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이 가장 좋았어요"

[영화관알바체험담3] 곳곳에 감시카메라, 누굴 위해 존재하나?

등록 2009.06.10 10:27수정 2009.06.1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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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입사한 후, 처음 동료들에게 들은 은밀한(?) 정보는 팝콘기계 앞 사각지대다. 영화관 알바 주제에 무슨 군사용어냐고? 과장을 조금 보태 영화관 안에서는 '감시카메라를 피해 잠깐 숨어 쉴 곳을 찾는 아르바이트생'과 '노는 아르바이트생을 찾아 일을 시키려는 슈퍼바이저'와의 보이지 않는 사투가 벌어진다. 

 

팝콘기계 앞 사각지대는 바로 이 감시카메라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작은 공간을 말한다. 공간이라고 하기도 뭐한 한 사람이 서면 딱 맞을 크기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이런 위치를 찾아 낼 만큼 영화관 곳곳에 존재하는 감시카메라가 아르바이트생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혼자 있어도 늘 긴장…무전기가 라디오처럼 느껴져

 

각자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하는 탓에 근무 시간 중 동료들 간의 대화는 거의 단절된다. 그 때문에 고객을 응대할 때 외에는 철저히 자기만의 시간이다. 석모(25)군은 지난 달 퇴사하면서 OO씨와  한 달이 넘도록 같은 시간에 근무했지만, "아직 말도 놓지 못했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또한 "무전을 통해 들리는 동료들의 딱딱한 업무상의 대화조차 라디오처럼 반갑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외로움의 시간조차 영화관 곳곳에 달려있는 CCTV로 인해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분명 감시카메라의 원래 목적은 보안, 혹은 특별한 사건이 터질 경우 재확인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긴장감의 몫은 늘 아르바이트생에게 있다.

 

간혹 사무실에서 CCTV를 보던 슈퍼바이저의 "OO씨, 정자세 유지하세요"라는 무전에 당사자가 아니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될 때가 있다. 24시간 감시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눈이 언제든 나를 향할 수도 있다는 느낌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우리의 감정이야 어떻든 이는 종업원의 해이해진 마음을 조여 주는 대단히 효율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어디까지나 '슈퍼바이저'의 처지에서는.

 

권리는 어디로 가고 의무만 남았나

 

근무 시간 중에 숨어 쉴 곳을 찾는다든가, 누군가 지켜보지 않는다고 흐트러진 태도를 보인다면 지적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6시간에서 9시간을 일정한 자세로 서 있거나 뛰어다녀야하는 근무환경도 당연한 건가.

 

근로기준법 상에서 법정 휴게시간은 4시간 근무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C영화관의 경우, 6시간 근무자들은 휴게시간이 없다.

 

이러한 근무환경 탓에 6시간 일하는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우습게도 짧은 자유가 허락되는 '화장실'이다. 곳곳에서 빨간 눈으로 감시하는 감시카메라들 속에 있다 보면, 화장실에서도 주위를 살펴보며 어디선가 감시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휴게시간의 법적기준에 관해서는 노동부의 한 관계자로부터 "업종의 특성상 중간에 휴식이 불가능할 경우는 예외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업종의 특성이라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오히려 "어디에서 일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동안 일하면서 법정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던 '음식점, 편의점, 영화관'을 예로 들어 봤으나, 또다시 "그런 곳은 '업종의 특성상' 안 될 수 있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러한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제대로 듣지도 않고도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관계자의 태도가 아쉽다. 노동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곳인지 자본가의 권리를 보호하는 곳인지 의심스럽다. 

 

오늘도 여전히 법적인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고용인으로서의 의무만 있는 '알바생'을 향한 빨간 눈은 24시간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영화관 알바 경험담 4] 계속됩니다.

이 죽일 놈의 '숏(short)값'

하루 2만4천원 벌어, 만 2천원 반납한 사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blog.ohmynews.com/haimil8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6.10 10:27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blog.ohmynews.com/haimil8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관 #영화관알바 #감시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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