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줄박이가 머물다간 자리, 아름답습니다

[윤희경의 山村日記] 보리수 익어가는 윤오월(閏五月)

등록 2009.07.01 11:32수정 2009.07.0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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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월(閏五月), 따가운 여름햇살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매일처럼 30˚를 넘나드는 무더위로 감자밭이 펄펄 끓어 넘치고 보리수가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보리수가 붉은 숨을 쉬며 그악스레 매달려 있는 모습에서  본격적인 여름세상이 가까이 왔음을 새삼 느껴봅니다. 보리수가 익기 시작하면 장마가 들기 전에 서둘러 보리타작을 하고 감자를 수확하라는 계절의 암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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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붉게 익어가면 서둘러 감자를 캐고 장마에 대비해야한다. ⓒ 윤희경


올해는 윤달이 들었습니다. 윤달은 예부터 '썩은 달'이라 하여 천지신명(天地神明)께서도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하여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윤달을 맞이해 서둘러 어르신들의 수의(壽衣) 준비, 이장(移葬), 이사와 결혼을 해도 신에게 노함을 사지 않기 때문에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조상들에게 음덕을 빌기도 합니다. 윤달은 '날마다 좋은 날', 어느 날이나 집안대소사를 처리해도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전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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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가 그악스레 달려있는 내고장 7월, 윤5월이다. 윤달을 맞이해 새들도 일곱마리나 새끼를 길러낸다. ⓒ 윤희경


산촌마을은 많은 새들이 살지만 곤줄박이처럼 집주변을 빙빙 도는 녀석들은 없습니다. 새들도 윤달에는 많은 알을 낳고 길러냅니다. 사월 초부터 새털 가랑잎 금잔디를 물어다 둥지를 틀고, 일곱 개의 알록달록한 알을 낳아 어린것들을 길러냅니다. 평년보다 한 배를 더 길러내는 셈입니다. 넓은 숲을 마다하고 사람 곁을 서성거리고 있으니 기특하고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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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나왔어, 기특하지요. 어서 밥 수세요.' 제일 먼저 둥지를 나온 곤줄박이 새끼 ⓒ 윤희경


새소리는 저마다 특이한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곤줄박이의 지저귐은  '쓰쓰삥' '삥쓰스쓰' '삐이삐이' 등 약감 허스키로 소리가 신통치 않습니다.

귀농 십오 년, 그동안 문이 열려 있는 헌신발장, 부엌 환풍기 통, 광속 쳇바퀴 안, 화분 속... 등 들쥐와 꽃뱀, 고양이, 너구리, 청설모에게 안전하다 싶으면 어디에나 둥지를 틀어 알을 낳고 새끼들을 길러냅니다. 해마다 4월부터 7월까지 이 녀석들의 사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오금이 저려오곤 합니다.

올해는 김치 광 뚜껑에다다 알록달록한 알을 일곱 개나 낳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알을 구경하는 순간은 '신비'와 '떨림'입니다. 암놈의 알 품기가 시작되면 수놈의 일상은 고단합니다. 알을 품고 있는 약 2주 동안 둥지 곁을 떠나지 않고 곁을 빙빙 돌며 정성을 다합니다. 허기가 들지 않도록 먹이를 물어 나르고 배설물을 내놓으면 냉큼 받아 멀리 버립니다. 행여 똥냄새를 맡고 외부침입자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돌보는 수놈의 애틋한 마음씀씀이를 어디가 또 만나 볼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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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내려앉은 곤줄박이, 숨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 윤희경


새끼를 일곱 마리나 많이도 까놓았습니다. 이제부터 약 2개월 동안 곤줄박이 부부가 합심하여 먹이를 잡아오고 배설물을 내다 버리자면 한참이나 바쁘겠습니다. 벌써 7월입니다. 새끼들도 제법 자라 날개 짓이 제법입니다.

보리수가 새빨갛게 익어가는 윤5월, 좋은 때를 맞아 곤줄박이들도 새끼들 분가를 시키려나봅니다. 아침부터 어미 새들은 먹이를 물고와 줄 듯 말 듯 어린것들의 속을 태우며 둥지 밖으로 유인해 내느라 속을 한참 태우고 있습니다. 약을 올리다 앞으로 나온 새끼에만 먹이를 먹여줍니다.


애기수컷 한 마리가 용기를 내 둥지 밖으로 '포롱롱' 날개 짓을 합니다. '잘 했어 자, 어서 받아먹어,' 널름 먹이를 입 속으로 집어넣어줍니다. 일곱 마리를 다 유인해내자면 시간이 꽤 걸릴 듯싶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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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탈출을 못하고 어미의 속을 태우고 있다 ⓒ 윤희경


그 중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손바닥에 내려앉습니다. 팔딱이는 숨소리가 핏줄을 타고 가슴까지 파고드는 느낌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일곱 마리까지 탈출이 끝났습니다. 어미들은 이제부터 새로운 숲속 생활을 위하여 긴 여행을 떠나갑니다. '삐이삐 삐' '삐삐'... 숲속으로 떠나가는 새로운 신호입니다. 7마리나 되는 대가족이고 보니 우물대다 들쥐나 꽃뱀, 너구리를 만나는 날에는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새들이 머물다간 자리를 돌아보니 적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기고간 산뜻한 뒷마무리에 금세 기분이 맑아옵니다. 김치뚜껑들을 깨끗이 닦아 엎어놓고 곤줄박이들이 내년 봄에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곤줄박이들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는 항상 깨끗합니다. 벌써 내년 봄이 기다려지는 오늘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수필방을 방문하면 고향과 시골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윤희경(011-9158-8658) 기자는 지난 4월에 포토에세이 '그리운 것들은 산 밑에 있다.'를 펴낸바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수필방을 방문하면 고향과 시골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윤희경(011-9158-8658) 기자는 지난 4월에 포토에세이 '그리운 것들은 산 밑에 있다.'를 펴낸바 있습니다.
#보리수 #곤줄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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