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느덧 떨기나무 시절

등록 2009.03.26 12:14수정 2009.03.26 18:12
0
원고료로 응원

산기슭을 오르다가 본다

주저리주저리 노란 꽃을 단  

생강나무 한 그루

 

생강나무의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으면

생강에서나 나는  

매운 향기가 풍긴다고 한다

떨기나무와 초본식물,

아주 동떨어진 두 식물 간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길래

그렇게 비슷한 냄새를 품고 있는 걸까

어쩌면 초본식물인 생강이  

저 생강나무의

까마득한 유년시절이 아닐까

 

슬프다

나 역시 저 생강나무처럼

외떡잎식물 같은

생강의 시절을 지나

어느새 떨기나무 시절에 당도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슬픈 것은

시시각각 늙어가는 육체 때문이 아니다

철저히 몸을 추종하는 마음 탓이다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동안

부화뇌동하길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

알아서 굳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른 봄날

생강나무 한 그루 홀로

터덕터덕 산길을 가고 있다.

2009.03.26 12:14 ⓒ 2009 OhmyNews
#생강나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