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문명사의 폭력성을 성찰하라

[서평] 주경철 박사의 <문명과 바다>

등록 2009.04.14 14:06수정 2009.04.1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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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문명과 그 폭력성을 조명한 책 ⓒ 산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핵심 과제로 제시되는 것은 동북아 물류의 중심, 즉 동북아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대양과 대륙을 잇는 접촉지역, 즉 림랜드(rim land)로서 충분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동북아 허브 구상은 상당히 매력적인 프로젝트로 인식된다.

지정학적으로 림랜드의 가치를 부각시킨 학자는 니콜라스 J.스파이크먼(미국 정치학자)이다. 그는 "림랜드를 제패하는 자는 유라시아를 제패하고, 유라시아를 제패하는 자는 세계의 운명을 제패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림랜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고대 사회에서 세계의 패권국가들은 대륙을 지배하였다. 페르시아제국, 로마제국, 몽골제국 등 대륙을 지배하는 자가 곧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대항해시대를 통해 형성된 근대사회에서 세계의 지배자들은 대양을 지배하였다. 즉 바다를 지배하는 세력이 곧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은 세계화의 물결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고, 그 하나의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물류 시스템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는 이제 대양과 대륙을 이어주는 림랜드를 지배하는 세력에 그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다는 것이 림랜드 이론이다.

림랜드를 제패하는 자가 세계의 운명을 제패하게 될 것이라는 스파이크먼의 주장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사회만의 특징은 아니다. 자크 아탈리가 <미래의 물결>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고대로부터 세계의 경제는 거점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그 거점들(브루게, 베네치아, 앤트워프, 제노바, 암스테르담, 런던, 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은 해양문화의 연관을 가지고 있는 도시들이었다. 즉 도시 자체의 생산적 기반과 항구를 통한 물류 시스템의 통합이 가능한 지역들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해양과 대륙을 잇는 연결고리는 언제나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림랜드 이론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경제적 시장가치가 높은 유라시아 대륙이 아직까지 어떤 세력에 의해 구체적으로 정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유라시아 대륙의 지배가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때에 태평양과 대륙을 잇는 림랜드로서 한반도가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림랜드 이론을 통해서 세계 경제의 중심 거점으로서 부상하기 위해 대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것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 인식의 중심에는 우리의 희망과 비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전의 발전과 참된 진보를 위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해양의 지배를 통해 형성된 근대문명은 폭력의 방법으로 진행되어 왔다. 오늘날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 폭력성은 여전히 건재하다. 한반도가 세계 지배를 위한 도약을 꿈꾸는 과정 속에도 이러한 폭력성이 반복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 역사를 성찰해야 한다. 주경철 박사의 <문명과 바다>는 이런 점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필요한 인문서적이 아닐까?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문명

"근대세계는 바다를 통해 형성되었다." 기본적인 역사 상식만 가지고 있어도 이 명제를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명제 속에 들어 있는 문화적 상황들을 역사적으로 확립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서 "대항해시대" 등을 발표하여 바다와 관련된 역사 연구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저자는 1년여에 걸친 밀도 있는 글쓰기 작업을 통해 이 명제에 포함된 역사적 디테일을 섬세하게 가다듬었다. 그는 근대세계가 바다를 통해 형성되었음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기본 전제를 제시함으로써 내용를 전개한다.

"15세기 이전의 세계를 생각해 보자. 아메리카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은 아시아나 유럽과는 서로 소통이 끊어진 채 거의 별개의 세계로서 존재했고, 아프리카는 일부 해안 지역에 외지인이 도착한 것이 외에 내륙 지역은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었으며, 아시아는 실제적인 정보보다는 막연한 환상과 유언비어로 채색된 아득히 먼 곳이었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서 살아가던 각 대륙이 드디어 15세기부터 바닷길을 통해 서로 연결된 것은 세계사의 흐름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12).

세계 역사가 중세를 지나 근대로 접어든 시기가 언제인지 단정 짓기는 쉽지 않은 점이 있다. 문화적으로는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근대정신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종교적으로는 종교개혁과 더불어 중세가 무너졌으며, 철학적으로는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과학적 방법론이 근대주의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근대사회가 15세기의 대항해시대와 더불어 시작되었음을 강조한다. 바다를 통해 대륙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세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근대문명을 만들었다. 특히 해양팽창을 주도한 유럽인들에 의해서 전 세계는 복잡한 과정을 겪으면서 근대문명이 싹트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인도양을 통해 아시아 대륙으로, 대서양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명의 교류가 있었고, 서구문명사에서 일컬어지는 지리상의 발견도 이루어졌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선주민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이처럼 바다를 통한 서로 다른 세계의 만남은 전 지구적 근대화의 요인이 되었다. 저자는 과거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해상 팽창의 주역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주도권이 서유럽으로 넘어가게 된 원인에 주목함으로써 근대세계의 패권이 서유럽의 세력에 장악된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는 아시아와 유럽 세력의 바다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설명한다. 동양에서 바다(아프리카 동해안에서 일본에 이르는 광활한 아시아의 바다)는 누구나 왕래하며 교역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업무대였다.

"아랍 지역의 다우(dhow), 동남아시아의 종(jong), 중국의 정크(junk) 같은 배들이 이 바다를 누비고 다니면서 직물, 후추, 도자기와 같은 대중 소비품으로부터 진주, 향, 바다제비집 같은 고급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들을 거래했다."(20).

이처럼 바다는 비교적 평화로운 교역의 장소였다. 그러나 유럽이 바다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바다의 역사적 의미는 바뀌었다.

"바다를 특정 세력이 '지배'한다는 것에서부터가 공격적인 해외 팽창을 시도하던 근대 유럽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19).

저자는 "중국의 해상 후퇴와 곧바로 이어진 유럽의 해상 팽창"이 세계사의 흐름을 갈라놓았다고 강조한다. 유럽은 국가기구와 자본을 효율적으로 결합시켜 동인도회사라는 준국가기구를 만들어 바다를 장악하고 세계 무역을 주도해 나갔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바다를 장악한 세력들은 아시아에 자신들의 거점을 확보하고 단단하게 구축한 해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소위 '현지무역'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확립된 경제적인 지배력은 곧 정치적인 지배로까지 확장되어 결국 제국주의적 식민지배를 구축하였다.

근대문명과 폭력의 세계화

서유럽의 해양팽창이 이룩한 근대문명사는 사실상 폭력의 역사에 다름이 아니다. 대서양을 지배한 유럽의 세력들은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았다. 대륙정복의 과정에서 군사적인 폭력과 함께 경제적인 폭력도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그 대륙의 선주민들은 고유한 삶의 방식을 완전히 상실한 채 서유럽의 이데올로기에 함몰되고 말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폭력성이 넘쳐나는 근대 유럽의 해양지배 이데올로기를 현대적 시각에서 비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대포의 함을 앞세워 팽창해 나가면서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더 체계적인 폭력이 벌어졌고, 그 폭력의 범위가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산됐다. 근대의 세계화는 '폭력의 세계화'였다."(93).

유럽의 세계지배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은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근대 역사에서 매우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남미의 경우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상인들에 의해 무참히 약탈당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진출은 중세에 찬란히 꽃을 피웠던 마야와 잉카 문명과 같은 고대 문명들을 멸절시켰다. 중미와 북미의 경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콜럼버스의 대륙에 진입한 이래 아메리카 문명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정복당했다. 대다수의 선주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자유를 잃었다. 결국 이 대륙은 정복자들의 나라가 되어 버려 지금까지도 선주민들은 전통과 지배권을 철저하게 빼앗긴 채 근대화된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근대문명사를 폭력의 역사로 볼 때 소위 '지리상의 발견'은 매우 비극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유럽인들이 보면 신천지가 눈앞에 전개되는 새로운 약동의 역사의 시작이겠으나, 원래 그곳에 살던 땅주인의 관점에서는 최악의 비극의 시작일 터이다."(106).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이 10월 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기념할 때 다른 곳에서는 그 날을 '원주민의 날'과 같은 기념일로 삼아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다의 지배를 통해 형성된 근대문명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러한 침탈의 역사 속에서도 양심을 지킨 사람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저자는 라스카사스를 소개한다. 스페인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로스 앞에서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세풀베다에 맞서 선주민들의 권리를 옹호한 라스카사스는 이런 논지의 비판을 제기하였다.

"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당신들은 모두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겁니다. 이 사람들은 인간이 아닙니까? 그들 역시 이성적인 영혼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이 사람들은 가혹한 노예상태에 묶어두는 것입니까? 자기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이 사람들에게 무슨 권리로 전쟁을 벌인 것입니까?"(108).

1550년에 벌어진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몬테시노의 견해를 대변하는 라스카사스의 정신은 근대를 넘어 현대적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그 시대에도 이런 정직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인간은 시대정신을 넘어 보편정신을 소유한 이성적인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 이성은 도구적으로 사용할 뿐인 것이다. 유럽의 문명이 신대륙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과 그 폭력에 대한 대항 정신은 '미션'과 같은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폭력의 또 다른 면

저자는 근대 해양팽창 문명이 낳은 또 다른 폭력성으로 몇 가지의 요소들을 소개한다. 우선 바다를 개척하기 위해 투입된 노동인력들인 선원들에 대한 폭력성이다. 저자는 이들이야말로 억압과 착취의 대상인 최초의 프롤레타리아라고 분석한다. 선원들의 삶은 폭력으로 일상화된 노예와도 같은 삶이었다. 근대문명의 이면에는 이러한 착취의 역사가 있었음을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대륙간의 노예무역은 근대문명이 낳은 또 하나의 폭력문화였다. 대서양 노예무역을 통해 1천만 명 가까운 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대륙에 노예로 끌려갔다. 저자는 노예무역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두 시각으로 설명하면서 어느 하나의 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무역 자체는 매우 잔인한 폭력성의 실체를 드러내는 역사적 상황임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이처럼 분명하게 드러나는 폭력성 이외에 또 다른 폭력성이 바다의 문명확산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곧 문화적 파괴와 환경의 파괴이다. 바다를 통한 대륙 간의 만남으로 순수한 문화전통이 파괴되고 소멸된 것은 정신적 폭력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로 인해 수천 개의 언어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약 1천개 정도의 언어가 사용자 수 10여 명에 불과하여 곧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언어의 판도는 힘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었기 때문에 언어의 소멸은 곧 문화적 폭력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는 언어의 절멸을 막기 위한 몰입교육을 하는 역현상(국제적인 언어를 익히기 위한 몰입교육에 대한 역현상을 일컬음)도 발생하고 있다. 언어와 더불어 종교 역시 대표젹인 문화 폭력의 사례가 된다.

이로 인한 문화획일화를 우려한 나머지 지난 2001년 제3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세계문화 다양성 선언을 채택하여 사라져가는 인류의 고유문화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근대적 폭력성에 대한 반성으로 일어나고 있다.

생태환경의 파괴는 문화의 파괴보다도 더 심각한 폭력의 결과를 낳고 있다. 생태환경의 파괴는 산업적 목적에 따른 무분별한 남획의 결과도 있었고, 문명 간의 만남을 통해서 발생한 예기치 않는 병원균의 감염으로 인한 결과도 있었다.

미국의 버팔로, 북극 지역의 바다쇠오리, 북아메리카의 비버 등은 무분별한 남획으로 멸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문명권의 팽창으로 인한 수 많은 삼림들이 훼손되어 지구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저자는 제당산업의 발전이 가져온 삼림 훼손에 대한 사례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과 주변 섬들의 삼림이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특별히 해양팽창과 더불어 대형선박 건조에 필요한 마스트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식민지역의 삼림 훼손이 이루어졌음을 지적한다.

희망의 세계사를 위하여

물론 해양 팽창과 근대문명 형성의 역사가 폭력이라는 부정적인 요인으로만 점철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 과정 속에서는 미학적인 발전, 기술적인 진보, 우수한 문화적 교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간간이 삽입하고 있다. 해양교역과 더불어 인공염료의 개발과 보급이 이루어져 '색깔의 민주화'(다양한 색깔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현상을 일컬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중국의 차와 도자기 문명은 엄청난 역사적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서구문명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아유르베다가 체계화한 인도의 전통의학은 서구 식물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함으로써 문명 간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요소가 폭력성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그렇게 하기엔 근대문명의 폭력성은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역사를 성찰하는 이유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창출하기 위한 것인 만큼 그 폭력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그 교훈은 세계화가 폭력의 이름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대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세계화는 또 다시 폭력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지구적 근대문명을 만들어낸 과거의 폭력성은 현대사회에 들어서서 시장경제라는 또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역사 전면에 다시 등장하였다. 이 새로운 폭력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역사를 써 나가야 할 것인가?

주경철 박사는 "희망의 이름으로"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에필로그에서 주장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그가 제안하는 희망의 세계사는 간디의 방식, 즉 평화의 길이다. 폭력으로 얼룩진 근대문명사를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사실 그 역사적 교훈이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건 폭력의 역사를 묵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근대 해양팽창의 세계사에 등장한 폭력의 역사를 성찰하면서 오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 중심의 세계화 질서를 비판해야 한다. 그 비판의 기준은 물론 생명과 평화와 희망의 이름이어야 한다.

"우리 앞에 펼쳐질 지구촌의 미래는 기계적으로 정해진 길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398).

이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인간이 모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창조의 역사는 신의 역사만이 아니다. 신은 우리에게 그 역사를 일부 맡겨주었다. 그렇게 근대문명의 역사는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 역사가 비평과 성찰의 대상이 된다면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역사는 그와는 다른 역사여야 한다.

생명과 평화를 기준으로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일체의 폭력성을 몰아내고 패권주의에서 벗어나 상생의 세계사를 만든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의 미래를 위하여 근대문명의 역사를 성찰해야 한다. 이 책은 그 성찰의 과정에 도움을 줄 것이다.

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산처럼, 2009


#주경철 #문명과바다 #대항해시대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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