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쟁이가 바라본 '청소년 문화' 이야기

[일민시각총서 4집] 한국에서 '푸른삶'은 어디에 있을까

등록 2009.06.18 16:36수정 2009.06.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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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총서 결과물(오른쪽)과 안내종이(왼쪽). ⓒ 최종규


 ㄱ. '청소년 문화'를 헤아리는 사진이야기

'일민미술관'에서는 2009년 '일민시각문화 4집'으로 "靑ㆍ小ㆍ年"을 기획해서 사진작가 아홉 사람한테 저마다 느끼고 보고 마주하는 청소년 삶을 사진으로 담는 일을 했습니다. 사진작가 아홉 사람 눈으로 바라본 이 나라 청소년 삶은 모두 566장에 이르는 사진에 담겼고, 이 가운데 아흔 장 남짓을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자리한 일민미술관2층에서 사진잔치를 열며 선보입니다.


"靑ㆍ小ㆍ年" 이야기를 이룬 사진작가는, 강재구ㆍ권우열ㆍ고정남ㆍ박진영ㆍ양재광ㆍ오석근ㆍ이지연ㆍ최은식ㆍ최종규, 이렇게 아홉 사람입니다. 전시는 6월 19일부터 열며, 8월 23일까지 펼칩니다. 월요일은 미술관이 쉬는 날이며, 여는 때는 아침 열한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입니다.

<일민시각문화 4집 : 靑ㆍ小ㆍ年>은 어떤 사진책인지 궁금한 분들은 일민미술관으로 전화로 여쭈면 됩니다(02-2020-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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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 친구들은 원더걸스 사진이 담긴 필통을 쓴다. 나는 중학생 때에 최진실 사진을 오려붙여서 필통과 지갑을 손수 만들어 썼다. ⓒ 최종규


 ㄴ. 아홉 사람 눈 가운데 한 사람 눈으로

(저는 이번에 '청소년 문화'를 생각하자는 '시각총서' 기획에 다른 여덟 사진작가하고 함께 일을 했습니다. '청소년 문화'를 어떻게 사진으로 찍어야 할는지, 사진으로 담는 '청소년 문화'란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일은 어떻게 꾸리면 좋을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한 장 두 장 담았습니다. 이번 사진잔치를 함께 열면서 제 깜냥껏 느끼고 생각하고 겪었던 '청소년 문화'란 무엇인지를 몇 마디 풀어내어 봅니다.)

아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서 이루어진 목숨이 어머니 배속에서 영글어 고이 자라면서 세상에 나옵니다. 아기는 배속에서 영글기 앞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기도 하지만, 배속에 있을 때에나 세상으로 나온 뒤에나 사랑 한 번 못 받기도 합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될 무렵 비로소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랑이 아닌 학습만 받으면서 머리통만 굵어지도록 짜맞추어져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기보다는, 몸뚱이를 움직여서 땀흘려 일하는 한 사람으로 키우는 분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나마 사내아이는 학문을 닦을 수 있었으나 계집아이는 학문하고는 담을 쌓아야 했습니다. 학문을 닦을 수 있는 사내아이는 높은자리에 앉아 몸에 땀을 흘리지 않고도 떵떵거리며 사람을 부리며 살았는데, 학문을 닦을 수 없던 계집아이는 사내아이 뒤치닥거리로 온삶을 바쳐야 했습니다. 참으로 고르지 못한 사회 대접이며 사람 따돌림입니다. 그런데 이런 푸대접과 따돌림은 여자한테만 모진 노릇이 아닙니다. 남자한테도 모진 노릇입니다. 여자들이 뜻과 꿈을 펴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아픔이 틀림없이 있는 한편, 남자들이 집안살림과 아이 키우기는 하나도 모르는 채 반편이로 크고 마는 아픔이 함께 있습니다.

실잣기와 옷깁기를 할 줄도 모르면서 옷을 입는 남자들은 옷 한 벌이 얼마나 고마운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농사짓기와 밥하기와 설거지하기를 모르면서 밥상을 받는 남자들은 밥 한 그릇이 얼마나 고마운 줄 어찌 알겠습니까. 집짓기와 집살림 추스르기를 할 줄도 모르면서 따순 방에서 느긋하게 잠들고 책읽고 손님 맞이하는 남자들은 우리 삶터가 얼마나 고마운 줄 어느 만큼 알겠습니까. 사람 사는 아름다움 가운데 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옷과 밥과 집을 잃거나 잊은 남자들은 '세상 다스리기'를 한다면서도 자꾸자꾸 샛길로 빠지고 뒷길로 새어나갑니다.

옛 한문을 빌지 않더라도 '집안살림을 다스릴 줄 모르면서 나라살림을 어찌 다스리는가' 하고 따질 수 있습니다.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라일을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성룡이나 홍금보 같은 홍콩 배우들이 나오는 무술영화에서 '철없는 풋내기'가 스승한테 무술을 배우기까지 '물긷기 몇 해 빨래하기 몇 해 밥하기 몇 해 청소하기 몇 해 밭갈기 몇 해 ……' 하면서 '무술은 구경도 못하고 집안일 하느라 손마디 굵어지고 온몸에 꾸덕살이 박히는' 모습을 곧잘 보곤 했습니다. 우리들이 제대로 못 느껴서 그렇지, 무술이나 학문이나 정치나 문화나 다를 바 없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구실을 먼저 한 다음에 무술이나 학문이나 정치나 문화가 있습니다. 사람 사는 구실을 못하면서 무술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사람 사는 구실을 못하는 채로 무술이나 학문이나 정치나 문화를 하니, 엇나가거나 비틀리거나 더러움에 마음이 물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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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환경 위생 정화구역이 무슨 소리이고, 무얼 하겠다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이런저런 온갖 알림판을 해바라기 넓은 잎과 꽃망울이 가려 주니 보기에 좋다. ⓒ 최종규


오늘날 이 나라 푸름이 삶을 돌아보면서, 새삼 '이 아이들이 처음 태어날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어떤 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부대끼도록 되어 있는가'를 곱씹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푸름이 삶(청소년 문화)'이라 할 수 있는가 자꾸자꾸 궁금해집니다. 청소년연극제가 푸름이 삶이라 할 수 있는지, 대학교만 바라보는 입시교육이 푸름이 삶이라 할 수 있는지, 교복 차림으로 길거리에서 담배 피고 아무 데나 버리는 모습이 푸름이 삶이라 할 수 있는지, 치마를 접어 짧게 하고 다니는 매무새가 푸름이 삶이라 할 수 있는지 …….

지난 8월, 딸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아버지가 되면서, 저 또한 걸어왔고 거쳐 온 '푸름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한 번 지나왔으니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뿐더러 돌아가지도 않을 테지만, 우리 딸아이가 걸어갈 '푸름이 삶'이란 무엇이 될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 흐름과 똑같이 가면서, 그저 큰도시에서 일류 대학교를 마친 다음 돈 많이 버는 회사원이 되도록 하는 '푸름이 삶'으로 가도록 내버려 둘는지, 딸아이 스스로 자기가 좋아할 뿐더러 이웃사람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헤아리게 되는 '푸름이 삶'으로 가도록 길동무로 함께 살아갈는지 곱씹습니다.

아이 어버이가 살아간 대로 아이는 '집을 나와서 혼자 살게 될 때까지' 따르곤 합니다. 아이 어버이가 사는 모습대로 아이는 '지금 자기 나이를 즐기게' 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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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고 오토바이 타지 말라는 선생들은 많더라. 그렇지만, 우리보고 헬멧 쓰고 다니라 말하던 선생들은 못 만났다. 오토바이 타고 오다 걸리면 나무방망이 부러지도록 두들겨 팰 줄 아는 선생들은 많았고, 오토바이를 올바르게 타도록 가르쳐 준 선생들은 없었다. ⓒ 최종규


푸름이 삶이란 다름아닌 어른 삶이며, 어른 삶이란 바로 푸름이 삶입니다. 청소년 범죄가 따로 있지 않고, 어른 범죄를 '청소년 나이에 할 뿐'입니다. 청소년 문화가 따로 있지 않고, 어른 문화를 '청소년 나이에 누릴 뿐'입니다. 청소년 정책이 따로 있지 않고, 어른 사회 정책이 '청소년 나이에 맞게 고쳐질 뿐'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졸업장을 받기 앞서, 학교옷을 안 입고 다니니 '학생(청소년)이 아닌 일반 버스삯'을 내야 한다는 버스기사 말을 듣고 '왜 버스삯을 청소년이 아닌 학생으로 나누어서 받는가' 하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닥치기 앞서까지는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만다고 새삼 느꼈습니다. 이제는 '청소년 증명서'라고 나와서, 초중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학생표대로 에누리'를 받습니다. 그러나, 버스삯이건 전철삯이건 놀이공원삯이건, '학생 틀거리'에 맞추어 값을 매긴 모습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느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여느 날 낮에 버스를 타면 '저 녀석은 학교도 안 가고 뭐 하는 짓이야?'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눈길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들한테 무엇을 가르쳐 주든, 어쨌든 학교에는 가고 보아야 한다고 여기고, 학교에 말썽이 많아서 그만두거나 처음부터 안 다닌다고 하는 아이들을 뱀눈으로 바라보는 사회 흐름이요,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 아이도 틀림없이 머잖아 '청소년 길'을 걸어갈 텐데, 아이한테는 '어린이-푸름이-젊은이'라는 이름보다도 '한 사람'으로 보여지고 느껴지고 부대끼게 되면서, 첫마음을 끝마음으로 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 삶이고 사람 삶터이고 사람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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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골목길 어여쁜 꽃이 좋아 골목마실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골목길에는 으슥한 데가 있으니 좋다며 후미진 자리에서 담배를 태운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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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청소년 최저음김은 4000원입니다. 그런데 청소년한테는 '최저임금 = 최고임금'이라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을 먹여살리는 어버이들은 일터에서 얼마나 받을가요. 청소년들 어머니 아버지는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비정규직일까요, 정규직일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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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동무는 학교에 있을 시간이고, 친구한테는 부산 보수동 산등성이에 자리한 골목집 문간에 앉아서 보수동 둘레를 훤히 내려다보면서 한참 생각에 잠기는 시간. 열네 살 친구는 학교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해바라기를 하면서 동네를 굽어살필 수 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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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는 “청소년이 피난할 수 있는 집”이 있다. 청소년은 ‘피난’해야 한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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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청소년 문화 #사진전시 #사진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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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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