3학년이 되어서 새로운 친구, 선생님을 만났다.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체육관에서 후배들과 같이 개학식, 입학식을 했다.

유치원 애들은 1학년으로 올라갔다.

내 일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동생들이 많이 생겨서 마음이 뿌듯했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 중에서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서 공수인사를 했다.

3학년 때는 공부를 잘 하고 싶다.

3학년이 되면 공부가 더 어려울까?(최미지)

 

미지도 작년에 오빠가 우리반에 있었던 아이라 교실에 자주 놀러왔었습니다. 오늘은 쉬는 시간에 작년 우리 반 아이들 3명과 함께 미지 오빠도 와서 교실 뒷문을 열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갔습니다. 얼마나 이쁘고 반갑던지요. 그러나 내색을 못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하니까요. 이 아이들 역시 작년 선생님 만나면 반가워하겠지요? 점심시간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목소리도 높게 "선생님!" 하고 부르며 달려옵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젖어옵니다. 이런 재미에 빠져 힘들어도 교사가 되나 봅니다.

 

오늘 3학년이 되어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공부를 해야겠다.

만들기를 할 때 만들기에만 집중한다.

새로운 공부, 새로운 선생님과 열심히 해야겠다.(김하영)

 

어제 오후 하영이는 민욱이와 함께 남아서 말없이 청소를 도와주었습니다.

조용한 아이인데 이런 비유를 들어서 자기 생각을 쓰는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제목  :  3학년이 되다

나는 오늘 너무 가슴이 벅차다. 왜냐면 올해로 3학년이 된 것이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김현숙 선생님. 우리 반은 22명.

그리고 나는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3반이란 것이다.

이것도 다 운명이겠지? 아무튼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이성자)

 

제목을 참 잘 붙였더군요. 운명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좀 그랬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처음 이름을 보는 순간 요즘 아이들의 이름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부모님은 외동딸인 아이에게 왜 이름을 이렇게 지어주었을까 궁금했습니다.

 

3학년이 되었다. 새 교실, 새 친구, 새로운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 반은 22명이다. 그 중에 나는 13번이다.

새로운 친구 중에 내가 아는 애들도 있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이미지는 그대로 19번이다.

미지는 번호도 잘 외우겠다.

2학년 때랑 똑같아서 말이다.(강지은)

 

아마도 지은이는 시를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을 좋아한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나는데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키도 제일 작고 안경을 쓴 지은이는 기초조사표를 나누어주었는데 바람에 날라가버려 못썼다고 합니다. 영화 마파도 생각이 나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저는 3학년이 되어서 기쁩니다.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저는 3학년이 되었으니 공부를 잘 할 것입니다.(김범준)

 

의젓하게 생긴 범준이는 어린 데도 듬직하고 남자다워보여 호감이 가는 아이였습니다. 엄마가 동생을 가져서 엄마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오늘 새학년에 들어갔다. 나는 무슨 반이 될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나는 3학년 3반이 되었고, 의정이는 2반, 혜인이는 1반이 되었다.

나는 슬펐지만 기뻤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서이다.

선생님은 작년에 4학년 1반 선생님이었다.

몇 시가 되자 급식실에 갔다.

나는 밥을 다 먹은 뒤 교실에 들어가 청소를 하였다.

그리고 알림장을 쓰고 피아노를 치고 집에 돌아와

줄넘기 10번 하고 이 일기를 쓴다. (이윤아)

 

윤아는 첫날 집에 가기 전에

"선생님 나중에 시험을 보잖아요?"

그래서 "응" 했더니 "그때 쓰세요. "

하곤 빨간 색연필을 주고 갔습니다. 생각도 참 예쁜 아이였습니다. 윤아는 또래들보다 한 살 어린 아이입니다. 그래서 말도 조금 유아적인느낌을 줍니다. 그 어린 마음에도 시험을 보면 빨간 색연필이 필요할 것 같았던 모양입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제 첫숙제로 3학년이 된 소감 일기쓰기를 내주었습니다. 가슴이 조마조마, 가슴이 뛰고,  가슴이 벅차고, 등등 싱싱한 생각들이 팔딱팔딱 뛰는 생선처럼 전해져왔습니다. 아이들 이름은 어젯밤에 다 외워서 아침에 아이들 얼굴을 보며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어제 디카로 찍은 얼굴들 보면서 이름을 외웠더니 쉽게 외워지더군요. 누군가가 내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요.

2009.03.17 18:25 ⓒ 2009 OhmyNews
#새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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