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의 환경부 장관님, 지방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주장] 지방으로 직장을 옮기는 일이 언제부터 '처벌'이 됐나

등록 2009.05.22 10:53수정 2009.05.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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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의 환경부장관 ⓒ 유성호

이만의 환경부장관 ⓒ 유성호

흘려버릴 뻔했던 기사가 눈에 띈다. 지난 5월7일자 이만의 환경부장관이 전 환경부 직원에게 '금연'을 선언했단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위에 링크한 매일경제 기사를 보면 "이 장관은 '담배를 피우는 직원은 지방으로 보내버리겠다"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직원들 또한 지방으로 가기 싫어서 즉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단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이외의 '지방'은 일종의 '유배지'라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 정권때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헌법소원 판결을 할 때도 이런 인식이 표출됐다. 이는 비상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원광대학교 철학과 김도종 교수는 <동서저널>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고려시대 이후 우리나라에는 지방 자치 개념이 없었을 뿐 아니라 중앙 정부도 지방 정책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황실이거나 세도가이거나 간에 서울에서 권력 유지만 하면 그 뿐이었다. 권력투쟁은 있었지만 정치는 없었다고나 할까? 봉건제도가 있었던 나라는 상대적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 발전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지방자치도 일찍부터 정착되었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일이다. 봉건제가 유지 되었던 외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사람들이(특히 서울사람들이) 생각하는 지방은 단지 이등시민이 거주하거나 아니면 유배지에 불과한 곳이었다."(월간 동서저널 6월호)

 

또 <전북중앙신문> 5월14일자에 게재된 기사는 이런 제목을 달았다.

 

"정부 사실상 지역균형발전 포기, 개발제한구역 해제 도시용지 활용 승인, 비 수도권 죽이는 졸작."

 

한마디로 지방시민들의 절망적인 자포자기 상황을 꼬집는 제목이다.

 

"서울이 영원한 중심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한편 김도종 교수는 이에 대해서 지방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에 줄 대어 출세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중앙정부의 '인맥'에 의지해서 밥 한 술 더 얻어먹으려는 변방의식부터 고쳐야 한다. 이런 지방사람의 행태가 나라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서울의 지배자들은 스스로를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변방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제는 중국의 변방이 되려고 한다. 이른바 실용외교라는 그럴싸한 이론을 내세워 알아서 기는것이 우리 정부의 모양새다"(동서저널 6월호)

 

김 교수는 끝으로 서울이 영원한 중심이라고 믿는 서울사람이나, 지방은 영원한 변방이라고 믿는 지방사람은 동일하게 창조적인 인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이만의 환경부장관의 "지방으로 보내버릴 것"이라는 발언이 얼마나 겁이 났으면,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금연'까지 할까. "지방이 어때서?"라며 담배를 꼬나물고 유유히 부산으로, 또는 대구나 영덕으로 가면 안 되나? 안타깝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향후 지방에 '청와대'가 옮겨가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고, 행정부가 옮기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 같다.

 

"도대체 지방이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소설가 이외수는 '지렁이'라는 시에서 단 한 줄로 이렇게 표현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 했습니까."

 

기자는 "도대체 지방이 뭘 잘못했습니까" 라고 말하고 싶다.

 

지렁이가 뭘 그리 큰 잘못을 했기에 사람들은 밟고 지나갈까. 그리고 지방이 뭘 그리 잘못했기에 "지방으로 보내버릴까"라며 협박을 당해야 하나.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예탁결제원, 국민연금공단 등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할 예정인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애초 계획과는 달리 본사 건물을 매각하지 않고 이전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언론에서는 사실상 껍데기만 옮기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뿌리 깊은 '지방거부'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서울'은 본사요 '지방'은 좌천이라는 선입관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기자에게 몇 년 전 돌아가신 형님이 한 분 있었다.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살던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가려 한다고 했다. 가격을 알아보니 서울에서 전세로 들어갈 정도면 지방에서는 더 큰 평수의 아파트 매매도 가능하다. 그러나 형님은 반대했다. 첫째 이유가 '자녀교육' 때문이었고, 둘째는 그래도 서울이 '돈'이 잘 돈단다. 사업하는 사람이 그렇다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어촌마을에서 태어나 서울로 가서 결혼하고 사업을 하던 형님이었으니 쉽게 결단을 내리기도 어려웠을 법하다.

 

그런데 그 형님이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고 한다. "고향에 가고 싶다"는 것. 그 당시 이미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심장병이 걸려 있었지만, 그런 몸을 안고도 쉽게 지방으로 올 수 없었던 처지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결국 서울에서의 피나는 생존경쟁에서 실패한 결과는 '죽음'이었다.

 

서울에서 막힌 숨통, 지방에서 뚫어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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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0일 헌재의 행정수도 위헌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충청권 주민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2007년 7월 20일 헌재의 행정수도 위헌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충청권 주민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이처럼 서울에서 살아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왜 서울을 떠날 수 없을까. 그리고 지방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중앙정부는 말끝마다 "지방발령"을 협박으로 사용하는 걸까. 지방이 도대체 서울에게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수도 서울이 만들어진 이후 줄곧 지방은 불평등에 희생됐고, 서울에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단지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천혜의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한 죄밖에 더 있나.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수도권 규제완화는 지방을 두 번 죽이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서울'을 옮기려는 개혁을 단행했던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다.

 

세금도 그렇다. 지방시민들이 낸 세금을 서울에서 가져간다. 그리고 지방에서 필요하다면 온갖 생색을 내면서 돌려준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왜 지방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낸 세금을 서울로부터 받아야 할까.

 

환경부 장관의 이런 발언은 장관 혼자만의 인식이 아니다.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생각이고, 이는 이기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요직 인사들이 나서서 '지방차별'을 하고, 더 나아가 '지방=처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국가균형발전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지방으로 보내버린다"는 말에 대해 사과하기를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5.22 10:5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만의 #환경부 #수도권규제완화 #환경부장관 #지방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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