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찾은 외국 바이어, "총알 날아다닐 줄 알았어요"

냉전의 산물에서 평화.안보.환경 교육의 場으로 변신

등록 2009.06.16 10:48수정 2009.06.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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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영상관 DMZ 도보관람로를 거쳐 제3땅굴들을 둘러보고 나오면, 맞은 편에는 DMZ 영상관이 자리잡고 있다. ⓒ 임호형


낡은 흑백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끊어진 철길, 무명용사의 무덤, 녹슨 철모. 시간이 멈춘 그곳에는 겹겹의 철조망 너머 철새가 날아다니고, 잡초 수풀 깊숙이 지뢰를 품은 평원 위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DMZ가 준 첫 인상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란 특수한 상황 탓일까. 하루 평균 500여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DMZ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특히 외국인 VIP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외국인 바이어, VIP 의전관광 전문 코스모진 여행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한 방한 외국인 30%(1440명)가 이 DMZ를 우리나라 최고 관광지로 꼽았다). 


외국인들은 자동차로 1시간, 서울에서 고작 4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북 군인들이 대치한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란다. 철저한 안보 상황이나 잘 보전된 주변 생태 환경 등을 둘러보며 또 한번 놀란다고 한다. 자칫 냉전 아이콘으로 곡해될 수 있는 이곳 DMZ를 유럽에서 온 우리회사 외국인 바이어들에게 소개시켜 주기로 결심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외신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분단상황은 방한 외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에 투자를 결심하는 외국기업들에게까지 분명 위협 요소다. 하지만 위협 요소라고 해서 숨기기보다는 관광명소로써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보안상황을 확인시키면 오히려 이 특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도라산 역으로 가는 길

DMZ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바로 도라산 역을 오가는 전용버스로 갈아타는 일이다. 버스를 타고 통일대교 앞 검문소를 지날 쯤, 무장한 군인들로부터 주민등록증(외국인은 여권)을 제시하고 한 사람씩 대조 검문을 받으며 새삼 이곳이 아주 독특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깨닫게 된다. 길게 뻗은 경계선과 정치적 상황에 대해 어떤 개인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세계 유일의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사실만으로도 외국인들은 마치 미지의 나라에 온 것마냥 들떠 있다.

바로 그 때였다. 보초를 서던 군인 중 한 명이 뒷자석에 앉은 우리 일행 중 한 명을 지목한다. 검문검색 광경이 꽤나 신기했던 이 외국인 바이어는 당초 민간인통제소인 이곳에서 사진촬영 금지 경고를 무시한 채, 몰래 촬영을 한 모양이다. 버스 안에서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대조 검문하던 헌병은 이내 그 외국인 바이어의 디지털 카메라를 압수해 관련 사진을 삭제한 후, 버스에서 내렸다.


디지털 카메라를 압수당한 외국인 바이어는 "DMZ가 그래도 엄연히 관광지인데, 사진 촬영조차 이토록 엄격히 제한하는 곳인지 몰랐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일행을 가이드 해주신 외국인 VIP 의전관광 전문여행사 코스모진의 윤종혁씨(우리 회사 바이어 의전관광을 많이 해주신 베테랑이다)에 따르면 "DMZ 투어의 경우 관광지 이전에 남과 북, 두 나라의 군사대치 현장이므로, 사진 촬영 등 제약이 많은 곳"이라며 "사전 예약 시스템은 물론 현장에서 가이드의 인솔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멈춰버린 철마는 달리고 싶다

마주보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남북이 갈라진 철책선을 둘러보다 건너편 동네로 시선을 돌릴 쯤, 어느새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자유관람 시간은 15분. 도라산역. 이름도 아름다운 이곳은 남쪽의 마지막, 북쪽으로 향하는 첫 번째 역으로, 여느 기차역 못지않은 세련된 자태를 갖추고 있지만 기차역으로서 제 구실을 못하는 유명무실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지난 2002년 2월,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 방한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해 연설 및 철도침목 서명행사를 가져 한반도 통일 염원의 상징이 된 도라산역. 내부엔 굳게 닫힌 '평양' 게이트와 그 앞을 지키는 헌병들, 그리고 창 밖 우두커니 멈춰선 철마의 모습만 애처롭다. 이제 더 이상 북으로 달리지 못하는, 끊어진 철도를 바라보는 외국인 바이어들의 표정은 여느 한국인 못지않게 사뭇 진지하다.

DMZ, 뜨거운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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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땅굴 도보관람로 입구 제3땅굴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짐을 보관소에 맡기고, 이 곳 도보 관람로의 터널을 거쳐야한다. ⓒ 임호형


다시 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 최북단 도라 전망대로 향했다. 올라가는 길목 곳곳 지뢰가 묻어있음을 뜻하는 노란 표식이 보는 이로 하여금 이곳이 DMZ(비무장지대)임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차에서 내려 도라전망대 한 편에 늘어선 망원경으로 저 멀리 북한 경계선을 살핀다. 흐릿한 날씨 탓일까. 길게 이어지는 논·밭과 도로만 즐비할 뿐, 별다른 특이사항은 찾을 수가 없지만 외국인바이어 일행들은 그저 신기한 듯, 망원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날씨가 맑은 날은 저 멀리 개성공단 전경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이어 제3땅굴 견학장소로 이동했다. 지난 1978년에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곳 제3 땅굴을 관람하기 위해 도보관람로인 터널을 거쳐야 한다. 일체의 짐들을 보관소에 맡기고, 안전모를 착용한 채 지하로 향하는데, 갈수록 공간이 좁아지면서 175cm의 내 키로도 제대로 허리를 펼 수 없이 구부정한 자세로 10여분을 걸어 내려갔다.

두 번째 땅굴에 도착했을 쯤 땅굴 벽면에 온통 검은 석탄 칠이 되어있었다. 이유는, 북한 군인들이 남침을 준비하면서 혹여 땅굴 정체가 탄로날 때를 대비 탄광석을 캐는 작업으로 둔갑하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이곳은 처음부터 석탄이 나지 않은 땅굴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어쨌거나 이렇게 좁은 땅굴이 무려 260m 정도 이어진다는 것도 놀랍지만, 북한 군사들이 남한에 이런 식으로 파 놓은 땅굴만 4개란 사실에 그간 북한 정권이 얼마나 치밀하게 남침을 준비했었는지 여실히 보여줘,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픔의 역사, 감동의 명소로

"한국은 휴전국가라고 해서, 언제라도 총알이 날아다니는 위기 상황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분단 현장에 와보니 그 동안의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번에 함께 DMZ를 둘러본 프랑스 출신 외국인 바이어 로저 허프스(43)씨의 소감이다. 그간 한국을 위기촉발의 전시국가로 알고 있었던 허프스씨는 DMZ의 철저한 안보상황과 안정적인 국내 정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외국인들이 접하는 남북 분단 소식은 대게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단적인 면이 전부이기에, 허프스씨 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오해하는 부분일 것이다.

실제로 비즈니스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많은 외국인 바이어들이 계약 체결에 앞서 제일 걱정하는 문제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막상 바이어들을 모시고 이곳을 방문하면, 그간의 우려대신 (분단 국가만이 가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이날 우리 바이어들의 DMZ투어를 맡았던 윤종혁씨는 "DMZ의 경우 서울에서 자동차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군사경계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외국인들은 꼭 한 번 현장을 찾고 싶어한다"며 "자칫 냉전의 상징으로 오해될 수 있는 DMZ 방문 외국인 관광객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현 남북 상황과 관련 정보들을 줄 관광 자원 전문가의 가이드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슴 아픈 분단의 과거와 감동의 현재가 공존하는 이 생생한 역사의 현장, DMZ. 정부에서도 DMZ를 비소한 접경지역을 평화와 생명이 숨쉬는 관광벨트로 만들기 위한 '평화.생명 지대(PLZ) 광역 관광개발계획'을 수립하고, PLZ 전체관광의 활성화를 위한 'DMZ 평화.생명지대 횡단코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분단의 슬픔을 품은 DMZ가 단순한 아픔의 역사로만 머물지 않고 분단국가인 한국만의 특수한 정치상황과 문화로 이해될 수 있는 감동의 명소가 될 수 있길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시 빌어본다.
#DMZ 투어 #외국인 바이어 관광 #외국인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명소 #안보관광 #제3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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