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포기? 딸아, 엄마처럼 살지 마!

여자도 능력 있어야 한다

등록 2009.03.24 15:54수정 2009.03.2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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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가 끝날 무렵 아이들을 마중 나오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나도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손자를 데리러 학교 앞으로 간다. 학교에서 급식이 나올 때까지는 마중을 나갈 생각이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24일도 학교가 끝날 무렵 학교 앞으로 갔다.  아는 할머니 몇 분은 벌써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여기는 외할머니인가 친할머니인가?"하고 묻는다. "외할머니예요" "매일 오는 것 같은데 딸집 근처에 살아요?" 하며 묻는다. "아니요, 저는 광명5동에 살아요" 하니 그곳에서 어떻게 매일 다니냐고 한다.

 

하면서 얼른 이사와야하겠다며 입을 모은다. 자기네 동네 할머니들도 대부분은 친정엄마가 살던 집은 전세주고 딸집근처에 다시 전세를 얻어서 온다고. 나도 "그렇지 않아도 그래야 할까 봐요" 했다. 

 

딸은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

 

친구 중에는 아들, 딸 모두 출가를 시킨 친구가 있다. 그도 아들은 조금 멀리 살고(며느리도 맞벌이, 손자도 있고) 딸과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함께 살면서 손자들을 돌봐주고 있다. 나는 아직 며느리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딸과 가까이 살면서 맞벌이 하는 딸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다.

 

대부분 친정엄마들은 혼자 벌어 살기 힘든 세상이니 맞벌이 하는 딸아이가 직장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라는 생각일 것이다. 나 역시도 딸아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안쓰러운 마음에서다. 

 

많은 딸들은 엄마처럼 안 산다고 하는 말을 한다. 엄마들도 마찬가지로 딸이 엄마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 엄마보다 좀 더 멋있고, 재미있고, 여유있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능력 있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내 세대(50대, 60대, 70대…) 여자의 삶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부모 밑에서 학교졸업하고 사회생활 조금 하고(때로는 안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어야만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아이 낳아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하다가 자신의 삶은 그저 그렇게 가족들 틈에서 대충 살아간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정의 위기, 능력없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

 

내 나이 30대 중반 무렵 남편이 사업에 실패를 하면서 우리 가정은 큰 위기를 맞이한다.  실질적인 수입이 없으니 생활은 늘 불안했다. 그렇다고 결혼 후 사회와는 담을 쌓고 살다 시피 한 전형적인 전업주부인 내가 갑자기 돈을 벌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내 자신이 그렇게 한심스럽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가정에 위기가 생겼을 때 내가 돈을 번다면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나도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난 능력 있는 여성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능력은 여러 가지 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내 경우에는 경제적 능력 즉, 돈을 벌 수 있는 힘을 제일 큰 능력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그것이 가장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돈벌 만한 곳이 없나 하고 관심을 가져보았지만 1980년대에 주부가 할 일이란 그리 마땅치 않았다.

 

하여 많은 생각 끝에 여러 가지로 안정적인 국가공무원시험을 보기로 했다. 학력과 나이에 관계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나이는 30대 중반을 맞이했으니 9급(그때는 만 28세까지인가(?) 9급을 볼 수 있었다) 공무원시험을 볼 수 없었다. 7급 공무원시험은 볼 수 있었다. 7급  교재를 보니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그땐 열심히 공부하면 시험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여 등록을 하고 응암동에서 종로3가에 있는 학원을 다녔다. 오전 10시인가 시작해서  오후 4시 정도 끝나는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나에게는 너무 버겁다는 것을 알았고 마침내는 영어시간에는 강의내용을 알아듣지 못할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 시험이라도 보고 싶다는 내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두 달 동안 다니다가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난 무엇인가 계속 찾았고, 조용히 집에  있으면 늘 머릿속에서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다 부부싸움을 할 때에도 괜스레 초라할 때가 있었다. 돈 문제로 다툼이 일어날 때는 '이래서 여자도 능력이 있어야 해. 왜 우리 엄마는  여자도 돈을 벌어야한다는 이야기를 안 해주었을까?' 하며 곱게 키워 결혼시킨 친정어머니를 괜스레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무 일에 도전도  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어느새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꿈을 잊어버렸거나 버린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나름대로 독서와 신문을 꾸준히 읽고 시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살았다. 속으로 늘 '반드시 난 무엇인가를 할 거야'하는 다짐을 하면서.

 

그러다 손자를 보게 되었고  이렇게 살다간 내 인생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손자를 못봐준다고 했고 어느 날 <오마이뉴스>를 알게 되었다. 이젠 사진 찍고 글 쓰는 것이 나의 직업이 되었다. 지금은 돈을 떠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다. 

 

딸아 힘내라, 엄마가 도와줄게

 

 40대 후반인 이웃 주부는  대학교까지 나왔다. 직장생활을 하다 아이들 때문에 그만두었고, 요즘 다시 일을 하려고 하지만 어디고 그를 기다려 주는 일자리는 없었다. 그는 꼭 일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일자리를 구하다 구하다 할 수 없어서 파출부를 나갔다. 첫날 몇 시간 일을 하고 4만 원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신이 그렇게 처량 맞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집에만 있다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이다.  

 

 딸아이가 두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힘들다. 가끔 직장을 그만 두어야하나? 하며 딸아이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직장 그만두지 마라. 여자도 능력 있어야 해. 너 직장 그만두고 두 달만 집에 있어봐라 아니 한 달만 있어봐라. 금세 후회할 테니깐. 그때 가서 직장 구해봐. 지금 같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하면 딸아이도 "나도 그만 둘 생각은 없어. 그런데 주변여건이 아이 키우면서 직장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 한다.

 

딸아이가 큰손자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고 10개월 동안 집에만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딸아이는 자신은 집에만 있으면 병날 것 같다고 하면서 다시 재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어려서는 어린대로, 학교에 들어가면 학교에 들어가는 대로 육아와 사회생활의 병행의 어려움은 현실인 것이다.

 

맞벌이를 하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직장을 그만둔 엄마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재취업을 하려면 일자리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던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감각도 떨어지고,세상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또 그 자리는 이미 다른 주인이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딸아! 여기에서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 엄마가 힘닿는대로 최대한 도와 줄 테니깐 끝까지 가는 거다. 여자도 진짜 능력 있어야 해. 지금은 많이 힘들고 어렵지만, 엄마처럼 사는거 너도 원치 않지. 딸, 먼훗날 웃으면서 지금을 이야기할 때가 반드시 올 거야. 

 

딸  파이팅!

 

2009.03.24 15:54 ⓒ 2009 OhmyNews
#능력 #맞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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