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의 죽음이 남기고 간 것

"당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등록 2009.05.25 10:06수정 2009.05.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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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이튿날(24일), 각 지역에 마련된 분향소로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다.

 

무거운 가슴을 안고 시청 앞 분향소로 향하던 중, 추모의 물결 앞에서도 긴장태세를 늦추지 않고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을 전경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전경차를 비집고 들어가며 또다시 가슴 속의 울분을 터트리기보다, 유난히도 굴곡진 삶을 보낸 한 사람을 오늘만큼은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영등포구 민주당사에 설치된 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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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사 건물 앞 분향소로 향하는 길, 어제 내린 비로 아스팔트 바닥이 젖어있다. ⓒ 김솔미

민주당사 건물 앞 분향소로 향하는 길, 어제 내린 비로 아스팔트 바닥이 젖어있다. ⓒ 김솔미

대낮임에도 민주당사 입구 옆의 청과물시장은 재래시장의 활기를 잃은 채, 어두운 표정으로 오가는 시민들과 함께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가 환한 햇살에도 마르지 않아 분향소로 향해있는 아스팔트 바닥이 질척거렸다.

 

당신의 환한 미소...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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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민주당사 건물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입니다. 편히 잠드소서"라는 문구와 함께 환하게 웃고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 ⓒ 김솔미

▲ 영등포 민주당사 건물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입니다. 편히 잠드소서"라는 문구와 함께 환하게 웃고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 ⓒ 김솔미

민주당사 입구로 들어섰을 때,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입니다'는 문구와 함께 검은 바탕의 현수막 속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먼저 눈에 띄었다. 환한 미소로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그의 순박한 표정에 가슴이 미어졌다.  

 

상주를 대신한 고인의 측근들은 애도하는 조문객들이 가는 곳곳마다 지켜 서서 손을 잡아주고, 때로는 함께 눈물 흘렸다. 과분했다. 나는 오늘 하루 슬프지만 이들은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곁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며, 그 눈물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이제 함께 운다. 시민들의 눈물은 단순히 고인과 그의 유가족들에 대한 애도만은 아니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을 향해 던졌던 수많은 돌들에 대한 죄스러움이었다. 또한 그를 죽음으로 까지 몰고 간 무언가에 대한 원망이었다.

 

다시 타오르게 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하면서까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고 동정하지만, 그는 그만큼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견뎌냈고,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정의와 인권을 위해 싸웠다. 대통령 취임 후, 야당의 끊임없는 견제 속에 탄핵의 위기까지 겪었으나 끝까지 자리를 지켜냈다. 이런 그에게 '힘들어서 포기'란 있을 수 없다.

 

더 이상 촛불로도, 진정성으로도 통하지 않는 오늘, 자신의 몸을 던져 말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꺼져가는 불씨를 던져 다시 타오르게 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으로서, 한 국민으로서 죽음도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의 눈물을 잊지 마세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부모 따라 콧물까지 훌쩍대며 우는 한 아이를 상주를 대신한 한 남자가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던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아이가 컸을 때는 부디 오늘과 같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아무것도 모른 채 흘렸던 일곱 살 꼬마의 눈물이 20년 후에는 이전에 미처 이루지 못한 변화의 바람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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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 입구,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 김솔미

분향소 입구,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 김솔미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노 전 대통령의 환한 미소를 뒤로 하고 분향소를 나서는 길, 햇살은 여전히 눈부신데 빗방울이 추적추적 떨어져 어깨를 적셔버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올릴 예정입니다.

2009.05.25 10:0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올릴 예정입니다.
#노무현 #분향소 #민주당사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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