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지역의 문화유적 찾기(1)

영원사와 설성산성

등록 2009.03.20 21:24수정 2009.03.2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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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여주에 이어서 이천 지역의 문화유적을 찾아 나선 길. 주로 불교유적이나 중간 중간 이정표가 있는 또 다른 유적들도 만나고 왔다. 

 

영원사

 

 영원사로 가기 전 아래에 있는 마을은 수령이 오래된 산수유 나무가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는 산수유 마을이 있다. 아직은 이른 듯 그 빛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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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마을 산수유 마을 ⓒ 김환대

▲ 산수유 마을 산수유 마을 ⓒ 김환대

 

영원사로 들어가는 가면 많은 계단을 지나 오르면 오래된 고목 은행나무와 정면에 화려한 단청의 칼라풀한 대웅전이 있다. 주변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과 자연 바위로 석탑처럼 만든 돌탑도 보인다. 범종각에는 목어와 특이하게 종을 치는 당목 나무를 물고기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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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당목 범종각 당목 ⓒ 김환대

▲ 범종각 당목 범종각 당목 ⓒ 김환대

 

약사전에는 석조 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새로 연화대좌를 만들어 안치해 놓았다. 목 위의 두상 부분 역시 새로 조성한 것이다. 상호는 원만하고 두 귀는 목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부드러운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이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왼쪽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에 이르는 옷 위에 걸쳐 늘어진 레이스 형의 주름이 독특하다. 오른발이 두툼한 왼쪽 무릎에 얹어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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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약사여래좌상 석조 약사여래좌상 ⓒ 김환대

▲ 석조 약사여래좌상 석조 약사여래좌상 ⓒ 김환대

 

오른손은 손바닥을 하향하게 하여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오른쪽 발바닥 위에 약단지를 받쳐 들고 있어 약사여래 임을 알 수 있다. 영원사의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7년(638) 해호 선사가 절을 창건하고 수마 호석으로 약사여래좌상 조성 봉안했다고 한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서는 다 완전 새로운 불상처럼 보이나 일부 옷 주름 표현에서 고려 초기 불상의 형태가 남아 있어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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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34년명 종 건륭34년명 종 건륭34년은 조선 영조45년(1769)이다. ⓒ 김환대

▲ 건륭34년명 종 건륭34년명 종 건륭34년은 조선 영조45년(1769)이다. ⓒ 김환대

 

한편에는 건륭34년명 이라 새겨진 작은 범종도 있다.

 

반룡송

 

백사면 도립리 도로변에는 반룡송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381호 반룡송은 하늘에 오르기 전에 땅에 서리고 있는 용이라 하여 반룡송이라 부른다고 한다. 하늘을 향한 가지는 마치 용트림하듯 기묘한 모습으로 비틀리면서 휘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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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룡송 반룡송 ⓒ 김환대

▲ 반룡송 반룡송 ⓒ 김환대

 

신라말 도선이 이곳과 함흥, 서울, 강원도, 계룡산에서 장차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면서 심어놓은 소나무의 한 그루라고 전해지며, 이 나무의 껍질을 벗긴 사람이 병을 얻어 죽었다는 얘기도 있으며 이천 9경 중 6경에 속한다.

 

도드람 포크

 

이천에서 수원으로 가는 국도변에 도드람 포크 농협이 있다. 그곳에는 도드람산의 유래가 적힌 안내문이 있다. 저명산으로 효자가 바위절벽에서 밧줄을 잡고 약초를 캐는데 멧돼지가 울어서 위를 쳐다보니 밧줄이 끊어 질 위기에서 벗어나 생명을 구하게 되어 돼지가 효자를 살렸다는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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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드람산 모형 도드람산 모형에 이야기를 담고 있다. ⓒ 김환대

▲ 도드람산 모형 도드람산 모형에 이야기를 담고 있다. ⓒ 김환대

 

그곳을 형상화 하여 모형물을 도로변에 만들어 놓았고 이곳의 돼지는 맛이 좋아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직접 판매와 먹고 가는 식당 기능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선읍리 석불입상 

 

장호원읍 선읍리 설성산성(설성산 설성지)이 있는 신흥사로 가기 전 도로변에 향토유적 제10호 선읍리 석불입상이 있다. 원래 입 석불은 죽곡 마을 앞 시냇가에 묻혀 있던 것을 신흥사 주지가 현 위치에 옮겨 놓은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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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읍리 석불입상 선읍리 석불입상 ⓒ 김환대

▲ 선읍리 석불입상 선읍리 석불입상 ⓒ 김환대

 

법의의 형태나 몸에 아무런 장신구의 표현이 없다. 대좌와 동체 두상 보개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위를 한돌로 조성해 연결시켜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두상 부분이 발견되지 않아 새로운 돌로 조성하고 시멘트로 접합해 복원해 놓았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설성산성

 

신흥사로 가는 입구에 성벽이 그대로 무너진 체 남아 있다. 성의 자취가 비교적 분명하게 잘 남아 있어 성 전체의 윤곽을 알아 볼 수 있다. 신흥사로 올라가서 뒤로 한 바퀴 돌면 성벽과 문지의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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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전경 신흥사 전경 ⓒ 김환대

▲ 신흥사 전경 신흥사 전경 ⓒ 김환대

 

이 성은 신라 내물왕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하며 성을 쌓을 때 성이 쌓여질 자리로만 띠를 두른 듯 흰 눈이 내려있어 그 자취를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설성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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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산성 성벽 설성산성 성벽 ⓒ 김환대

▲ 설성산성 성벽 설성산성 성벽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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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산성 성벽 설성산성 성벽 ⓒ 김환대

▲ 설성산성 성벽 설성산성 성벽 ⓒ 김환대

 

신흥사에는 불상 3구가 노천에 있으며 그 형태도 각기 다 다르다. 주변은 군 부대에서 반공호를 군데군데 파 놓았고 290미터에 야산이라 가볍게 한 바퀴 돌면서 성벽의 구조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제 다시 발길을 옮겨 이천 시내 일대 유적을 찾아간다.

2009.03.20 21:24 ⓒ 2009 OhmyNews
#영원사 #반룡송 #설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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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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