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그림이 포털에서 폭발적 반응"

<꽃><노근리 이야기>의 박건웅 작가

등록 2009.04.23 20:18수정 2009.04.2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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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노근리 이야기'의 주인공 박건웅 작가 ⓒ 임민아기자


한국만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에 둥지를 틀고 밤낮 작업실에 파묻혀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는 작가들을 차례로 만났다.

이번엔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그린 장편극화 <꽃>과 미군 양민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노근리 이야기>로 국내는 물론 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박건웅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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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화판 '태백산맥'이라 부르는 장편만화 '꽃' ⓒ 박건웅


작업 기간 5년의 장편만화 <꽃>, 또 하나의 장편만화 '노근리 이야기'

화가가 꿈이었다는 박건웅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이후 오랜 고민 끝에 만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회화는 하나의 그림에 모든 이야기를 함축시켜 담아내야 해서 답답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게 된 것이 만화였다. 만화는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갈 수 있는 매력적인 매체"라고 말했다.

또한 "영화는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대로 봐야하지만 만화는 칸과 칸이 사이를 읽어 내려가며 머릿속에서 공간을 그려내고 연상하게 된다"며 "다른 매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박건웅 작가는 그렇게 만화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작업 기간만 5년에 걸쳐 목판화 기법을 도입해 그려낸 장편극화 <꽃>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95년 입대 전부터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시작해 97년 제대 후 5년간 1200페이지에 육박하는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다.

그는 "구상하고 시나리오 준비한 것까지 하면 <꽃>이라는 작품에 쏟아 부은 시간이 7년 정도 된다. 처음 시작할 땐 분량이 1200페이지나 나올 거란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풀어내다보니 그림이 쌓이게 되고 길어지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돈 벌이로 다른 일도 해야 했지만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었다고 전한다. 물론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고 한 장, 한 장 쌓여가는 그림을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박 작가는 스스로 '만화판 태백산맥'이라 부르는 <꽃>에 이어 또 하나의 장편만화를 선보인다. <노근리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노근리 이야기>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충북 영동군 노근리 일대에서 미군에 의해 이루어진 대규모 양민학살 사건을 디테일하게 다룬 만화다.

박 작가의 두 작품은 국내에서도 이목을 끌었지만 해외에서 더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꽃>은 2006년 프랑스의 유명 만화 출판사 카스테르망(Casterman)에서 출간됐고, 같은 해 <노근리 이야기> 역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출판 및 기념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전시를 할 때, 그들의 역사적 배경이 우리와 비슷해서 그런지 많은 관심을 가져줬다"며 흥미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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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충북 영동군 노근리 일대에서 미군에 의해 이루어진 대규모 양민학살사건을 그린 '노근리 이야기' ⓒ 박건웅

"숨어있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만화로"

데뷔작부터 장편만화를 완성시키는 겁 없는 도전에도 응원을 보낼만한 일이지만, 그가 관심을 갖고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숨어있는 한국의 근현대사이기 때문에 더욱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독자들이 있다.

박 작가는 "보통의 작가들은 단편으로 시작해서 장편으로 가는데 나는 덜컥 장편부터 손을 댔다. 지금 보면 부족하고 아닌 것 같은 장면도 있지만, 숨은 이야기를 세상으로 끌어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작품들"이라며 "긴 시간 작품을 하면서 만화에 대한 훈련을 하게 됐고 만화를 좀 더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그 안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작업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근현대사 속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서 만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흔들리지 않고 '작가주의'의 길을 걷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당장 인기를 끌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서서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읽혀질 수 있는 만화를 만들고 싶다며 자신이 하는 일들이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아직은 만화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희소성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당장은 힘들지언정 시간이 흐르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며 "셰익스피어도 당대에는 3류 소설, 저질 소설로 분류되어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으로 인해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명작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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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작가의 작업실에 걸린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그림들 ⓒ 임민아기자


"만화라는 예술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

박 작가는 최근 정치적인 풍자나 사회적인 이슈를 꼬집어내는 그림을 다양한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얼마 전 발생했던 '용산참사'를 소재로 정부와 건설사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림을 그려 포털사이트에 올렸는데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그는 "조금은 충격적일 수도 있다. 포털사이트에 올렸다가 바로 삭제를 당했지만 그림을 본 누리꾼들의 반응이 정말 뜨거웠다. 철거민에게 물대포를 쏘아대는 용역과 경찰, 약자 편에 서지 않고 서둘러 수사를 종결한 검찰과 정부 그리고 재개발 이익만을 쫓는 대형 건설사를 개와 사자, 쥐로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내년쯤 그림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낼 계획이다. 예술은 그 자체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액자에 고정되어 머물러있는 예술이 아니라 낡은 것을 깨뜨리고 새롭게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라며 "만화 역시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해나가고 있다. 처음은 단세포였겠지만 점차 다세포로 변화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원과 투자의 개념을 확실하게 해야"

부천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에 들어와 작업을 한지 2년째, 그는 부천의 문화정책에 대해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부천시의 만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작가들에 대한 지원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가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시스템으로 좀 더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화산업에 있어 지원과 투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며 "투자는 돈을 주고 결과적으로 다시 회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문화산업에 있어서는 말 그대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산업에서 이루어지는 무형의 가치는 숫자놀음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형의 가치를 데이터화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야 제대로 된 문화사업자라고 할 수 있다"며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만화를 하면서도 만화로는 돈을 벌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만화로 돈을 벌고자하는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만화를 하면서 출판사의 요구에 의해서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창작이 자유롭지 못하고 그냥 그림만 그려내는 기능공일 수가 있다"며 "만화만큼 자유로운 상상력을 표현해낼 수 있는 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출판만화든 웹툰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의 맛'임을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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