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교수 "대운하 포기는 촛불의 최대 성과"

'촛불 1주년' 평가 엇갈린 시대정신 토론회

등록 2009.04.22 21:14수정 2009.04.2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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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정신


촛불집회 1주년을 평가하는 보수단체의 토론회에서 사건의 성격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토론회를 주최한 인사들이 "정권을 빼앗긴 좌파세력들이 대중을 선동했다"며 진보단체와 방송 등에 책임을 돌린 반면, 윤평중 한신대 교수와 허문명 <동아일보> 차장 등의 패널들은 "보수층과 집권세력이 대중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고 자성론을 폈기 때문이다.

보수단체인 사단법인 시대정신이 22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연 토론회 제목은 '거짓과 광기의 100일'. 시대정신이 펴낸 동명의 책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에서 보듯 토론회의 목적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작된 작년 촛불시위가 한편의 '헛소동'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설파하는 것이었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국민 정서의 깊은 곳에는 지역감정, 종북주의 및 참여민주주의 등 반(反)대한민국적 정서가 도사리고 있다"며 "한미 쇠고기협상의 불완전성과 대선 패배에 따른 야당지지자들의 공허함과 서운함 등이 이념 갈등과 뒤섞여 광우병 사태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재교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광우병 촛불시위는 우리 사회를 강타한 하나의 태풍이었고, 촛불시위의 영향으로 민주당이 작년 말에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법안통과를 저지할 수 있었고, 용산참사를 촛불로 재점화하려는 등 후유증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해 법원의 온정주의를 문제 삼기도 했다. 이 교수는 "지난달까지 촛불시위 관련된 구속자 44명 중 실형 선고받은 사람은 6명에 불과하다"며 "법원이 불법폭력시위에 온정 일변도인 이상 이 사회에서 불법시위가 사라지길 기대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1987년 항쟁은 정권을 상대로 한 민주화 쟁취 투쟁이었지만, 2008년 촛불시위는 민주화된 정권을 상대로 정책적 요구를 하는 시위에 불과했다"며 촛불시위를 민주주의 축제로 보는 시각에도 부정했다.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는 "촛불시위는 자연발생적이었는데 광우병대책회의가 여기에 계속할 수 있는 엔진을 장착했고, '미국산쇠고기전면수입반대'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바람에 정부가 대미 추가협상을 한 후에도 시위에 제동을 걸 수 없게 만들었다"고 진보단체들을 비난했다.

홍성기 아주대 대우교수도 "대중들이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선동에 현혹됐다는 점에서 촛불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왔다. 특히 대중에게 사실을 전해야 할 기자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는커녕 일종의 지적인 대량살상무기(WMD)로 변신했다"고 언론을 비판했다.


"대중들이 기성 보수층에 엄청난 시그널 준 것"

반면,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촛불이 축제·유희라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며 이재교 교수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했다. 윤 교수는 "오늘 토론회가 촛불을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일면만을 부각시켜서 비판하는 것으로 비쳐지는데, 이렇게 되면 또 다른 왜곡이라는 부작용이 나오게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역과 계층을 초월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멀게는 고려·조선왕조시절부터 중앙집권국가가 시민사회를 압도했지만, 작년 촛불시위는 민주화 시대 이후 시민사회 역량이 극대화된 경험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집권세력의 정치적 감수성이나 상상력이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다 보니 시민사회가 국가에 정면으로 대응할 만한 역량을 축적했다는 인식을 못 한 것이다."

윤 교수는 "광우병대책회의 같은 조직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0.1%를 위한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광범위한 대중 참여를 이끌어냈다"며 "대운하 포기는 촛불이 거둔 최대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허문명 기자도 "촛불사건은 ▲ 보수세력의 대중 소통능력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 변화된 세상에 둔감하거나 오만하지 않았는지 ▲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생각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등등의 숙제를 남겼다"며 "대중들이 기성 보수층에 엄청난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몇몇 철없는 학생들의 모임에서 100만 명이 참여하는 시위로 번진 것은 이념 갈등 이전에 정부의 무능한 행정력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부와 대미협상에 납득 안가는 점이 많았다. 그리고 과학적 문제를 쉬운 언어로 대중에게 설득할 분들이 부족하더라.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마녀사냥 당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기자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대중들은 소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TV에서 찬반토론을 해도 논의의 중심은 비과학적인 사실을 전하는 편으로 옮겨가는 모습이 연출됐다."

허 기자는 "결론은 이번 일을 계기로 보수 이념을 전파할 사람들은 '문화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특히 먹거리나 환경 문제는 이념을 떠나서 말하는 쪽에 도덕적 우위가 부여되기 때문에 지식인 집단의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방청객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장년층의 생각은 이들과 달랐다. 토론회 말미 질의응답 시간에는 "대통령이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는데, 정부 내 공안계통에 남은 좌파들이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를 한 결과가 아니냐", "촛불은 좌파집권 10년 동안 친북반미세력이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방송국에 많이 침투한 결과"라는 발언이 줄을 이었다.
#윤평중 #허문명 #홍진표 #촛불집회 #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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