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남반부 저명인사, 5단계로 분류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23] 제6장 사과벌레

등록 2009.03.27 13:36수정 2009.03.2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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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오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사과는 지금도 열리고 있고 떨어지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과벌레는 다른 사과에도 살고 있겠지요."

조수현은 단 하나의 사과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인 조국을 생각해 보았다. 이 좁은 땅에서도 그나마 차지하려고 편을 가르고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전쟁이란 우주학자의 눈으로는 참으로 하찮고 좀스러운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수현이 그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박미애가 이두오에게 물었다.

"그럼 다른 사과에 살고 있는 벌레는 외계인이 되나요?"


너무 뻔한 질문이었는지 이두오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김성식이 얼른 이두오 대신에 대답해 주었다.

"그 벌레들은 우리 벌레들을 외계인이라고 하겠지."

김성식은 오늘 하루 종일 겪었던 일을 생각하며 '우리 벌레'란 말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럭바위에서 내려온 것은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인민공화국의 남측 저명인사 처리지침

다음 날 조수현은 집무실에서 공문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개천 변에 있던 백로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 아쉬웠다. 처음 기세라면 8월 중순쯤은 고향으로 가려니 했는데, 전쟁은 낙동강 유역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맥아더가 서해안의 도시에 상륙작전을 기획하고 있다는 첩보도 나돌았다.

공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민재판을 금하는 2차 훈령이었다. 공문에 의하면 인민군 치하의 농촌위원회에 이른바 '건달'들이 위원으로 끼어 있는 것을 지적하고, 그들에 의해 자행되는 사적인 재판이 남반부 인민들로 하여금 공화국에 쉬 동화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닥빨갱이들은 사적인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반동으로 몰기도 하고, 인민재판 회부를 빌미로 재물을 강탈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공문은 혁명과 인민의 지배를 팔아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일을 철저히 감시하고 엄정히 처벌할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그녀가 읽은 공문은 남반부 통일전선 강화에 대한 당의 방침을 하달하는 것이었다. 공문은 남반부 저명인사를 5단계로 분류하고 있었다.

1. 남북한 좌익성향의 단체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가담한 인사들
2. 남한의 정치· 사회단체에 프락치로 잠입하여 활동한 인사 및 이에 협력한 사람
3. 1948년 북남정치협상에 참여한 정당·사회단체 인사들
4. 자수 또는 자발적으로 협력해 오는 사람들
5. 반동 성향이어서 연행 또는 체포해야 할 분자들

1과 2는 소정의 교육을 마치고 북한 정권에 참여시키며, 3은 인격적인 예우를 하며 통일전선의 대상으로 삼아 준동맹자로 간주하고, 4는 격려, 포용하며 5는 대상에 따라 처리 방법을 다르게 하되 설복, 포섭, 전향, 억류, 납북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5에 해당하는 악질 반동분자들 상당수가 서울 성북동 뒤편 산의 비밀 장소에 억류되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납북의 1차 대상이었다. 남반부 인사 중 김규식이나 조소항 등은 3항에 해당되어 민족진영의 지도자로 예우하는 가운데 중간 입장의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한 경우였다. 조수현은 어떤 경위로 김규식이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되었는지를 공문을 보고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공문에는 반동 세력에 소극적으로 가담한 일반인들에 대한 사상교육이 강화된다는 내용도 추가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우선적으로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빨치산의 노래' 등을 가르치고 교양교육을 반복 실시하며 주로 자서전을 작성토록 하는 방법을 쓴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비판의 글을 쓰게 한 다음, 날마다 복창하게 하라고 되어 있었다.

조수현은 내일 이화여자대학의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 교양교육의 강사로 배정되어 있었다. 워낙 사상· 교양 강좌가 많이 개설되다 보니 강사가 달려 자기에게까지 강의 배정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리는 말로는 은행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는 김일성대학의 4학년 학생이 동원되었다고도 했다.

여자대학이 배정된 것은 언제나 자기를 배려해 주는 사령부 박 소좌의 조치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두오를 만난 후 박 소좌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박 소좌는 평양에서 늘 아버지를 존경하며 따르던 청년이었다. 그녀는 박 소좌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박 소좌가 자신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녀의 감정을 끌지는 못했다. 영어로 말해 박 소좌는 조수현의 타입이 아니었다. 박 소좌는 이른바 '모범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범 청년에게는 조금도 매력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에 관한 자료를 뒤적여 보았다. 마침 김성식의 아내 유정숙이 이화여대 출신이라서 그녀를 찾아가 이런저런 것을 물었지만 놀랍게도 그녀가 알고 있는 학교 지식이란 거의가 학교 측에 의해 왜곡· 선전된 내용이었다.

유정숙은 이화여대 총장인 김활란이 독립운동을 한 여류지사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조수현이 아는 바와는 정반대였다. 조수현은 남반부 여류 중 김활란은 시인 모윤숙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 인사였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던 터였다. 조수현은 김활란 같은 이가 여전히 교육계의 중책을 담당하고 있는 남반부의 현실이 도통 납득되지 않았다.         

제7장 난초

자치위원회 탁자에서 대여섯의 교수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건설대 지원서에 서명· 날인하고 있었다. 김성식은 의도적으로 그들을 외면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자 자치위원실 행정요원인 김삼술이 김성식의 뒤를 따라와 불러 세웠다.

"선생님, 서명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들 하시니까요. 전재지 복구가 주된 일인데 지원하셨다고 해서 날마다 일터에 나가시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당국에서도 교수들의 성의를 보이려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과거를 청산하고 인민공화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시는 것이 되니까요. 보십시오. 연로하신 선생님들도 모두 서명하셨습니다."

"내가 청산해야 할 과거가 어디 있다는 거야?"

김성식은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생각과는 달리 유약하게 흘러 나왔다.

"나는 요즈음 건강이 좋지 않아서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잖소, 이름만 걸어 놓고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바에야 건강을 회복한 후에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김성식은 김삼술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걸음을 옮겨 버렸다. 그는 연구실로 가면서  생각해 보았다. 물론 서명만 하고 일터에 안 나가는 것이라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과거 청산' 운운 하면 그는 때려 죽여도 서명할 수 없다는 오기가 북받쳐 올랐다.

또한 그는 김삼술이 그렇게 맹랑한 녀석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김삼술은 국문과 수재로 알려진 장래가 촉망되던 청년이었다. 그가 좌익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김삼술뿐 아니라 맹랑한 친구로 임건상이가 또 있었다. 임건상은 교협에서 삐라나 만들어 붙이고 다니던 얼치기였는데 어느 결에 문리과대학 교수로 등장되어 있었다.
#인민재판 #저명인사 #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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