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소주 1심 재판 이림 판사 "내가 압력 받았다고?"

법원내부전산망에 심경 토로... "재판 배당·진행 문제 없었다" 항변

등록 2009.06.19 10:45수정 2009.06.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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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조중동 광고중단' 운동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장, 수석부장, 기타 어느 누구로부터 어떤 지침도 받은 일이 없습니다."

"판결에 대한 비판이 아닌 비난, 그리고 저에 대한 인신공격은 저로 하여금 대한민국에서 법관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연 판결문 전문을 읽어보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인터넷 카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의 '조중동 광고 중단운동' 사건(이하 '언소주' 사건)의 1심 재판(이하 '언소주' 재판)을 맡았던 이림 부장판사(현 서울중앙지법 민사부)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의견과 심경을 밝혔다.

이 판사는 18일 밤 법원 내부통신망에 '판사도 때론 말하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려 '언소주' 재판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A4 8장 분량의 긴 글에서 이 판사는 "일부 언론이나 인터넷에서는 1심 재판의 배당이나 진행, 그리고 판결에 마치 무슨 흑막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일부 학자들까지 가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이는 20년간 판사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지켜온 제 긍지, 명예와 직결되는 문제이면서 사법부 및 법원가족 여러분의 명예도 걸린 문제"라고 해명의 글을 올리게 된 계기를 밝혔다.

"언소주 재판 배당·진행 문제 없었다"


이 판사는 우선, 언소주 사건이 임의배당(사건을 무작위로 컴퓨터 배정하는 방식이 아닌 특정 재판부를 지정하여 배당하는 방식)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에 대해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오해"라고 잘라 말했다.

이 판사는 "작년 8월 29일 소위 중요사건(촛불집회 관련 사건... 기자 주)이 몇 건 접수될 때 그중의 하나로 이 사건이 접수되었다"면서 "이를 배당하면서 우선 그 전에 다른 사건의 진행과 관련하여 조선일보 등으로부터 비난성 지적을 받았던 2명의 단독판사와 조중동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몇몇 판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판사들 중에서 저를 포함한 4명의 판사들로 범위가 정해졌고, 그중에서 컴퓨터에 의한 무작위추첨으로 제게 배당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판사는 "저는 부장판사이기도 하였지만, 그때까지 촛불시위사건 등 소위 시국사건을 한 건도 배당받지 않았기 때문에 4명의 판사에 포함되었다"며 사건 배당에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원장에게 사건 관련 전화·이메일 받은 적 없다"

이 판사는 언소주 재판 관련 '압력설', '청탁설'을 전면 부인했다.

이 판사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원장님(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었던 신영철 대법관을 지칭... 기자 주)이나 수석부장님(당시 형사수석부장이었던 허만 서울고등부장판사를 지칭... 기자 주), 기타 어느 누구로부터 어떤 지침도 받은 일이 없다"고 했다. 특히 법원장이나 수석부장에겐 "전화나 이메일을 받은 일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청탁은커녕 전화연락조차 받은 것이 없었다"고 재차 결백을 주장했다. 또한 재판진행에서도 검찰과 피고인 중에서 특별히 어느 편이 유리하도록 진행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판결선고일인 지난 2월 19일 선고가 지연된 것에 대해 이 판사는 "판결문은 120여 쪽이나 되었고 오타 수정 후 최종 판결문 원본을 프린트하다가 프린트기 작동 이상으로 10여 분 늦게 법정에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언론은 왜 무죄부분 언급 없이' 24명 유죄'만 보도하나"

이 판사는 "제가 선고법정에 늦게 들어온 이유가 모처에 가서 상의를 하고 오느라고 그랬다든지, 선고를 하면서는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지 못하였다는 등의 이야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 판사는 판결 중에서 ▲판례에 따라 공모공동정범 이론을 적용하되 그 범위를 최소화하여 피고인들의 행위 중 상당부분 무죄 ▲조중동이 광고중단으로 업무방해를 받았다는 180개 업체 중 13개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무죄  ▲업무방해로 인한 피해액이 판결에서 제외된 사실 등을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채 "24명 모두 유죄라고만 보도되었다"며 언론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판사는 "제 판결에 대해 비난하는 분들이 과연 판결문 전문을 읽어보셨는지 묻고 싶다"면서 "판결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당한 소비자운동이 왜 위법이냐'라고 하는 주장은 동어반복의 비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피고인들의 행위가 과연 정당한 소비자운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즉 수단방법의 상당성을 판가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언소주가 전개했던 광고중단운동 방식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으로 볼 수 있다.   

이 판사는 언소주 카페 회원들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선고 직전까지 절차 진행이 공정했다면서 양심법관 지켜내자고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선고 직후 표변해서 자신들의 카페에 '조중동의 앵무새 이림 판사에게 한마디'라는 코너까지 개설하여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저주를 퍼부어댔는데 그런 행동이 과연 옳은지, 또 그렇게 해야만 시민운동이 제대로 된다고 믿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 판사는 "저는 나름대로 제 판결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였고 책임을 지지만, 결코 제 판단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제 판결문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상급심에서는 더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선 다했지만 내 판결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 않는다"

언소주 판결 직후 기자들이 자신을 "보수 판사로 바라볼 듯이 이야기했다"는 이 판사는 보수성향으로 인식되던 미국 연방대법원 블랙먼 판사가 진보진영에 가담하게 되는 변천사를 소개했다.

이어 이 판사는 "나이 60세가 넘어서 연방대법원 판사가 되고서도 그의 판사로서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며 "(우리 사회도) 판사들 개개인에 대하여 보수, 진보 양극단적인 잣대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는 없는지, 그 정도의 여유도 우리 사회에 없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끝으로 "판사가 스스로 자신의 판결에 대하여 부끄러운 일은 없었다고 이렇게 외쳐야만 하는 시대에 내가 살고 있구나 하는 깊은 회의를 느낀다"며 글을 맺었다.

한편, 언소주 사건은 지난 2월 19일 1심 판결을 마쳤다. 1심 재판부는 언소주의 업무방해를 일부 인정, 카페개설자와 운영자 등 5명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형을, 나머지 19명에겐 벌금형(일부 선고유예)을 선고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첫 공판은 오는 26일 열린다.
#언소주 #촛불재판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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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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