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 잘 이해하라고 우리도 가난하게 했나?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 실무 담당하는 비정규직 이야기

등록 2009.07.17 16:28수정 2009.07.1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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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가기관에서 교육불평등 해소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다.

 

2003년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교육양극화 해소를 위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이하 교복투사업)을 야심차게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교육이 오히려 사회를 계층화, 고착화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교육불평등 해소 정책을 참고해 만든 선진적 교육복지정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적극적인 불평등 해소 정책과는 다르게 한시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서울과 부산 8개 지역에서 2년간의 짧은 시범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교복투사업은 분명한 성과를 나타내었다. 우선 지역사회에 닫혀 있던 학교가 열렸다. 학교는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와 교류하면서 취약계층 학생들의 다양한 생활상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또 학생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학교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학교는 지역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 관련기관들과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며 해결해갔다.

 

이렇게 접근하면서 취약계층 학생들의 삶이 점차 개선되었다. 아이들의 얼굴표정이 바뀌었다. 어떤 아이들은 건강을 되찾았다. 선생님, 부모님과 관계가 좋아지면서 출석률이 나아지고, 학습욕구도 생겼다. 뚜렷한 성적 향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나타났고, 꿈을 쫒아 상급학교에 진학하기도 했다. 교육양극화 문제를 단순한 학습 프로그램 제공으로 풀어보고자 했던 기존의 대책과는 다르게 아이들의 취약한 삶에 관심을 가지면서 얻어낸 성과다.

 

정부가 바뀌고, 교육정책 기조가 바뀌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간의 성과를 기반으로 조금씩 확대된 사업은  2009년 현재 전국 100개 지역으로 확대되어 운영되고 있다. 사업 지원기간도 조정되어 최소 5년간의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교복투사업은 교육양극화 해소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진 사업이다. 그 중 가장 큰 장점은 사업의 중심에 지역과 학교를 잇는 독특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로 인해 교복투사업이 실시되고 있는 지역의 학부모와 주민들, 지역기관들은 '학교에 찾아가기 쉬워졌다.', '학교와 함께 일하기 쉬워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교복투사업에서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 프로젝트조정자! 로 부른다. 나는 지역교육청에 근무하며 한 지역의 사업을 조정하는 프로젝트조정자로 일한다. 학교에 배치되어 일하는 사람들은 지역사회교육전문가라고 한다.

 

우리들은 보통 사회복지사들이지만, 상담사, 교사, 청소년지도사 등의 자격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들은 1년 단위 계약직 신분이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경력자들이지만 월 급여가 대부분 150만 원 내외로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보다는 좋은 형편이지만, 국가기관에서 아동, 청소년과 취약계층을 도우며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상담교사, 사회복지공무원 등에는 크게 못 미친다.

 

물론 보너스도, 성과급도 없다. 사업을 시작한 2003년도에는 출장비도 받지 못했다. 이 뿐 아니라 교사도 공무원도 아닌 비정규직으로 생소한 일들을 추진하면서 학교의 완고한 규칙들과 부딪히기도 했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우리들 중 몇몇은 교육양극화 해소를 위한 교복투사업에 벌써 7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바치고 있다. 가족이 늘면서 경제 문제 등으로 더 이상 이 일을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런데 우리들은 여러 가지 예외조항에 걸려 비정규직 보호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또 교복투사업이 최소 5년간 펼쳐지는 사업임에도 우리들은 매년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게 한 데는 우리들에게도 잘못이 있다.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시대라는 현 세대의 시류를 쫒아 살지 못하고, 양극화되는 사회와 교육현실의 문제를 가슴아파하며, 고루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젊음을 바친 것이 잘못이다. 이렇게 하면, 국가와 사회가 인정해 줄 것으로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러한 잘못으로 인해 우리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올무에 발목이 걸린 채, 교육불평등 해소라는 무겁고 버거운 짐을 산 너머로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혹시라도 교과부는 우리들에게 가난한 가정 자녀들의 사정을 잘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또는 고용불안에 떨며 위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 자녀들의 형편을 잘 대변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을 비정규직으로 대우하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이제 그 고통과 위험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2009년 현재 교복투사업은 전국 100개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부산지역에는 74명, 전국적으로는 600여 명의 실무자가 비정규직으로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른 매체에는 아직 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이 곳 저 곳에 보냈습니다.

2009.07.17 16:28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다른 매체에는 아직 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이 곳 저 곳에 보냈습니다.
#교육복지 #교육불평등 #비정규직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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