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변호사가 ‘무균질’ 젊은 법관들에 충고 눈길

이재동 변호사 "오만한 수재 아닌, 끊임없이 회의하는 겸손한 법관 원해"

등록 2009.06.10 10:25수정 2009.06.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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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법관 대다수가 사회적인 경험이 거의 없는 책상물림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법관이 좁은 시야를 가진 오만한 수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한 권력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자신의 판단에 끊임없이 회의하는 겸손한 사람을 원한다."

중견 법조인인 대구지방변호사회 이재동 변호사(50ㆍ사법시험 32회)는 대한변호사협회가 격주로 발행한 대한변협신문 8일자(275호)에 기고한 '무균질 법관'이라는 칼럼에서 젊은 법관들에게 이 같이 충고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먼저 "법정은 신성하고 공평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법정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며 "법관이 판단하는 대상은 보통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활관계이며, 이것을 무결점의 진공상태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 찌든 평균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 변호사는 "오늘날 법관에게 부족한 것은 좋은 머리나 법률적인 지식이 아니라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서민의 팍팍한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좋은 법관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고독한 수도승과 같은 것이 아니라, 부정한 시대에 몸담고 살아가면서 세속적인 욕망에 고민하고 회의하는 생활인이 아닐까"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강단에서 다시 법정으로 복귀한 양창수 대법관은 취임사에서 법관으로서의 임무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사건마다 그 배후에 놓인 생활관계의 속살을 생생하게 직관할 수 있도록 정신의 탄력을 잃지 말고 상상력과 감수성을 예리하게 연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런데 그 능력은 법학서적이나 대법원 판례집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현실생활과의 끊임없는 접촉에 의하여 얻는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법관임용제도의 현실을 본다면 젊은 법관 대다수가 사회적인 경험이 거의 없는 책상물림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옛날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좋은 환경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안정된 미래를 위해 공부에 몰두한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과연 무가치한 욕망과 기괴한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을 법정에서 접하게 될 때 그 이해의 정도는 어떠할까 하는 걱정이 든다"고 우려했다.


또 "그래서 현실에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대법원 판례에 현실을 억지로 적용시키려는 경우도 보게 된다"며 "하늘 아래 꼭 같은 사건은 없는 법인데도, 사건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관련된 대법원 판례를 열거하면서 재판이 끝난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변호사는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거쳐 대학을 다니고, 사법시험을 거쳐 판사로 임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임용된 후에도 과중한 업무량에 집에서도 쉴 틈이 없는 현실에서 정말 무리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젊은 판사들이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책을 읽기를 바란다"고 충고했다.

특히 그는 "우리는 법관이 좁은 시야를 가진 오만한 수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한 권력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자신의 판단에 끊임없이 회의하는 겸손한 사람이기를 원한다"고 조언했다.

이 변호사는 "이 겸손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니라, 법정을 뛰어나와 넓은 세상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끝으로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전설적인 대법관 올리버 웬델 홈즈의 '법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요, 천재의 영역이 아니라 어른의 영역이다'라는 주장은 화강암에 정(釘)으로 새기듯이 또렷이 머리에 담아둘 만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이재동 #법관 #대한변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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