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룡에 도전하다

등록 2009.06.29 10:18수정 2009.06.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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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악과 내설악 구분의 기준이며 설악산의 등줄기라고 표현되는 공룡능선을 작년 10월에 이어 다시 도전해 본다. 아니 정확히는 두번째의, 도전에 실패했던 작년 연말산행까지 합하면 세번째 도전이다.

 

작년 12월 26일 일행들과 함께 오색에서 시작해서 대청봉으로 치고 올라가는 새벽 산행 중 넘어지면서 공교롭게도 이마를 바닥 바위에 심하게 부딪쳐 애초 맘 먹었던 공룡능선 산행을 포기하고 새벽길을 더듬으며 다시 하산해서 심하게 부은 이마 부위가 걱정되서 병원 들러서 CT촬영을 하고 이상없다는 응급실 의사의 답을 듣고서야 안심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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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서북능선 ⓒ 조명현

▲ 설악산 서북능선 ⓒ 조명현

 

이번 공룡능선 도전코스는 들머리를 한계령 고개로 잡고 설악산 서북능선의 일부구간을 주행해서 대청봉을 가지 않고 중청산장에서 희운각대피소를 거쳐 마등령 방향으로 공룡능선을 주행하는 것으로 잡혔다. 공룡능선은 구간거리 5킬로미터이나 대부분 안내판에는 주행시간도 5시간으로 표기되어 있다.

 

통상 산길이라 하더라도 보통 한시간에 2킬로미터 가량이면 충분한데 공룡능선은 말 그대로 공룡등짝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최소 대여섯개의 봉우리를 넘나들어야 하는데 그 경사도와 더불어 산꾼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주변의 수려하고 빼어난 풍광은 중간에 일반탈출로가 없다는 코스의 특성이 주는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지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새벽 3시 20분 한계령을 출발해 서북주능선길을 만나기 전 등산길에서, 뿌옇게 조금씩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흘리는 땀방울이 채 맺히기도 전에 계곡쪽에서 불어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그러나 이내 해가 뜨고 땀을 식혀주던 시원한 바람도 잦아들면서 13시간~14시간의 산행이 가져다 줄 더위와 갈증과의 싸움, 체력이 얼마나 버텨줄 것인가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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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서북능선 사진 ⓒ 조명현

▲ 설악산 서북능선 사진 ⓒ 조명현

 

지난 번 두번째 공룡능선 산행이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실패했던 기억 속에는 남다른 일도 결부되기는 했었다. 통상 무박 원정 산행은 금요일 늦은 저녁시간에 교통편을 잡아 서울을 출발해서 새벽 산행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 산행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온 직후에 시골의 외숙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집으로 왔었다는 것을 서울을 출발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 불과 일주일 전 모친을 모시고 충주에 있는 대학병원에 암으로 입원해계시는 숙모님을 뵙고 무엇을 드시고 싶으시냐고 여쭸더니 딸기가 먹고 싶다 하셔서 제철도 아닌 딸기를 근처 가게에서 사다 드리니 "조카가 사다 준 딸기라 더 맛있겠다"고 희미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내가 본 숙모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이다.

 

평생를 땅과 농사만 아셨던 분이다. 유난히 부지런하셨던 '농사꾼 남편'을 만나 평생을 운명처럼 부지런하게 땅을 일구어 삼남매 공부시키셨고 시골에서는 보기 드믈게 남편을 제쳐두고 운전면허를 따고 화물차를 사서 농사일에 사용하셨다고 한다. 어릴 적 방학때마다 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외갓집에 내려가서 놀다오곤 했는데 말수가 적으셨던 숙모님이 내게 남겨주셨던 그 엷은 미소와 따뜻한 말씀 몇 마디가 고작 내가 가지고 있는 숙모님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그 몇 년 전 먼저 돌아가셨던 외삼촌의 발인이 있던 날, 나는 가까운 집안어른이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그 서운함 때문 뿐만 아니고 평생을 천직처럼, 혹은 천형(天刑)처럼 땅을 일구고 땀을 흘리신 이 나라의 수많은 "진정한 농부" 중 한 분이 저 세상으로 가셨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나는 농사일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지만, 최소한 땀흘려 일하는 노동의 신성함이 부정되어 가는 사회, 일하지 않고 불로소득을 얻거나 합법이나 '절세'를 빙자하여 공공연한 탈세가 우상시 되어 가는 우리 사회 속에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인간의 노력을 가미하여 땀을 흘리고, 정직한 노동을 투여하여 일한 만큼 소출을 얻을 수 있는 농사라는 직업이 차츰 천대받고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이 참 슬펐고 또 한 분의 근면한 농사꾼이 저 세상으로 가셨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그래서 결국 두번째 공룡산행 도전은 초입에서의 예기치 못한 부상 때문에 실패했지만 그날 저녁 부모님을 모시고 이마에는 반창고를 붙이고 충주에 있는 숙모님의 병원 빈소에 문상을 갈 수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 딸기를 먹고 싶다 하셨던 숙모님의 그 말씀이 귓전을 맴돌면서 상을 당한 사촌 동생들을 끌어안고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영전에 꽃을 바치고 마지막 가시는 숙모님께 인사를 드린 후 나와서 오랜만에 뵐 수 있었던 친지들께서 이구동성으로 이마에 왠 상처냐고 물어보시기에 간단히 상황을 설명드리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혀를 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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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전경 희운각 방향 첫 고개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 조명현

▲ 공룡능선전경 희운각 방향 첫 고개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 조명현

 

공룡능선 구간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1275봉이다. 능선길 초입에서 바라보는 그 봉우리는 경사도가 하도 심해서 얼핏 보면 사람의 접근을 불허하는 듯 보이나 자연이 빚은 험한 곳에도 길을 내고 통로를 만드는 것 또한 인간의 지혜인지라 마치 직벽과도 같은 그곳에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공룡구간 중 가장 힘든 구간이기도 하다.

 

햇볕이 좋은 날 공룡능선을 타는 것은 주변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운수 좋은 날'이기도 하지만 쏟아지는 햇빛을 고스란히 감당하면서 자신의 체력과 싸우고 수시로 목을 축여줘야 하는 갈증과의 싸움이라는 의미에서는 양날의 칼과 같다. 힘들게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땀을 훔치고 목을 축여가며 주변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기를 몇차례 반복하며 이번 고개가 공룡의 끝이기를 바라지만 공룡능선은 선선히 그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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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 지나온 1275봉 ⓒ 조명현

▲ 공룡능선 지나온 1275봉 ⓒ 조명현

 

처음 공룡능선을 다녀온 것이 작년 10월말경인지라 이제는 풍경의 일부와 길들은 제법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 때는 10월말 경이어서 단풍의 끝자락에 남아있는 바윗길과 능선의 풍광과 함께 그늘진 곳에서 느꼈던 찬바람과 한기가 부담이었다면 이번 초여름 산행은 바위와 어우러진 초록이 가져다는 주는 선명함에 더해서 한여름 폭염에 버금가는 더위가 부담스러웠던 산행이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의연하게 존재하되 시간이 빚어주는 계절에 따른 다른 느낌과 기후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모든 것이 참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다.

 

또 한번 공룡능선을 도전할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그 때는 운무에 반쯤은 그 몸통이 가려진 범봉과 1275봉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심에 불과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느덧 2009년도 공룡능선을 다녀왔다는 것을 계기로 반환점을 돌고 있다.그리고 내가 공룡능선을 타고 있던 그 시간에 평소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던 쌍용자동차의 '노사분규'가 무능한 '사측'의 압박과 내용상으로는 연출된 '노노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아 그 갈등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는 기사를 사진 몇장과 함께 보면서 과연 내가 그 분란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자신들은 치열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데 천연덕스럽게 주말의 휴식을 꿈꾸고 산행을 계획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분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참으로 두렵고 미안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왜 정부는 '노노갈등'을 연출하며 책임있는 자리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자꾸 '제 2의 용산사태'와 같은 극단으로만 상황을 몰고가는 것일까? 과연 '노동'을 길들인다고 해서 '자본'이 행복하기만 할까? '착한 자본가'와 '유능하고 행복한 노동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3040사계절산악회'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6.29 10:18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3040사계절산악회'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룡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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