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청개구리
2006년에 '황금펜아동문학상(동시)'을 받고, 2008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동시)'에 뽑혔으며, 광주에서 어린이집을 꾸리는 김영미 님이 동시모음 《재개발 아파트》를 펴냈습니다. 그무렵 신춘문예 심사를 맡은 분들은 "새로운 시적 발견인가 하는 점에서는 다소 주저되는 면이 있긴 하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하고 진지한 점이 돋보인다(한국일보 2008.1.2.)"고 적습니다. 출판사 인터넷방에 적힌 소개글을 살피면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인식 위에 따뜻한 희망이 얹어 있"다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동시모음 《재개발 아파트》는 이제까지 나온 동시모음과 견주면 이름부터 남다릅니다. 다른 동시 작품은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인식'이 있다고는 거의 느낄 수 없는 터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나라에도 무언가 빛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이 선보였는가 싶어 좀더 눈길이 갑니다.
고구마를 이야기하면서도 '먹기만 하는' 고구마가 아니라, 아이가 '손수 호미를 쥐고 캐는' 고구마를 이야기합니다. 재개발 아파트를 바라보면서도 여느 어른들과 달리 돈이나 싸움이 아닌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는 눈썰미를 느낍니다.
.. 나도 반가워 / 밭이랑으로 / 달려가 / 고구마 캤지요 // 아빠 고구마를 캐니 / 엄마 고구마 / 아기 고구마 / 줄줄이 따라나와요 // 고구마 식구들은 / 땅속에서도 / 날마다 꼬옥 / 손잡고 있었나 봐요 .. (고구마)그렇지만 《재개발 아파트》에 실린 여러 작품을 읽고 돌아보는 동안 마음이 답답합니다. 속시원하게 뚫는 작품은 찾아보기 수월하지 않고, 책방과 도서관 책시렁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말장난 동시'는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어느 구석인가 갑갑합니다.
글쓴이는 머리말에서 신춘문예에 뽑힌 뒤 기자하고 만나던 이야기를 적어 놓습니다. 기자는 글쓴이한테 "아무리 봐도 재개발 아파트와는 상관없는 분 같은데요?" 하고 물었다는데, 글쓴이는 "그 말은 가난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냐는 것이었지요. 농담처럼 물었지만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 나에게도 가난한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풍족이라는 것은 상상 속에, 아니면 책 속에서나 가능했던 시절, 수줍고 내성적이던 나는 가난이 부끄러워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가난해서 부끄러웠고, 이제는 가난하지 않아서 부끄러운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하고 생각합니다. 기자한테는 대충 얼버무리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머리말에서 글쓴이 스스로 밝힙니다만, 글쓴이는 '이제는 가난하지 않으나 어린 날에는 가난했던' 분입니다. 아마, 오늘날 수많은 어른들이 글쓴이와 비슷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먹을거리 입을거리 모자라고 작은 방 한 칸에 큰식구가 끼어 살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어른은 드물리라 봅니다.
이런 지난날은 조금도 부끄러울 까닭이 없습니다. 살림을 편 오늘날 또한 하나도 부끄러울 구석이 없습니다. 가난한 지난날은 가난한 대로 좋고, 넉넉한 오늘날은 넉넉한 대로 좋습니다. 가난하니 얻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넉넉하니 베풀기도 하고 주기도 합니다. 얻는다고 창피할 까닭 없고 준다고 으스댈 까닭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 현수네가 도시로 이사 가고 / 끝까지 남아서 / 집을 지켜 주던 할머니마저 / 돌아가신 후 / 집은 정말로 혼자가 되었어 // 있는 힘을 다해 / 기둥을 받치고 / 주춧돌에 힘을 줬지만 / 아주 조금식 / 집은 알몸으로 허물어져 갔지 .. (현수네 빈집)가난해 보이지 않더라도, 아니 가난하게 살지 않더라도 가난은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내 가슴이 가난한 벗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또한 가난한 이는 못 보거나 못 느끼는 대목까지 살포시 잡아채면서 무척 싱그럽고 훌륭히 펼쳐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하여 가난한 삶을 모두 잘 그려내지 않습니다. 스스로 굴레에 갇히거나 발목에 쇠사슬을 매어 놓고 있으면 가난이건 무엇이건 어느 하나 제대로 그려내지 못합니다.
누구한테나 마찬가지입니다만, 가슴이 있느냐 없느냐로 시를 쓰지 머리로 시를 쓰지 않습니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로 시를 쓰지 않습니다. 집이 크냐 작으냐로 시를 쓰지 않습니다. 골목동네에 산다 하여 골목동네 삶자락을 사진으로 더 잘 담는다든지 소설로 잘 풀어낸다든지 하지 않아요. 골목동네에 안 살고 있어도, 골목동네 사람들과 이웃이 되고 벗이 되고 언니오빠동생이 되는 매무새라면 얼마든지 사진 잘 찍고 소설 잘 쓰고 동시 잘 엮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