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코트 한벌 날려 먹다

작은 것에 집착해서 큰 것을 잃고 말다

등록 2009.03.28 10:19수정 2009.03.2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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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옷장 속에 꽁꽁 감춰뒀던 봄 코트를 꺼냈다. 내가 제일 아끼는 코트라 애지중지하며 겨울잠(?)을 재웠지만 이제 봄도 되었고 중요한 약속도 있기에 다시 꺼내 입은 것이다. 깊은 잠을 깨고 다시 세상의 빛을 본 코트는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할 만큼 멋진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내심 흐뭇한 마음으로 코트를 입어봤다.

 

봄날의 봄 코트에 마음마저 가볍게 느껴진다. 마치 내가 여느 모델이 된 것처럼 기분이 하늘거린다. 그런데 그 기분 좋음을 와장창 깨버리는 악몽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옷을 입다가 코트의 작은 흠을 발견한 것이다. 코트 중간 즈음에 '나 좀 봐 주세요' 하고 터져 나온 실밥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윽, 뭐야? 저 실오리눈에 거슬리네.'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흠이었지만, 살짝 삐져나온 실오리를 거울에 비추니 점점 더 커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애써 모른척하려고 했지만 그러자니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결국 어머니한테 물었다.

 

"엄마, 이 실오리, 가위로 잘라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내 불편한 마음과는 다르게 어머니는 그 작은 흠을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신다.

 

"별로 눈에 안띄어, 괜히 자르다가 옷 상할지 모르니깐 그냥 내버려둬."

 

어머니는 한마디로 괜히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 삼간 태우는'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엌으로 들어가서 가위 하나를 들고와 코트의 실오리를 잘라냈다.

 

그런데 실오리를 가위로 잘라내고 코트를 본 나는 그만 "아아악"이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세상에 가위가 스쳐지나간 코트에 기름이 묻어 버린 것이다. 부엌에서 가져온 가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점심에 삼겹살을 자르고 남은 기름기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 기름기가 고스란히 내 사랑스런(?) 코트에 묻어버린 것이다.

 

정말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질 정도로 황당한 상황이었다. 나는 얼른 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코트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수도를 틀어 급한 마음에 그 기름 묻은 코트를 물로 닦아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누나가 궁금한지 뭐하냐고 묻는다. 나는 코트 닦는데 정신이 팔려서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답했다.

 

"아, 나 코트에 묻은 기름 닦아내고 있는 중이야."

 

그러자 누나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야, 코트에 기름이 묻었는데 물로 닦아내면 어떡해! 기름 안 지워지고 옷 다 버린단 말야! 큰일 났다.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데."

 

누나의 그 말에 코트를 닦고 있던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말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실오리 하나 잘라 버리려다가 옷을 날려 먹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 황당한 상황에 내가 아무 말을 못하자 누나는 옆에서 '바보, 바보' 하고 놀려댄다. 하지만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진짜 멍청한(?) 행동을 했으니 말이다.

 

결국 눈물 글썽거리며 코트를 안고 세탁소로 향했다. 하지만 내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세탁소 아저씨는 걱정스럽게 한마디 하신다.

 

"이런, 물을 묻혔군요. 잘 안지워질 텐데, 드라이클리닝 해보겠지만 안 되면 어쩔 수 없어요."

 

나는 힘없이 "네, 부탁드려요" 하고 세탁소에 코트를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속이 많이 상한 하루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교훈 하나는 얻은 것 같다. 우리 옛 속담처럼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득 내 일상에서 이런 일이 없나를 다시 한 번 반성해보게 된다. 이번 일을 계기 삼아서 앞으로는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해서 큰 것을 잃은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아무튼 그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데 '코트' 한 벌이 든 셈이다.

 

2009.03.28 10:19 ⓒ 2009 OhmyNews
#코트 #기름 #터진 실밥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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