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경제전문가에게 맡겨라"

[인터뷰] 조훈현 국수를 만나다

등록 2009.04.06 16:32수정 2009.04.0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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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9단이 미소를 짓고 있다. ⓒ 선태규

조훈현 9단이 미소를 짓고 있다. ⓒ 선태규

지난 4월 2일, 바둑 '최고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대국이 펼쳐지고 있는 바둑판 위를 걷는 듯했다. 서울 서초동의 가로 세로로 반듯하게 교차되는 골목 지점들은 바둑돌이 놓여져야 할 '자리'로, 그 곳에 있는 대상들은 착수된 '바둑돌'로 느껴졌다.

 

'바둑판 길'을 헤맨 끝에 평범한 양옥집을 개조한 색 바랜 한정식 집에 들어섰다. 손에 익은 바둑돌, 바둑판처럼 손때가 많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내부의 나무계단을 올라 거실 끝 왼쪽 방에 자리를 잡으려니 갈빛 섞인 부드런 백발에 서글서글한 모습의 '주인공'이 들어섰다. 바둑에 관한 한 설명이 필요없는 조훈현(曺薰鉉) 국수(國手).

 

소탈함이 어울리는 그를 마주하자, 인터뷰는 담소가 됐고, 편안함 속에 진지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라는 딱딱한 주제 앞에 그는 '문외한'이란 점을 앞세우면서, '합심'을 강조했다. 국민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힘을 합해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좋아진다는 것이다. 허동수 한국기원 이사장(GS 칼텍스 회장)이 '피겨여왕' 김연아가 정말 어려웠을 때 선뜻 도와줬던 것처럼, 기재있는 새싹을 찾아 '도움'을 줘야 한다고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화젯거리는 그의 고뇌를 거름종이 삼아 그의 '외로운 싸움'으로 바뀌었다. 그 싸움의 중심엔 바둑을 컴퓨터 게임으로 만든 '바투'가 있었다. '바둑도장 대신 바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조 국수는 그 궁금증에 해답을 남기고는, '홀로'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갔다.

 

- 바둑이 일본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유는?

"일본은 뭐든지 잘하기만 하면 국가에서 돈을 줘서 장려했다. 칼, 칼집, 도자기를 잘 만들어도 되고, 춤을 잘 춰도 그랬고, 바둑도 마찬가지였다. 신분이 낮아도 1등하는 분야가 있으면 인정해주는 세상이었다. 우리는 도자기를 잘 만들고, 춤을 잘 춰도 상놈 취급을 받았다. 그런 풍토 속에서 우리 바둑도 명맥만 유지했다. 일본은 명맥 유지가 아니라 1등을 해야 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 바둑 세계화에 대한 한·중·일의 입장은.

"바둑 세계화를 앞두고, 중국은 바둑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최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금까지 최강이었고, 역사가 오래됐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동서양을 통틀어 바둑이 보급된 지는 100-200년 정도가 됐다. 일본 바둑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현재는 "바둑이 누구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강한 걸로 밀고 나가야 한다."

 

- 한국 정부의 바둑계 지원 현황.

"작년부터 겨우 돈을 대주고 있다. 바둑계 지원 및 인재 육성을 위해 문화관광부에서 지원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후원금이 없으니 한국기원, 개인 돈, 돈 많은 스폰서 등을 통해 이뤄졌다. 정부자금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선수권에 프로 기사들이 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바둑이 일본문화니 알려라'라는 취지하에 100여 년 전부터 정부가 지원했고, 단기 및 장기 파견 뿐 아니라 영어로 바둑 책자까지 발행했다. 바둑계 지원을 이제 겨우 시작했으니, 이것만 놓고 보면 일본에 100년 정도 뒤진 셈이다. 이제라도 지원이 시작됐으니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가장 마음에 드는 칭호는.

"마음에 드는 칭호는 '국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르기 편한 것이 국수라는 칭호다. 현재 국수 칭호는 10명이 받고 있으며, 기원에서는 국수가 된 사람만 붙여준다. 서봉수 사범의 경우 명인에 대한 인상이 강해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유창혁도 국수를 했다."

 

- 현재 대국수와 바둑 신예들과의 대국 성적은.

"바둑대국 횟수가 연간 40-50판으로 많지 않다. 지금은 바둑 신예들과 승부를 해서 이길 수가 없다. 체력이 뒷받침이 안되고, 머리도 안 돌아간다. 집중력도 떨어져 실수가 많이 나오는데, 프로의 세계에는 실수 한번이면 판 자체가 끝나 버린다."

 

-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과거와는 하는 일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정상을 향해 달렸으나, 이젠 정상에서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기 힘드니까 '승부'보다는 바둑계 전체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스레 길과 노선이 바뀐 것이다."

 

- 바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시대가 바뀌었다. 바둑이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가기 힘든 시대가 됐다. 바둑 자체도 어렵지만, 새로운 게임들이 많이 나와서 바둑 공부하기도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게 그거였다.

 

지금은 컴퓨터 시대고, 바투는 컴퓨터로 쉽게 접할 수 있고, 내용은 바둑과 유사하다. 어차피 바투 고수가 되려면 바둑을 배워야 한다. 좀 있으면 인공지능 바투 게임이 나온다. 급수따라 상대해 주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배우면 된다. 일반 기원에서는 바투를 못하게 하는 데, 안타깝다."

 

- 상황이 그토록 심각한가.

"문제는 기원과 젊은 세대들이 서로 다가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애들은 다른 재미있는 게임이 많기 때문이고, 기원은 '바둑' 자체를 고집하고 있다. 지금 형태로는 한계가 있다. 바둑에 다가가기가 무척 힘든 것이다. 100명의 학생들을 모아 놓으면 그 중에 1-2명 정도 배울까 말까다.

 

옛날에는 할 게 없으니까 바둑을 배웠다. 놀려면 어쩔 수 없었다. 축구, 야구, 낚시, 골프, 스키 등 그 당시에는 놀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기원이 그 당시의 상황의 '바둑'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게임이고 하니까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사실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무슨 길이든 각자 자기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을 가다보면 맨 꼭대기 즉 정상이 있는 것이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곳에 이르는 것이다.

 

난 운이 좋아서 정상에 올랐던 거고, 다른 사람들은 재주나 운이 없어서 정상을 밟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상이 되기 위해서는 바둑으로서의 기본 기량에 무언가 기재, 힘 등 '플러스' 요소를 갖춰야 한다. 뭔가 뛰어난 게 있어야 한다.

 

김연아는 다른 선수보다 월등하다고 한다. 한국사람 뿐 아니라 국적을 떠나 다른 나라 사람들도 김연아의 그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고났다', '천재다'라고 애기를 하고 끝내지만, 거기에 노력이 추가 된다. 김연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고, 훈련 중에 부상도 많았을 것이다. 모두가 최강이 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정상에 서고,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

 

- 바둑 최고수가 보는 경제 위기 해법은.

"나는 신용카드도 안 갖고 다닐 정도로, 경제는 잘 모른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세계 전체가 어려운 상태여서 한국만 잘돼 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다. 요샌 물건이 싸도 안 팔린다. 그런 상황이기에 세계가 손을 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대단한 이유는 5000만 명의 인구 빼고는 이 좁은 땅에 아무 것도 없는데,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물'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하면 중국이고, 경제하면 미국, 일본인데 한국에서 인물이 유독 많이 배출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으나 그런 면에서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나는 경제가 빨리 좋아지기를 바라는 입장이지 해법을 찾는 입장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하는 거고, 전문가한테 맡겨야 한다. 대통령이라 해서 야구를 잘하고, 바둑을 잘하고, 피겨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정치를 잘할 뿐이지.

 

해법은 재계 등 경제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합심'해야 한다. 경제는 기업가가 하고, 정치는 대통령이 이끌어가고 하면 자연스럽게 되겠으나 국민들도 다 같이 한 길로 가야 경제가 회복된다.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고 하며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길 열리는 것이다."

 

- 정·재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데, 이들의 장점은.

"그들의 인생을 들어가 보지 못했고, 바둑을 통해서만 접해봤으나 기업인들은 다 각자 나름대로의 카리스마와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7점을 깔고 두는데, 전임 대통령 중에서는 가장 잘 두는 것 같다.

 

법조계 인사들도 바둑을 잘 둔다. 지기 싫어하는 근성 때문이고, 바둑에서 지면 '머리 나쁘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더 애를 쓰고 바둑을 두는 것 같다. 이상하게도 법조계 인사들하고 바둑을 두면 재미(?)를 못 본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분명히 하수인데, 짭짤하게 재미를 못 보는 것이 여간 이상할 수가 없다."

 

- 이길 수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 바둑 스타일로 유명한데

"바둑에는 기세가 있다. 물러서도 이길 수 있으나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받아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용서가 안된다. 최선의 수를 찾다보니 반발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 김연아 선수가 세계 선수권에서 세계 최고기록으로 우승한 뒤 허동수 한국기원 이사장이 김 선수를 도와준 것이 뒤늦게 훈훈한 미담으로 부각되고 있다.

"도와주려면 그렇게 도와줘야 한다. 지금은 도와 줄 필요 없다. 이세돌, 최철한 등 타이틀 보유자들도 역시 먹고 살만하기에 도움이 필요 없다.

 

문득 기억나는 게 있다. 일본에 재벌이 있었다. 71년도에 정말 어려울 때, 1년에 여름과 겨울에 100달러씩 보내왔다. 그 돈으로 쌀 사고 그랬다. 한국에서는 쌀 한 가마 보태주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낸 뒤 한국에서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일본에 알려주자, 그 때부터 후원이 끊어졌다.

 

일본을 두둔하는 건 아니나, 일본에는 어릴 때부터 도와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한국은 성공해야만 그 때부터 도움의 손길이 찾아온다. 타이틀 따서 도와줘봤자 소용없다. 재주 있는 새싹을 찾아 어려울 때 도움을 줘야 진짜 도움을 주는 것이다."

 

- 옛날에 담배를 많이 피웠는데.

"담배 끊은 지 10여 년 됐다. 짧은 담배로는 하루 5갑을 피웠는데, 장미를 피니 2-3번 더 빨게 되고, 하루 피는 담배도 3갑 정도로 줄었다. '장미' 담배로 바꾼 이유다. 내가 담배 하루 5갑 피웠다면 아무도 안 믿어 준다. 실제로 담배 갑수를 세어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오전 10시에 특별 대국이 있었다. 8시에 일어나자마자 담배 피우고, 씻고 담배 피우고, 밥 먹고 담배 피우고, 차안에서 담배 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양 호주머니에 쌍권총을 찾다. 장미 담배를 양쪽에 집어넣은 것이다. 기원에서 담배 2-3갑을 또 줬다. 밤 10시 바둑이 끝나면, 최소한 담배 5갑이 다 떨어졌다. 그 후 담배 한 보루를 갖고,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 '게임'을 시작하고 아침 10시가 되면, 그 사이에 혼자 담배 5갑을 피우게 됐다. 24시간 동안 담배 한 보루를 피운 것이다.

 

담배를 끊은 동기는 간단하다.

 

해외대국의 기회가 많아지면, 특히 서방국가들을 방문하다 보면 흡연 습관이 얼마나 불편한 건지 알게 된다. 공항이나 레스토랑 같은 공공장소에서 흡연자들은 마치 죄인처럼 타인의 눈치를 살피면서 흡연지정 장소를 찾아다니기 일쑤다. 국제공항의 비좁은 흡연 박스에서 매콤한 담배연기에 갇혀 담배를 피우니 처참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 여행 중에 흡연자로서 설움을 톡톡히 당했다. 이렇게 눈치를 봐가며 담배를 죽자사자 피워야 하나 생각하니 "까짓것 끊고 말지"하는 오기가 치솟았다. 그래서 끊었다."

 

- 황당한 적도 있었나

"한번은 가수 '비'의 공연에 간 적이 있다. 뒤에서 비를 만났고, 바둑 관계자들의 권유로 기념사진을 찍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찍으려는 찰나 비의 기획사 관계자들이 '찍으면 안된다'고 막아섰다. 그래서 열 받았다. 기분 나빴다. 비가 그랬겠느냐 싶지만, 내가 이 거 밖에 안되나 싶기도 하고. 사진을 상업적으로 사용하면 자기들한테 손해가 되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나도 바둑계로 따지면 '인물'인데, 참 기분이 착잡했다."

 

- 바둑 도장 대신 바투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돈이 1등인 시대로 바뀌었다. 옛날에야 결혼할 때 마음씨 따졌지, 요즘에는 어떤 직업이고 얼마나 돈 버는지 그걸 우선으로 친다. 모든 것이 돈과 연관돼 있다.

 

다시 말하지만, 기원이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다.

 

회사에 처음 입사하면 죽을 때까지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회사를 선택할 때도 일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쉬는 지, 돈은 얼마나 주는지 등을 주로 따진다. 회사에 봉사하고 그런 개념이 아닌 것이다. 최근에 야구나 축구를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 연봉 합계와 상대국 선수들의 연봉 합계를 비교해 경기를 분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치가 역전돼 버렸다. '나는 누구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원도 PR(홍보)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프로기사는 '바둑'만 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PR을 하려면 너나 하라고 하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김연아가 아무리 잘해도 방송이나 신문 등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가 안 된다면, 국민들이 지금처럼 열광했겠는가. 현재 바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을 왜 하느냐"며 기원에서 문제를 삼고 있다. '바둑'에 고정돼 있는 기원을 생각해 보면 정말 미치겠다.

 

어디에나 역할이 있다. 정상은 한 명이다. 237명의 프로 기사 중 50여 명이 승부를 겨루고, 10-20여 명이 정상을 다투며, 나머지는 학원 등을 통해 바둑 보급에 나서야 하는데 모두 프로기사로 끝나 버린다. 이렇게 되면 바둑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씨름 아닌가. 종목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대표적 사례다. 바둑 도장을 안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제자는 이창호로 끝날 거 같다. 나로서는 명맥만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 무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4.06 16:32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주간 무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훈현 #이창호 #비 #바투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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