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나타·그랜저, 57초에 1대씩 '뚝딱!'
국내 점유율 81%, '경쟁자가 없다'

[르포] '로봇이 춤추는' 현대차 아산공장

등록 2009.06.09 11:48수정 2009.06.0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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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삐리삐리 삐릴리~'

귀청을 때리는 기계음과 함께 한쪽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린다. 자동차의 내·외판을 이루는 패널을 필요한 모양으로 찍어내기 위해 프레스기까지 운반해주는 차량에서 나는 소리다. 그런데 사각형 모양으로 바닥에 넓적하게 깔린 이 운반 차량에는 운전석도, 운전자도 없다. 바닥에 표시된 라인을 적외선으로 탐지해 움직이는 '무인운반차량(AGV)'이기 때문이다.

로봇과 인간이 상존하는 자동차 공장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안에 있는 5천톤 프레스 ⓒ 현대자동차


4일 오전 현대자동차의 아산공장을 찾았다. 프레스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올라온 수십 개의 코일들이 쌓여있다. 안쪽에선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5000t급 상용 프레스기가 4초당 1개씩 자동차 외관을 찍어내고 있다. 각 기종에 맞춰 금형을 교체하는 시간은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작업은 대부분 로봇이 하고 있다. 로봇의 80%가 10년 전 현대중공업에서 만든 것이다. 

6단 적재 창고에 있던 패널이 천장 통로를 통해 옮겨진 곳은 차체공장. 아직 뼈대만 앙상한 차체가 유유히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움직인다.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어른 키 정도의 길쭉한 사각기둥 모양의 대형 로봇 팔이 차체를 향해 서서히 접근한다. '윙~' 소리와 함께 로봇 팔이 360도 회전하면서 용접 불꽃이 튀었고, 순식간에 자동차 차체의 상하좌우 껍데기가 덮어졌다. 아직 어설프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3차원적인 차의 모습을 갖추는 순간이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안에 있는 차체 공장 ⓒ 현대자동차


'메인벅'이란 공정인데, 대형 로봇 팔은 사실 1개가 아니라 12개의 용접 로봇 팔이 합체돼 있다. 자동차의 사이드 양쪽과 루프, 바닥, 카울, 범퍼 등 프레스공정에서 나온 차체를 12개의 용접기가 한번에 용접한다. 특히 로봇 팔의 사각면은 각각 쏘나타용과 그랜저용으로 나뉘어 있어서, 자동차의 기종에 따라 메인벅 로봇이 알아서 작동을 한다.

아산공장은 현재 같은 라인에서 그랜저와 쏘나타를 번갈아 생산하고 있다. 필요할 경우 4가지 차종을 한 라인에서 그대로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같다. 하지만 사람의 손은 거의 가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안에 있는 자체 공장 ⓒ 현대자동차


메인벅을 벗어난 이후에도 차문과 후드 등을 자동화된 로봇이 용접하고 볼트를 조여준다. 고열 레이저 광선으로 용접하기 때문에 기계가 차체에 직접 닿지 않아 변형이 없고 내구성이 뛰어나다.

용접뿐만이 아니다. 용접이 잘 됐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것도 로봇의 몫이다.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레이저 로봇 팔 6대가 현란한 몸짓으로 차체 136개 중요 지점 구석구석을 꼼꼼히 점검해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

프레스 및 차체공장의 자동화율은 100%다. 모두 344대의 자동화 로봇이 시간당 68대, 54초당 1대의 차체를 만든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어진 도장 공정에서는 14가지 색깔을 사용해 차체에 색을 입힌다. 세척하고 염료를 입히고 열처리를 하는 과정을 3~4회 반복하는데, 1대당 11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해서 10년 이상 녹이 슬지 않는 차체가 만들어진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내 의장 라인 ⓒ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거친 숨결과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조립(의장) 공정이다. 타이어 결합 등을 제외한 대부분 작업에 섬세함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력이 가장 많이 집중돼 있다. 4000여 명의 전체 직원 중 조립 공정에만 1100명의 노동자가 근무한다. 250개 외주·협력업체에서 가져온 3만여 개의 각종 부품을 노동자들이 꼼꼼한 손길로 차체에 장착하면, 비로소 완성차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57초당 1대꼴로 차체가 각 공정을 지나가기 때문에 그 안에 노동자들은 맡은 작업을 끝내야 한다. 57초에 1대씩 만들어진 차가 하루 1200여 대. 연간 30만대가 이 곳 아산공장에서 생산돼 새 주인을 찾아 나선다.  완성차 외에도 85만대의 첨단 엔진이 아산공장에서 만들어진다. 공장 어디에서도 경기 침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로봇과 인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은 대량 생산과 품질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다.

'잘 팔리는 차' 쏘나타·그랜저의 이유있는 돌풍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안에 있는 주행시험장 ⓒ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지난 1996년 2조 원을 들여 180만㎡ 부지에 첨단 자동차 생산 라인을 갖춘 아산공장을 세웠다. 슬로바키아 공장과 미국 조지아 공장도 아산공장이 모태가 됐다. 현대차가 울산공장의 5분의 1규모인 아산공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현대차가 만드는 전체 승용 및 레저용 차량(RV) 14개 모델 중 아산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고작 쏘나타와 그랜저 2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중요도는 현대차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크다. 쏘나타와 그랜저는 오랫동안 국내 완성차 업체의 전체 차종 중 '가장 잘 팔리는 차' 순위 1, 2위를 다퉈왔다.

특히 올 들어 지난달까지 모델별 내수판매 순위를 보면 쏘나타(4만2876대)가 기아차 뉴모닝(4만1524대)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5월에만 1만2152대가 팔리면서 4개월 만에 선두를 탈환한 것이다. 지난 4월(7806대)에 비해서도 55.7%가 늘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내 완성차OK 라인 ⓒ 현대자동차


그랜저 역시 '잘 팔리는 차'에 명단을 올리며 선전했다. 그랜저는 지난 4월 판매 순위가 5위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달 1만642대가 팔려 쏘나타에 이어 2위로 뛰어올랐다. 전월 대비 130.9%의 신장률을 보이며 1986년 1세대 그랜저가 나온 이후 월별기준 사상 최대 판매치를 기록한 것이다.

원래 '잘 팔리는 차' 족보에 늘 올랐지만, 최근 두 차의 선전은 정부의 개별소비세 30%인하와 노후차 교체 세제지원(한도 250만원) 덕을 많이 봤다. 노후차 교체시 세제혜택 폭이 소형차보다 중·대형차가 더 많은데다, 기존 차량을 9년 이상 탄 소비자들은 차를 바꿀 때 아무래도 기존에 탔던 차보다 더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쌍용차와 GM대우가 구조조정 등의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심리상 안정된 회사의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쏘나타와 그랜저로 몰렸다는 분석이다.

쏘나타·그랜저의 돌풍에 힘입어 현대차는 국내시장에서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같은 계열사인 기아차까지 합치면 8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촬영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전경 ⓒ 현대자동차


8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 5월까지 국내에서 각각 24만415대, 14만6518대를 판매해 81.3%의 시장점유율을 보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6.5%)에 비해 4.8% 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 1월 48%의 점유율로 시작해 2월부터 50% 대를 넘어서더니, 5월에는 51.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기아차도 지난 1월 29.9%에서 5월 30.5%로 점유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판매량 10위 안에 드는 모델 중 르노삼성의 'SM5'와 GM대우의 '라세티 프리미어'를 제외하면 8개 모델을 현대·기아차가 독식했다. 현대·기아차는 세계 3대 시장인 중국, 미국, 서유럽에서도 지난 3월 이후 지속적인 상승 분위기를 타고 있다.

세계 자동차 업체의 구조조정 속에서 지속적인 점유율 상승을 유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게 당분간 국내 경쟁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쌍용차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이 크다"며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수입차와의 경쟁 및 해외 시장 진출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쏘나타 #그랜져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기아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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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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