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끝까지 제대로 읽어 봤어요?"

[서평]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 - 이재호와 함께 천년 침묵의 미를 만나다

등록 2009.04.04 14:56수정 2009.04.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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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자. 진흥왕 14년(553) 2월에 대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와, 대궐 대신 절을 짓고 황룡사라 하였다. 공사 17년 만에 담장까지 완성했으며, 진흥왕 25년(574)에 주존불을 만들었고 선덕여왕 15년(645)에 황룡사 탑을 세웠다. 하지만 고려 고종 25년(1238) 겨울에 몽골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버렸다. 총 93년이 걸려 이 절을 완성했고 593년간 존재하다 폐허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서라벌의 중심 황룡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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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겉그림 ⓒ 한겨레 출판

1976년에 발굴조사를 시작, 사적 제6호로 지정된 황룡사(지)는 관광지로도 워낙 유명한 곳인지라 그곳을 여행한 사람들 저마다의 사정으로 기억할 것이다. 내게는 분황사, 낙산사, 오어사와 함께 애틋하고 눈물겨운 삼국유사의 현장으로 더 기억되고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 속 황룡사 이야기는 여러 편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하는 93년 동안 지은 절이니 전해지는 이야기가 오죽 많으랴.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일연 스님이 기록하지 않았으면 나 같은 후세인에게는 절대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정수스님 이야기다.

이런지라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책을 읽을 때마다 늘 그래왔듯, 삼국유사의 현장만을 답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한겨레 출판 펴냄)을 펼쳐 제일 먼저 읽은 것은 '서라벌의 중심 황룡사'와 '얼어 죽는 아기와 여인 구한 정수 스님'편이다.

1200여 년 전 서라벌. 눈 쌓인 어느 날 황룡사 정수 스님은 탁발을 마치고(어떤 책은 삼랑사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설명) 돌아오는 길에 '천엄사' 문 밖을 지나게 된다.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한 거지 여인이 어린 아이를 낳고 얼어 죽을 지경이다. 정수 스님은 여인을 끌어안아 몸을 녹인다. 얼마 되지 않아 여인의 숨이 돌아오자 정수 스님은 입고 있던 법복을 모두 벗어 거지여인을 덮어주고 벌거벗은 채로 황룡사로 달려간다. 오직 한 벌 뿐인 법복을 벗어준 스님은 거적을 덮고 밤을 지냈다던가!

황룡사 정수스님이 거지여인을 구해준 '정수 스님 구빙녀'는 참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그럼에도 삼국유사 관련 책을 읽을 때면 먼저 찾아 읽고 또 읽는다. 그래도 "그 정겨운 장면에서는 늘 눈물이 흐른다"라는 저자처럼, 몇 번을 읽건 늘 뭉클한 감동이 앞선다.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 거리를 걸으며 잘 알고 있는 사람 떠올리는 양 떠오를 때도 많다.


오래 전 분황사에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삼국유사를 지금처럼 재미있게 읽지 못했던지라 신라의 유적지 중 하나려니 설핏 구경하고 말았었다. 그러나 다시 가면 희명 보살의 애끓는 모정-향가 '천수대비가'의-의 울음소리에 쉽게 발을 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딸을 데리고 분황사 북벽 관음보살 앞에 이른 희명 보살은 눈먼 딸을 부여잡고 울며불며 눈먼 딸이 세상을 보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향가 '천수대비가'는 이를 노래한 것이다.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청하오니, 보살의 천개의 눈 중 하나만 덜어 두 눈이 먼 제 딸에게 주어 세상을 볼 수 있는 자비를 베푸소서. 둘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만을 덜어 내 딸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소서. 나같은 불쌍한 중생에게 베풀지 않을 자비라면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 그 대자대비가 무슨 소용이리오. 누구를 위해 쓸 천수천안 대자비란 말이오?"-향가 '천수대비가'를 임의로 풀어 씀

지장보살과 함께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세음보살은, 천개의 눈으로 구석진 곳 중생들의 아픔까지 헤아리고 천개의 손으로 그 아픈 중생들을 보살핀다고 한다. 그래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관세음보살님께 희명 보살은 한편 애원하고 한편 협박하다시피 한다. 나 같은 중생을 외면하는 자비가 어디 진정한 자비란 말인가! 내 딸처럼 불쌍한 사람에게 쓰지 않을 것이면 대체 누구에게 당신의 자비를 베풀 것인가! 라고 따지면서 말이다.

'정수스님 구빙녀'와 향가 '천수대비가'에는 종교(인)의 바람직한 자세와 역할이 잘 녹아 있다. 때문에 이 두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참담한 그 시절에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기어코 집필할 수밖에 없었던 의도가 짐작되어 가슴 뭉클해지곤 한다.

"스님이 활동했던 13세기, 칼을 든 무인들이 권력을 잡았고, 온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한 몽골은 고려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얼마나 참담했을까. <삼국유사>의 주무대인 서라벌 장안은 약탈과 방화로 얼룩졌을 것이고, 경주 황룡사도 몇날 며칠 불탔을 것이다. 아마 하늘도 구슬피 울었겠지. 이런 쓰라린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한 일연 스님은 왕조사 중심의 <삼국사기>와는 달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단군신화를 맨 처음 등장시켜 <삼국유사>를 써 내려갔다. 사람의 일생은 관 뚜껑을 덮었을 때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스님이 끝맺음을 한 곳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다." - 책 속 군위 인각사 편에서

삼국유사는 일연 자신이 머물렀던 곳이나 이야기가 있는 곳을 찾아가 전해오는 이야기를 채록, 기록한 것이다. 이런 삼국유사를 읽으며 우리가 유독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3년이나 조실로 머문 선원사가 있는 강화는 정작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려의 왕이나 귀족들에게 강화도는 몽고의 침략에 훗날을 도모하기 위하여 피신할 수 있었던 '천만다행한 땅'이었을 것이다. 또한 불심으로 국난을 극복해내기를 염원하며 팔만대장경을 제작한 호국의 땅이기도 했을 것이다.

국난극복의 염원을 담은 팔만대장경은 일연 스님이 조실로 있던 선원사 주관으로 일연 생전에 제작됐다. 게다가 신라 635년에 창건한 보문사나 고구려 372년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전등사까지 있고 보면 강화는 불도인 일연 스님 자신에게도 남다른 곳이 될법하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팔만대장경에 대한 지극한 발원이나 자부심을 단 한 줄이라도 기록할 법하건만 일연 스님은 끝내 침묵, 팔만대장경이나 강화에 대해 일체 적지 않는다. 때문에 삼국유사에는 강화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왜 그랬을까?

당시 일연에게 강화는 정권야욕에 눈먼 무인들이 활보하던 땅이요, 몽고군의 말발굽에 백성들을 내어주고 도망쳐 온 왕이 머물던 치욕의 땅에 불과했기 때문 아닐까? 때문에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은 아닐까?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쳐 온 땅에서 염원하며 제작한 팔만대장경에 깃든 부처님의 자비보다 살육의 현장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해 줄 분황사 관음보살의 자비가 더 많이 필요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위정자나 종교인의 그럴싸한 백 마디 말이나 백성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수많은 정책들보다 자신의 한 벌 옷을 벗어 얼어 죽는 생명을 살리는 정수 스님의 보살행이 전쟁으로 헐벗고 피폐해진 백성들에게 정작 필요한 감로수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의도를 짐작하면서 읽다 보면 삼국유사는 훨씬 의미심장하게 읽혀진다.

"삼국유사, 끝까지 제대로 읽어 봤어요?"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치고 삼국유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은 사람 또한 드물다. 역사 전공자들은 원문 한번 독파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있고, 문과 출신들은 원문은커녕 번역한 책이라도 읽지 못했다는 중압감을 안고 있다.…(중략)…삼국유사를 순서대로 쓰지 않고 풀어헤쳐놓고 가능한 한 감동적인 이야기부터 쓰되 계절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황룡사 정수 스님이 얼어 죽는 거지 여인과 아기를 구해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추운 겨울을 기다려야 했다.

…(중략)…돈이 인격이 된 우리 시대, 너도나도 고통스럽다고 난리다. 그러나 몽고의 말발굽 아래 신음하며 나라가 쑥밭이 되어버린 일연 스님의 시대만큼 참담했을까. 우리 모두 가슴에 멍이 들고 마음으로 울지라도 희망의 싹을 기다려 보자. - 저자의 말 중에서

우리들이 한때 신빙성이 떨어지는 설화나 잡스러운 야사 취급을 하여 삼국유사를 뒷전으로 밀어놓았을 때 정작 일본에서는 삼국유사의 가치를 인정하여 활발하게 출판됐다. 그리하여 많은 일본인들이 삼국유사에 매료됐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들이 오늘날 향가 25수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왕조나 귀족들 중심으로 쓰여진 수많은 고전들이 외면한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삼국유사 덕분이다. 삼국유사는 또한 오늘날 수많은 역사 유적지의 발굴과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은 삼국유사의 현장만을 답사한 책이다. <천년 고도를 걷는 즐거움>으로 유명한 기행전문가 저자 이재호는 삼국유사의 현장들을 찾아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 남긴 것들을 토대로 그곳의 풍경과 역사 등을 오늘날의 가치관과 맞물려 들려준다.

광덕과 엄장을 깨달음으로 이끈 두 남자의 한 아내 이야기, 원효의 부정과 설총의 애끓는 정, 정복왕 진흥왕의 사랑, 진지왕의 생사를 넘나든 사랑,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오어사와 천룡사지, 중생사… 거듭 읽어도 재미있다. 읽을수록 묘미가 있다. 오죽하면 혹자는 "천지귀신도 감동케 한다"라고도 표현할까.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 세상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등 삼국지 읽기를 권하는 말들이 회자한다. 이 말에 이끌려 나 역시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었다. 하지만 삼국유사를 읽기 전이다. 삼국유사를 알고 난 이상 삼국유사보다 더한 고전은 없다는 생각뿐이다. 삼국유사에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별 볼일 없는 백성들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에게 워낙 유명한 삼국유사이건만 온전히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워낙 방대하여 전문가들까지 온전히 읽어내지 못한 삼국유사를 저자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의 가치라고 할까?

덧붙이는 글 |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이재호 씀/한겨레 출판/2009.1/\15,000)


덧붙이는 글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이재호 씀/한겨레 출판/2009.1/\15,000)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 - 이재호와 함께 천년 침묵의 미(美)를 만나다

이재호 지음,
한겨레출판, 2009


#일연스님 #인각사 #황룡사 #기행문 #고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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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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