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그 이름을 지키기 위한 투쟁

비웃음 속에 살아남기보다 탄압에 쓰러질 것

등록 2009.06.14 11:16수정 2009.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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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독재자를 독재자라 하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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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11 화물연대 총파업 돌입 ⓒ 화물연대

6월 11일 화물연대는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업을 철회'하라며 연일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실리라는 것은 유가보조금 따위의 '돈이 되는' 제도개선도 아니고 운송료를 올려달라는 것도 아닌, 따라서 비조합원은 물론이고 화물연대 조합원에게도 명분이 달린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2009년 화물연대 파업은 오직 화물연대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한 투쟁입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화물연대의 역사를 살펴보고 박종태 지회장이 자결을 통해 호소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화물연대는 김대중 국민의정부였던 2002년 10월에 창립되었고 2003년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며 첫 파업을 했고 '이명박정부'인 2008년 '국민지지 1호 파업'을 벌였습니다.

화물연대 이전에도 수많은 '차주단체'들이 있었고, 크고 작은 집단행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노동자단체로 규정하고 조직된 것은 화물연대가 처음이었고 정권이 3번 바뀌는 동안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화물연대는 물류제도의 문제점과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를 강렬하게 제기했고 부분적으로 개선되어 왔습니다.


화물연대는 창립선언문에서 '우리는 예전에는 김기사 이기사였고, 지금은 박사장 최사장이지만 지금부터는 오직 하나의 이름 화물노동자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7년, 실로 화물연대 투쟁의 역사는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 화물연대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정권을 독재자로 지칭했다가 졸지에 '아프리카 소국의 반군지도자'로 매도되었습니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독재자를 독재자라 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야만적 폭력 앞에 무릎 꿇는다면 국민도 나라도 불행해 질 것입니다.

촛불의 시대정신, 열사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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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9 대전 고 박종태 지회장 부인 하수진씨 ⓒ 운수노조


2008년 5월 촛불소녀들이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쳤을 때, 운수노조가 '미친소 운송거부'를 선언했을 때 그것은 감동의 상호작용으로 서로에게 뜨거운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2009년 용산철거민 참사에서부터 다시 타오른 촛불은 작년의 그 촛불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박종태가 죽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강희남 목사가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던졌을 때, 추모와 애도는 옹졸하고 야비한 정권의 탄압에 맞서 분노와 저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외람되지만 강희남 목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열사로 지칭할 수 있다면 촛불의 시대정신은 이제 열사들의 외침을 산자들이 실현하려는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직을 믿고 동지를 끝까지 싸워 반드시 승리하라'는 박종태의 호소에 수천의 화물노동자들이 서슴없이 투쟁에 나서고,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담담한 한마디는 그를 지켜주지 못한 온 국민을 통곡하게 했으며,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강희남 선생의 절규는 독재정권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촛불의 시대정신은 이제 열사들의 외침에 답해야 합니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 화물연대 그 이름을 지키고자

생업을 포기하고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승리한다고 한들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합니다. 오히려 경제적 손실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고 간부들은 민형사처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회사와 정부가 '돈은 줄 수 있다. 그러나 화물연대는 인정못한다'고 했을 때 화물연대 지도부는 마지막까지 고심했을 것입니다. 화물연대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 화물노동자라는 자기 정체성, 박종태 지회장이 목숨을 던져 호소한 그 영혼의 울림을 함께하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단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6월 11일 화물연대 조합원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힌 어떤 분은 다음 아고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화물연대는 아니지마는....[인생역전]
 저는 충북 청주에서 개별화물을 하는 차주입니다. 지난주는 괜찮았는데, 이번주는 정말 일이 없더라구요. 월요일, 화요일 꽁치고 어제 부산을 다녀왔는데, 현재는 청주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침에 터미널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부산신항에 내일 하차하는 거 있다고, 화물연대 파업하는 바람에 운반비 잘 뽑았다고... 오늘 오후 5시까지 상차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뜸 "알았다"고 한 후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듭디다.

그 분들이 화물노동자 위해 큰소리를 내주는 바람에 그래도 유가보조금도 받고, 심야에 고속도로 통행료도 50% 감면받고, 이것저것 도움만 받고 살았지 지금까지 도움 준 건 없는데, 그분들도 목구멍이 포도청일텐데 그걸 틈타서 제차에 화물을 싣고 돈을 벌러 갈 생각을 하니 솔직히 용기도 안 나고, 죄짓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전화해서 "집에 사정이 있어 이번주에 일 못하겠다"라고 말하고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이번달과 다음달은 비도 많이 오고 휴가도 있고 그래서 화물업계는 비수기죠. 그래도 조금 덜 벌고 떳떳한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사는것 좋지만, 개같이 벌어 개같이 살면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운 날씨에 파업하시느라 고생하시는 그분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한사람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수고하십시오.


 
미안하다 촛불이여, 화물연대가 싸울 곳은 서울광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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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13 부산항 . ⓒ 운수노조


화물연대의 투쟁력과 파급력이 워낙 크다보니 이 정권에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이 13일 화물연대 상경투쟁이 무산되자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동력이 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부터 결국 촛불과 노동운동은 함께 하지 못하는것 아닌가 하는 실망까지 다양한 견해가 있을 것입니다.

화물연대는 파업에 돌입하기 전부터 고강도 투쟁을 예고했습니다. 수천이 아니라 수만명이 모여 요구를 주장하고 세를 과시한들 귀막고 눈을 가린 이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일 화물연대의 상경투쟁 역시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들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이렇다할 조직이나 동력을 가지지 못한 촛불시민들로서는 화물연대가 촛불을 들고 함께하면 너무나 든든하겠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서울광장에서 물류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화물연대의 투쟁현장은 고속도로이고 항만입니다. 촛불시민은 광장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화물노동자는 물류를 멈추는 투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웃음속에 살아남기 보다는 탄압 속에 쓰러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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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열하는 노동자 . ⓒ 운수노조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쩌면 화물연대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지도부도 조합원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작년과 같은 열광적인 지지도 없고, 민주노총의 지원세력도 더디게 움직입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자존심이 상처받을 때, 모멸감과 자책감을 견디지 못할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화물연대는 그 자랑스러운 이름을 돈과 바꾸자는 이 정권에 자존심을 상처받았고 그 모멸감을 감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동료를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광폭하고 집요한 탄압은 화물연대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비웃음 속에 살아남기보다는 탄압속에 쓰러지더라도 투쟁하겠다는 것이 2009년 6월 민주노총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의 선택입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갑오년 농민군들이 왜군의 기관포 앞에 죽창 하나를 들고 나가던 심정이 지금 화물노동자들의 마음입니다.

지금 이 시간 전국 200여 개 농성장에서 수천명의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찬밥 한그릇을 라면 국물에 말아먹고 박종태 지회장의 영전에 고개 숙이며 다짐하고 있을 것입니다. 잊지 않는다면, 우리를 기억해 주기만 한다면, 이기지 못하더라도 이 미친 세상을 잠깐이라도 세워보고 사라지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 정호희 기자는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호희 기자는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입니다.
#화물연대 #파업투쟁 #박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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