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매스컴 먹잇감 돼버린 '한국 국정원'

일 신문들, DDoS 공격 북한 관련설 '국정원 발'로 쏟아내

등록 2009.07.11 12:14수정 2009.07.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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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력일간지들이 한국과 미국의 대형 웹사이트들이 대규모 DDoS(Distribueted denial of service, 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받은 것에 대해 '국정원의 정보'와 '한국언론 보도'를 근거로 한 속칭 '받아쓰기' 기사를 쏟아내고 있어 독자들의 혼란이 예상된다.

 

평소 진보적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 <도쿄 신문>은 10일자 1면 하단에 "북한 사이버전 부대일까?"라는 제목을 뽑아 이번 사이버 공격을 북한 사이버 부대가 조직적으로 행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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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자 아사히 신문 "사건의 배후에는 북한, 혹은 친북세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옆줄친 부분) ⓒ 박철현

7월 10일자 아사히 신문 "사건의 배후에는 북한, 혹은 친북세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옆줄친 부분) ⓒ 박철현

하지만, <도쿄 신문>은 자체 취재라기보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복수의 한국 미디어는 이번 사이버 공격을 조선인민군의 기술정찰조가 행한 것이라고 보도했다"는 식의 인용보도를 선보였다.

 

신문은 한국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이번 동시다발 사이버 공격에 북한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어 배후세력을 찾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진보성향을 보이는 <아사히 신문> 역시 10일자 9면 국제란에 "한국에 3차 피해, 사이버 공격 한국정부 대책회의"라는 제목으로 이번 DDoS 공격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하지만 <아사히> 역시 한국 국가정보원의 발표에 의존하는 보도행태를 보였다.

 

"한국국가정보원은 7일 공격에 사용된 프로그램을 분석해 한미양국 공격용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정원은 사건의 배후에 북한 혹은 친북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 6월 27일 한국이 미국 주도의 사이버 공격대처훈련에 참가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그 어떠한 고도기술전쟁에도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었다"(<아사히> 7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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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자 산케이 신문. 북의 도발행위? 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국의 정보당국은 '북한, 또는 친북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보인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옆줄친 부분) ⓒ 박철현

7월 10일자 산케이 신문. 북의 도발행위? 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국의 정보당국은 '북한, 또는 친북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보인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옆줄친 부분) ⓒ 박철현

우익성향의 <산케이>는 아예 "북 도발행위?"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번 DDoS 공격의 주범이 북한으로 결론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과격한 '물음표' 제목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외신의 인용보도, 그리고 한국정부 당국자의 "(사이버 공격의 배후에) 북한 혹은 친북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조합시켜 만든 기사다.

 

보수성향인 <요미우리 신문> 역시 9일자에 "한미 인터넷이 해킹 피해 - 정보기관 '배후에 북한'"이라는 기사에서 피해상황을 기술한 뒤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발표를 인용해 북한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중도 성향의 <마이니치>는 내용 자체는 단신으로 처리했지만, 그 대신 1면의 인기칼럼 "여록(余錄)"에 이번 사이버 공격을 주제로 칼럼을 풀어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전략) 무엇보다 놀란 것은 한국의 정보기관이 이번 동시공격에 북한이 관계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 진위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공격에는 국가적 규모의 계획성이 엿보인다 (하략)" (<마이니치> 7월 10일자)

 

이들 일본 신문은 공통적으로 국가정보원의 "북한 혹은 친북세력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발표를 근거로 기사를 작성했다.

 

하지만, 10일 오전 국정원은 "해커 공격을 해온 IP 등을 분석한 결과 16개국, 86개소의 인터넷 어드레스를 경유해 공격해 왔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북한은 없었다"면서 "배후에 북한, 혹은 친북세력의 관여가 의심스럽지만 확정적이진 않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발표와는 확연히 다른 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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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자 요미우리 신문. "한국 정보기관 국가정보원은 같은날(8일) 배후에는 북조선이나 북조선과 관계가 있는 세력이 관여하고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라는 보고를..." ⓒ 박철현

7월 9일자 요미우리 신문. "한국 정보기관 국가정보원은 같은날(8일) 배후에는 북조선이나 북조선과 관계가 있는 세력이 관여하고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라는 보고를..." ⓒ 박철현

 

국정원의 '공신력' 팔아먹는 일 매스컴들

 

그런데 이 발언은 <요미우리>와 <니혼게이자이>를 제외한 다른 일간지 석간에는 실리지 않았다. 10일 조간에서 북 관련설을 보도한 <아사히> <마이니치> <도쿄>는 보도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이들 신문을 구독하는 일본독자들은 '북한이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다'는 식으로 믿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북한뉴스라면 일단 싣고 보는 일본 언론의 생리를 생각해 볼 때 한국 국가정보기관의 북한 관련 발표는 짭짤한 뉴스거리가 된다. 또 나중에 잘못된 정보였다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언론사 자체는 오보 논란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6월 한달간 북 후계자 지명을 둘러싸고 과열, 억측보도가 난무했다. <TV아사히>는 한국의 일반남성 사진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운으로 내보내는 세계적 오보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난 건 일본 언론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는 "북한 차기후계자는 김정운"이라는 정보의 출처가 이번 해커 소동을 불러 일으킨 국가정보원이라는 사실이다.

 

<마이니치>는 올해 2월 17일 중국의 대북소식통 말을 인용해 "차기 후계자는 김정운"이라고 특종보도했지만, 그렇게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이유는 후계자 문제를 뒷받침해 줄 '공신력'있는 '실명'기관이나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월 28일 국가정보원이 "북한이 재외공관에 차기 후계자는 3남 김정운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발표하고 이것을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이 한국의 거대 일간지들이 보도하자 일본 언론들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7월 들어 좀 진정된 기색이지만, 6월달엔 거의 매일 북한 후계자에 관한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한때 일본의 대표적인 통신사에 근무했던 A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정원이 저런 말을 했을 때 일본언론들은 정말 고마웠을 것이다. 북한뉴스가 잘 팔리는 건 이미 업계의 상식일 테고, 문제는 근거가 얼마나 있느냐는 건데, 그래도 몇 십 년간 북한과 교류하면서 정보를 축적해 왔을 국정원이 저렇게 구체적으로 밝혀주면 보도하기 정말 쉬워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정원의 이 '재외공관 공문발송'은 사실이었던 걸까? 아직 북한과 국교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가 공관업무를 담당한다. 당시 '재외공관 공문발송' 소식을 들은 기자는, 즉시 총련측의 꽤 높은 인사를 만나 사실 여부를 물어보았는데, 그는 "그런 공문 정말 온 적 없다"고 몇 번이고 공문 발송을 부정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첩보인지 정보인지도 모를 국정원의 한마디 한마디가 일본 매스컴의 보기 좋은 먹잇거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언론을 매일같이 접하는 일본의 대중(Mass)들은 '국정원'이라는 공신력을 믿어버리고 만다.

 

국가정보원은 자신들의 말 한마디가 외국 언론및 시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박철현 기자는 일본 전문 뉴스사이트 <제이피뉴스>(www.jpnews.kr)'의 정치사회부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제이피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디도스 #일본 언론 #사이버테러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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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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