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서 축구하는 것도 이제는 옛말?

모래 먼지만 날리던 학교 운동장,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등록 2009.05.18 13:50수정 2009.05.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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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중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학생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맨땅이었던 운동장이 지금은 이렇게 인조잔디가 깔렸습니다. 남강 중학교의 선배로서, 잔디에서 축구하는 학생들이 참으로 부럽기만 합니다. 이 사진은 2009년 5월 13일에 촬영 했습니다. ⓒ 이상규


10년 전인 1999년이었습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남강 중학교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맨땅에서 축구 연습하는 축구부원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재내들 맨땅에서 축구 잘 하려나? 어차피 경기는 잔디에서 하는데..."
"그러니까. 모래바닥에서 축구 열심히 하면 뭘해. 저렇게 해봤자 개인기 느는것도 아니고 골도 잘 넣을 수 있겠어?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학교 운동장에 잔디 좀 깔았으면 좋겠어."
"그게 말이 되냐? 그것도 막대한 돈이 있어야 가능하지. 돈 때문에 절대 못할 거야."
"천연잔디 안될 바에는 인조잔디라도 깔았으면 좋겠어. 문제는 그것도 돈을 써야한다는 것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어느 학교 운동장이든 전부 맨땅이었습니다. 맨땅 바닥은 오로지 모래로만 가득할 뿐이죠. 그런 곳에서 축구부들은 하루종일 맨땅에서 축구를 했습니다. 유럽 축구팀의 유스 선수들이 잔디구장에서 축구하는 것과는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죠. 더욱이 일본의 학교 축구부 선수들도 그때부터 잔디 운동장에서 공을 다루었습니다. 반면에 우리 축구부들의 현실은 열악했던 게 사실입니다.

현재 한국축구를 빛내고 있는 스타들도 어렸을 적부터 맨땅에서 축구를 했던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국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때마다 '개인기 및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여론의 질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기교가 뛰어난 선수들이 여럿 등장했지만, 제가 남강중을 다니던 10년 전에는 허정무 감독의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이 그런 말들이 많이 있었죠. 12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한국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이 브라질에 3-10 대패를 당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적 부진의 원인으로는 개인기와 골 결정력 문제가 꾸준히 거론 됐습니다. 사실 전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이 잔디가 아닌 맨땅이라는 것과, 효창 운동장(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의 잔디가 좋지 않지 않았던 것이 흠이었죠. 우선, 효창 운동장 같은 경우에는 인조잔디 아래에 있는 고무판이 얇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시멘트 바닥에서 축구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축구 유망주들이 효창 운동장에서 발목을 다치는 경우가 많았으며, 학교 코치들조차 축구부원들에게 태클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효창 운동장을 두고 '공포의 축구장'이라는 불명예 수식어를 안겨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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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중학교 축구부들이 학교 바로 위에 있는 남강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연습 하는 장면. 후배 축구부원들은 일반 학생들이 중학교 잔디구장에서 축구하는 시간 동안에 고등학교 운동장 맨땅에서 연습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반 학생들의 축구 시간이 끝나면 잔디구장으로 이동해서 축구 연습을 했죠. 사진에서 보이는 맨땅 운동장은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한 가운데를 보면, 물이 고여 있습니다. 축구부들은 그쪽 지역에서 연습을 할 수 없었습니다. ⓒ 이상규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학교 운동장이었습니다. 축구부원들이 맨땅에서 오랫동안 축구를 하다보니 좀처럼 발목이 유연해지지 못하면서 개인기와 골 결정력이 늘어나지 않는 문제점을 나타낸 것이죠. 반면에 유럽과 일본 유스 선수들은 잔디에서 축구 연습을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유럽 선수들을 따라잡고 일본 선수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으니, 흔히 말하는 정신력 없이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더욱 어이없던 것은 그때부터 한국 유스팀들이 일본 유스팀에 비기거나 패하는 경우가 잦았을 뿐더러(친선경기 포함) 중국 유스팀에조차 패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확실히 우리나라 축구의 인프라 문제가 옛날부터 말이 많았죠. 그래서 제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학교 운동장이 잔디가 아닌 맨땅이라서 호날두나 지단같은 선수들은 절대로 나올 수 없어"라고 말입니다.

'산소탱크' 박지성의 문제점인 골 결정력 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맨유 코칭스태프들이 박지성의 골 결정력 향상을 위한 특별 훈련을 시켰지만, 선수 본인의 실력은 여전히 그대로 였습니다. 이에 국내 취재진은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유 리저브팀 감독을 통해 "박지성의 골 결정력 부족은 한국 선수들이 어렸을 적부터 맨땅에서 축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목이 유연하지 않다"고 했지요. 그 인터뷰 내용이 지난해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후에 나온 것이어서, 이 소식을 접한 국내 축구팬들이 충격을 받았었지요.

문제는 이것이 축구부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반 학생들도 맨땅 운동장 때문에 피해(?)를 봤죠. 점심에 축구하러 나오면 수백명의 학생들이 맨땅에 몰려들었는데(요즘 학생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때는 초중고등학교때 항상 그랬습니다. 웬만한 학생들이 축구를 다 좋아했으니까요), 워낙 많은 학생들이 축구하다보니까 운동장은 항상 모래 먼지들이 날아다녔습니다.

특히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끝마치고 침을 뱉으면 자연스럽게 모래가 나오더군요. 학교 건물 위층에서는 모래 먼지들이 운동장에서 날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공기를 마시면서 축구를 즐겨야만 했으니 씁쓸한 면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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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중학교의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운동하는 학생들. 주변에는 푸른 나무들이 있으니, 후배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축구를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 이상규


지난 13일에 남강 중학교를 다녀왔을 때였습니다. 산책하러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길에 '예전 학교가 어떤지 돌아다녀볼까?'라는 마음에 남강 중학교와 남강 고등학교를 갔다왔는데, 중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가 깔린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놀랐던지 입이 '쫘악~' 벌어지더구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교 운동장에 잔디가 깔리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다녀와보니까 잔디가 깔려져 있었던 겁니다. 이게 웬일인지 참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랐던 것은 잔디에서 축구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것도 축구부원이 아닌 남강 중학교 학생들이기 때문에 저의 눈을 금방 사로잡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조끼까지 입고 편을 나누면서 즐겁게 축구하는 모습을 보니까 '후배들이 정말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잔디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초중고등학교 12년 내내 맨땅에서 축구를 즐기던 세대로서는 정말 놀랄만한 일입니다. 그때는 잔디에서 볼을 차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요. 제가 가장 잘하던 태클도 맨땅에서 맘껏 발휘하지 못하는 것과는 반대로 잔디에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남강 중학교 운동장에는 인조 잔디가 깔려 있습니다. 천연 잔디를 깔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관리가 철저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인조 잔디가 무난 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전국 여러곳에 인조잔디 축구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학교 운동장들까지 인조 잔디가 깔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학교 후배들이 잔디 깔린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으니 그저 부럽기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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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중학교 인조 잔디 축구장 바깥에 있는 육상 트랙과 CCTV. ⓒ 이상규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0년전까지만 해도 4개였던 농구 골대는(그 중 1개는 골대가 앞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제대로된 슛도 림을 맞고 나오기 일쑤였죠.) 7개로 늘어났으며, 맨땅이었던 코트 바닥까지 부드러운 인조 소재로 바뀌었습니다. 농구 골대 옆에는 멀리뛰기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잘 만들어져 있더군요. 그리고 축구장 밑에는 육상트랙 2개와 CCTV까지 마련 되어 있었습니다.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학교 운동장이 많은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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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중학교 축구장 이용 안내문. ⓒ 이상규


축구장 근처에 이용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알고봤더니 학교측이 독자적으로 지은것이 아니라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관악구청에서 도와줬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내용이었지만, 2006년부터 교육과학 기술부와 문화관광 체육부가 공동으로 각급 학교에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 지원 사업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충청일보>가 보도한 5월 1일 기사에 따르면 "한국 학교 체육시설 잔디 운동장이 전체 학교에 4.8% 수준이다"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잔디 운동장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니, 축구팬으로서 반갑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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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을때의 남강 중학교 인조잔디 축구장(윗쪽)과 남강 고등학교 맨땅 운동장(아랫쪽) 모습. 맨땅 운동장은 비가 내리면 물이 금방 고이는데 인조잔디 축구장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배수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물이 금방 빠지기 때문이죠. ⓒ 이상규


인조잔디 운동장과 맨땅 운동장의 가장 주된 차이점은 비가 올 때입니다. 전자 같은 경우에는 배수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물이 금방 빠지지만, 후자는 비가 내리면 물이 금방 고이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 16일에 촬영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중학교 축구장에 다시 한번 가보니까 조기 축구회 회원들이 축구하고 있더군요. 물이 고인 구역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과거에 맨땅 운동장 같았으면 한동안 축구를 할 수 없었죠.

맨땅 운동장 같은 경우, 비가 내릴 때마다 곤욕을 치르는 것은 학생들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체육시간이 되면 체육수업이 아닌 삽과 모래포대를 들어야만 했죠. 그래서 맨땅에 고여있는 빗물을 치우고 근처에 있는 모래들을 새롭게 덮어야만 했습니다. 제 기억에는 중3때 2번 정도 이런 일을 했었죠. 중1~중2 학생들은 어리니까요. 학생들 사이에서는 '막노동한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습니다. 체육 수업 진도 또한 정상적으로 진행하기가 어려웠죠. 인조잔디 운동장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니 잔디가 깔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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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중학교 인조잔디 구장의 배수시설 사진. 그라운드가 지면보다 약간 높게 쌓여있다보니 빗물이 바깥으로 흐르기가 수월합니다. 그라운드 테두리에는 물이 밑으로 빠질 수 있도록 별도의 배수시설을 설치 했습니다. ⓒ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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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잔디 축구장이 동네 근처에 있다는 것은 지역 주민으로서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지역 내에 있는 조기축구회가 우승하면 저렇게 홍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저희 동네 사진입니다. ⓒ 이상규


아까 전까지 인조잔디에 대한 칭찬을 늘어 놓았다면, 지금부터는 쓴소리를 하겠습니다. 인조잔디 구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인조잔디 구장은 재질이 고무와 플라스틱 물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엄청난 빛을 받으면서 고온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조잔디에서 축구하다가 화상을 입는 경우가 있는데 무더운 여름에는 피해가 더 심하죠. 특히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이 우려 됩니다. 교사를 비롯한 학교 측에서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인조잔디로 인한 피해가 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축구부원 같은 경우에는 일반 학생보다 격렬하게 운동하기 때문에 발목과 무릎 부상을 주의해야겠지요.

요즘에는 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고무 분말에서 중금속과 발암 물질이 검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진보신당 경기도당과 경기환경 운동 연합이 지난해 12월 경기도 3개 학교 인조잔디 운동장을 검사하면서 유해물질을 검출했다는 사실을 알렸죠. 인조잔디 구장을 조성한다고 하더라도 환경적인 문제를 게을리 넘어가면 학생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겠죠.

아직은 인조 잔디구장 조성 사업이 초기 단계이거나 중간으로 접어드는 시점이기 때문에, 정부측에서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종합하여 잔디구장에 대한 불안 요소들을 잠재울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았으면 합니다. 인조잔디를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점을 계속 방관하면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인조잔디 구장이 학교 운동장에 생긴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맨땅보다는 더 좋은 시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조잔디라는 존재가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칼을 잘못 다스리면 학생들에 대한 피해가 우려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학교측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를 시행했던 정부측에서도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학교 체육 및 한국 축구의 인프라가 양적 질적으로 발전하려면 아직은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저 과도기일 뿐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so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so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조잔디 #축구장 #배수시설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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