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맘대로 공교육 기간을 줄이나?

제2차 미래형교육과정 개편 토론회 내용 분석 ②

등록 2009.04.16 09:49수정 2009.04.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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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때문에 해직교사가 생기고 학생들은 시험을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가는 등 시끌시끌한 것에 비해 13일 교과부의 재채점결과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조용합니다. 하도 큰 일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러려니 포기해서일까 궁금합니다.

한켠에서는 초중등교육을 뒤흔들어놓을지도 모르는 교육과정 개편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 주체는 교과부도 아니고 대통령산하 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교육과정특위입니다. 전에 5․31교육개혁안을 추진하던 교육개혁위원회나 참여정부의 혁신위 같은 데에서 교육개혁의 상이나 교육과정 개편 밑그림을 그리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조용하고 재빠르게 아주 큰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체 그 내용이 어떤 것일까요? 일제고사 법제화에 이어 두 번째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2. 미래형 교육과정의  구조
1)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10년에서 9년으로 하향조정합니다.(중략)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10년에서 9년으로 하향조정하자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 현행 학제와 일치하게 함으로써 교육과정의 특징을 살릴 수 있다.
  □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성격을 진로 및 진학 교육으로 명료화할 수 있다.
  □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 특성화는 대학 입시 제도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다.
                                                         (제2차 미래형교육과정 토론회 발제문 중)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 10년에서 9년으로 줄여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기간은 모두 12년입니다. 7차 교육과정은 이 12년 중 10년(고1학년)까지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이라고 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 할 10개의 교과 내용을 교육했습니다. 고등학교 2, 3 학년은 선택교육과정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학교사정과 자기 진로를 고려해 몇 개의 교과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전처럼 문과, 이과, 예체능 이렇게만 나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갈 대학에 맞춰 여러 과목을 선택한다는 취지입니다.

정부는 7차 초기에 획일적인 교육을 바꿔낸다며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습니다. 속내를 보면 대학에 가기 쉬운 입시과목 중심으로 과목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심지어 33시간 중에서 국영수 시간이 20시간을 넘어 다른 교과들은 고사 위기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개편안을 보면 고등학교가 1학년/2, 3 학년 체제가 달라서 여러 어려움이 있고 비효율적이라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 1년을 줄인다는 겁니다. 언뜻 보면 고등학교 체제가 둘로 나뉘어 있다니 합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국민 합의도 없이 공교육 기간을 3년이나 줄이는 셈

우리 나라는 국민의 세금으로 학교를 세우고 교사들에게 월급을 주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가르치도록 합니다. 의무교육기간이 중학교까지 9년이지만 일반적으로 고등학교까지 공교육 기간으로 잡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완전 자율화한다면 공교육기간을 12년에서 9년으로 3년이나 줄이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는 고등학교를 초·중·고등학교 연장선에서 바라봤지만, 미래형교육과정은 고등학교를 대학교를 가기 위한 입시교육, 진로교육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9년만 공부해도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큰 문제가 없을까요? 3년간 입시교육만 해도 아무 문제 없는 걸까요? 연구진은 어떤 학문적 근거나 사회적 논의도 없이 고등학교 성격을 바꿔놓고,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을 단지 1년간 줄이는 거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대체 누가 연구진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을까요? 이런 결론은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온 걸까요? 

미래의 고등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물론 고등학교 졸업생 80%가 넘게 대학을 가는 마당에 교육과정은 입시교육으로 파행운영되고 진로를 고민한다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등학교가 대학만을 위해 존재해야 할까요?

발달단계상으로 보면 고등학교 시기에 자아 정체성을 고민하고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때입니다. 작년 초 프랑스나 핀란드 학생들과 우리 나라 학생 생활을 비교하는 방송을 보고 놀란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국의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폭넓은 세계관을 갖추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공부는 대학에 가서 하라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대학입시에서 해방시키고 급별 특성을 갖기 위해 프랑스 바깔로레아같은 졸업시험을 보는 게 낫다는 의견도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입시교육을 부정하고 벗어나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우리 학생들이나 대한민국의 미래에 적합할지는 진지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옳지 않을까요? 그런 다음에 교육과정 개편 방향을 정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두 가지가 같이 의논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사교육비만 늘어나고 교육양극화만 심해질 것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자율화되면 과연 고등학교 교육이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다양하고 특색 있는 교육을 하고 대한민국의 교육이 변화될까요? 지금도 입시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고등학교들이 하루 아침에 대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연구진의 바램처럼 정말 대학들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영향을 받아 입시 제도를 개선할까요? 고교등급제를 실시해도 아무런 제재도 내릴 수 없고 권한도 없다면서 너무 순진한 건가요? 모르는 척 하는 건가요?

그보다는 입시교육이 더욱 심해지고 결국은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아가 학부모에게 교육부담을 전가하고 국가는 시험관리나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작년에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만 20조 가까이 늘어나고 소득격차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도 커진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지면관계상 이만 줄이고 다음에는 고등학교 자율화와 사교육비의 관계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변화되는 사회 상황에 맞춰 고등학교 교육의 성격이나 공교육 기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소수 연구진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공개 논의와 합리적인 결정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이 문제를 더 공개적이고 진지하게 논의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변화되는 사회 상황에 맞춰 고등학교 교육의 성격이나 공교육 기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소수 연구진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공개 논의와 합리적인 결정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이 문제를 더 공개적이고 진지하게 논의하기를 바랍니다.
#미래형교육과정 #공교육기간 #사교육비 #교육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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