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와 조강지부가 싸우면?

[시랑헌에서 부르는 나와 집사람의 노래 25]

등록 2009.03.20 11:51수정 2009.03.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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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 시랑헌에도 계룡산자락에도 자연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 정부흥

▲ 홍매화 시랑헌에도 계룡산자락에도 자연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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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홍매화 너무도 여린 홍매화 꽃잎은 물위에 펼쳐놓아야 비로써 삼매경의 조우가 가능하다. ⓒ 정부흥

▲ 수면의 홍매화 너무도 여린 홍매화 꽃잎은 물위에 펼쳐놓아야 비로써 삼매경의 조우가 가능하다. ⓒ 정부흥

 

목 매단 조강지처

 

내가 산에 다니던 시절인 1970년 대 초에는 버스의 직행, 완행 구별이 없는 시절이다. 광주에서 월출산까지 하루가 걸리고 지리산까지는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비포장도로의 터덜거리는 고물버스는 100m 보다 긴 먼지꼬리를 끌고 간다. 시동이 꺼져 승객들이 내려 밀어야 하는 경우도 많고, 버스의 뒷자리가 한자 이상 출렁거리는 것은 기본이다.  간혹 머리를 버스 천정에 부딪쳐 목뼈가 얼얼한 경우도 많았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뒷자리는 위험한지라 젊은 학생들인 우리들 차지가 된다. 하루 종일 덜커덩거리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목청껏 부르는 합창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위문공연으로 통했다. 하루 종일 불러도 마르지 않은 레퍼토리 중에 '진주낭군' 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울도담도 없는곳에 시집간지

삼년만에 목매달아 죽었단다.

 

시어머니 하신말씀 얘야아가 며눌아가

진주낭군 오신다니 진주남강 빨래가라

진주남강 빨래가니 요하같은 백마타고

못본듯이 지나간다

 

검은빨래 검게빨고 흰빨래는 희게빨아

집이라고 찾아드니 웃음판이 요란하다.

 

시어머니 하신말씀 얘야아가 며눌아가

진주낭군 오셨으니 사랑방에 가보아라

사랑방에 들어가니 기생첩을 옆에끼고

웃음판이 요란하다

 

아랫방에 건너가서 비단세필 끊어다가

아홉자에 유서쓰고 목매달아 죽었단다

 

이말들은 진주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어이여히 죽었는가 사랑사랑 내사랑아

기생첩은 삼년이고 조강지천 백년인데

어히여히 죽었는가 사랑사랑 내사랑아

 

며눌 아기의 억울한 심정을 생각하면서 버스 바닥에 발을 구르고 의자를 치는 장단에 맞춰 증기기관차 화통소리 같이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울분을 삭일 수 있어 실컷 울고 난 뒤 기분을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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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계룡산자락의 집에도 봄을 알리는 산수유가 활짝피었다. ⓒ 정부흥

▲ 산수유 계룡산자락의 집에도 봄을 알리는 산수유가 활짝피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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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거실까지 찾아온 봄의 소식이다. ⓒ 정부흥

▲ 산수유 거실까지 찾아온 봄의 소식이다. ⓒ 정부흥

 

시랑헌이 제2 인생의 터가 된 사연

 

나와 집사람은 결혼할 때부터 궁합 문제로 겪은 시련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부부다' 라는 절대명제가 항상 성립된다고 굳게 믿었다. 그 동안 둘 사이의 튼튼한 버팀목이었던 아이들이 출가하고 또 떠났다. 갱년기도 지나 둘 사이의 부부 관계 확인 절차도 시들하다 보니 의견 대립이 잦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 동안 쌓아 논 정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을 자주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ROTC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 후 지금까지 타향 생활을 했다. 정들면 타향도 고향이라고 하지만, 나는 여생은 자랄 때 추억이 묻어있는 고향에서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도시가 주변으로 확장되면서 고향이 사라져버렸다. 대안으로 학창시절부터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지리산 자락에서 살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 후부터 마땅한 터를 구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피아골은 지리산 계곡 중에서도 깊고 큰 계곡이다. 10여 년 전이다. 마침 피아골 연곡사 호텔 앞에 땅이 6000여 평 나왔다고 하여 집사람과 같이 3~4차례 현장을 답사한 후 매입하기로 결정하였다. 구례에서 매매계약서를 쓰는데 옆에 앉아있는 집사람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언젠가 이곳에서 팬션을 운영하는 노예가 되어 귀양살이를 해야 되는 자신이 한없이 처량하다고 느꼈단다. 

 

집사람 눈물 때문에 계약서를 쓰다 말고 중개인 손에 10만 원짜리 수표 2장을 쥐어주고 집사람을 데리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 후 나는 지리산을 포기하였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후, 양도소득세 때문에 서울의 소형아파트 한 채를 처분하였다. 은행 빚을 갚고 약간의 여유 돈이 생겼다. 지리산 그 터가 다시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피아골 터를 소개한 중개사에게 연락하였더니 진즉 그 터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다시 산다고 하더라도 이미 10배 이상 지가(地價)가 올라버려 그 터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이다. 마침 다른 권할 만한 좋은 터가 있으니 일단 지리산으로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난 곳이 지금의 시랑헌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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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헌터에 핀 매화 설중매의 향에 취하면서 삶의 참 멋을 알 것 같았다. ⓒ 정부흥

▲ 시랑헌터에 핀 매화 설중매의 향에 취하면서 삶의 참 멋을 알 것 같았다. ⓒ 정부흥

피아골 터 때문에 항상 마음에 빚이 있다고 생각한 집사람은 이번에는 다소곳이 지켜보기만 했다. 30분 만에 계약을 하고 1주일 내에 잔금을 지불하고 등기를 이전하였다. 집사람 앞으로 등기하여 집사람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신경을 썼다.

 

나와 집사람의 견해차이

 

시랑헌 터가 생기면서 나와 집사람 사이에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집사람 생각과 나의 생각이 너무도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집사람은 시랑헌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세상사 초월하여 산나물과 약초를 캐먹고 사는 은둔생활이 좋다는 생각이다.

 

나는 우리 재산 절반 만이라도 이곳에 투자하여 내 머리로 설계하고 내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것이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삶에 필요한 기를 재충전할 수 있도록 숲속에 시랑헌 같은 오두막도 몇 채 짓고 싶다. 예쁜 꽃이 피고 지는 조그맣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가족끼리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가족 간에 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상자에서 해방되어 주말에는 내가 만들어 논 숲속의 오두막에서 어린애들이 엄마, 아빠랑  레브라도리틀리버나 진돗개와 같이 숲 속에서 논다. 목공작업실에서 새집을 만든다. 저녁이면 데크에 모여 천체 망원경으로 별자리를 관찰하면서 우주의 신비와 신화를 얘기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꿈을 키우는 건전한 가족들을 보고 싶다.

 

우리 사랑방에서는 도란도란 모여 앉아 미국산 밀가루로 만든 과자보다 호두, 밤, 살구, 무화과, 곶감 같은 내가 생산한 무공해 과일을 나눠먹고, 돌미나리, 도라지, 쑥, 취, 고사리 같은 산나물과 비닐하우스가 아닌 밭에서 자란 재 철에 나는 채소로 만든 반찬을 만들어 콩과  메밀로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들을 두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삶이 집사람에게는 번거롭고 복잡한 삶이며, 이러한 것들을 위해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축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곧 죽을 것을 전제로 한 계산이기에 몹시 서운하고 신경을 극도로 자극하기 때문에 곧바로 타협의 여지가 없는 곳까지 치닫는다.

 

집사람은 시랑헌에 돈을 못 쓰게 하고 꼭 써야 할 양이면 극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돈을 버는 동안에 다른 곳에 쓸 돈을 줄이고 절약하여 시랑헌을 가꾸는 일에 쓰겠다는 것이다. 치사한 얘기지만 돈 때문에 항상 다툼이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당뇨병 25년에 중풍까지 앓았으니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고 하면서, 봉급통장이 크게 마이너스 안 되는 범위 내에서 시랑헌에 투자하여 그 동안만이라도 사는 재미를 얻자면, 집사람은 내가 아직도 어린애 태를 못 벗어 때를 쓴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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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매화, 산수유와 같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수선화, 꽃이 피는 때에 맞춰 인사하려해도 언제나 나보다 먼저 집화단에 들어와 먼저 인사하는 꽃이다. ⓒ 정부흥

▲ 수선화 매화, 산수유와 같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수선화, 꽃이 피는 때에 맞춰 인사하려해도 언제나 나보다 먼저 집화단에 들어와 먼저 인사하는 꽃이다. ⓒ 정부흥

 

집사람과 같이 다시 시랑헌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시랑헌으로 떠나리라고 작정한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캐러밴은 뒤 의자 탈•부착이 가능해 3인승, 2인승 의자 2개를 떼어내면 족히 1평정도의 널찍한 공간이 생긴다. 혼자 낑낑거리면서 산림을 가꾸기 위한 장비와 시랑헌에 심을 나무를 싣는다.

 

나무파쇄기, 고압세척기, 윈치, 초대형포충등 4개, 고지톱을 싣고, 지름이 6cm 길이가 2.5m인 백목련, 세계3대 정원수라는 금송, 무화과 5그루, 포트에 심어진 블루베리 12분, 접목 홍단풍 10분, 1.5m 크기의 국화도 3그루, 호두나무 23분, 튜립 3분, 허브 4분, **나무(치자나무 비슷한데 이름을 잃어버렸다, 꽃이 머문 상태인데 향이 좋고 모양이 매우 아름답다)1분, 기타 공짜로 얻어온 몇 가지 묘목들을 억지로 실어보려 하나 묘목을 살리면서 싣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집사람에게 '트럭으로 바꿔 시랑헌으로 가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집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으나 서로의 삶을 지향하는 차이만 확인했을 뿐 타협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트럭으로 바꿔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집사람이 트럭에서 밴으로 옮겨 싣던 짐들이 떠 올랐다. 집사람은 나와 같이 시랑헌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나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아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조강지처를 목매달아 죽으라고 사주하고 있질 않는가?' 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행히 집사람은 전화를 받았고 나는 조건 없이 항복하였다. 비단 세필 끊어다가 아홉자에 유서쓰고 있는 조강지처를 간신히 저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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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퇴비 뒤집기 2무더기의 퇴비장이라 시험을 위해 한곳은 뒤집기 후 비닐을 덮고 그 위에 부직포를 씌웠으며 한곳은 비닐을 걷어내고 부직포만 씌웠다. ⓒ 정부흥

▲ 발효퇴비 뒤집기 2무더기의 퇴비장이라 시험을 위해 한곳은 뒤집기 후 비닐을 덮고 그 위에 부직포를 씌웠으며 한곳은 비닐을 걷어내고 부직포만 씌웠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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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 후 편백 숲 심란하던 편백숲이 가지치기와 통로를 정리하고 나니 그런대로 숲의 형태를 갖췄다. ⓒ 정부흥

▲ 가지치기 후 편백 숲 심란하던 편백숲이 가지치기와 통로를 정리하고 나니 그런대로 숲의 형태를 갖췄다. ⓒ 정부흥

 

마을 사람들과 일하기로 한 약속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음날 아침 일찍 나와 집사람은 시랑헌을 향해 출발하였다. 시랑헌에 도착하자 4박4일 동안에 해야할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마을분들과 일을 주말로 미뤘다. 비가 조금 오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인 퇴비뒤집기와 나무심기, 시랑헌 정원을 만들고 농기구 창고 선반을 만들었다. 

 

주말에는 약속대로 마을사람 다섯 분들과 편백나무 가지 치기, 잔가지 파쇄하기, 굵은 재목 길로 끌어내리기, 나무가지들 정리하기 등의 일을 하였다. 2일간 열심히 한다고 하였지만 1/4정도 처리한 것 같다. 저녁 때에는 마을 이장이 방문하여 마을 분들과 어울려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단다. 시랑헌 내 도로포장 등 마을에서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힘써 돕겠다고한다. 상부상조는 상생을 위한 최상의 길이다.

 

시랑헌에 있는 동안에 나와 집사람은 일에 파묻혀 '이념 논쟁'을 할 겨를이 없다. 저녁에는 편백욕조에서 반신욕하고 해물 안주에 소주 한잔하고 나면 금방 깊은 잠으로 빠진다. 피곤하고 어려움이 많았지만 어쨌든 꿈 같은 4일이 지나고 움직이기도 힘든 육신을 끌고 월요일 아침에는 대전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은 '고지톱은 합격이지만 나머지 장비구입은 돈의 낭비이다'는 평을 내린다. '빵점 아닌것만 해도 감지덕지이다. 나머지 장비들은 사용법을 잘 익혀 당신 마음에 꼭 들도록 사용해볼게'라고 다짐하여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업(業)이란

 

수행자 한 사람이 인과응보의 공부를 위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100가지 했다. 한 가지 할 때마다 큰 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고 이 못의 숫자가 100개가 되자 수행자는 지극정성으로 사랑과 자비를 베풀면서 그 못을 한 개씩 빼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못을 빼면서 수행자는 마음속으로 100번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였고, 100번 남에게 도움이 되고 좋은 일을 하였으니 "나는 이제 타인에게 의로운 존재도 해로운 존재도 아니다" 하면서 되돌아 서는 순간 못을 박았던 자국들이 수행자의 뒷덜미를 잡아 끌었다.

 

어디서나 자신감에 차 있고 생기발랄하던 집사람의 분위기는 변해버렸다. 어딘가 시들하고 우울해 보이는 어두운 그림자는 오늘도 가셔지지 않았다. 따뜻한 말을 붙여보고 재롱을 떨어봐도 효과가 없다. 이번 공구구입 사건이 집사람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못 자국이 된다면, 빈대 몇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칸을 태우는 것 아닌가 싶다.

2009.03.20 11:51 ⓒ 2009 OhmyNews
#조강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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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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