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이야~ 간재미, 간재미가 무디기 양만 8천..."

이전 앞둔 군산 '해망동 어판장' 새벽 풍경

등록 2009.07.21 21:44수정 2009.07.2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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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20일 새벽 5시 군산 '해망동 어판장'. 운반선이 싣고 온 꽃새우와 다양한 생선들이 상자에 가득가득 담겨 육지로 올라오고, 아저씨아주머니들의 고성과 어상자 부딪치는 소리는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바닷가의 정적을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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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이 가득담긴 드럼통이 도열하듯 길 양옆으로 서있는 어판장 입구와 작업하는 운반선. 첫 경매를 앞두고 마지막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 20-30대로 보이는 젊은 분도 계셨는데 모두 활기 넘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 조종안


그동안 '선어'를 취급해오던 해망동 어판장이 10월 안으로 '활어'를 취급해온 '비응도' 항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일제강점기 왜놈들이 '째보선창'에 지은 동부어판장(1923년)에 이어 해망동 어판장(1918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처음에는 50년 지기가 떠난다는 소식만큼이나 가슴이 허전했다.

붉은 불빛이 가득한 어판장에는 어상자에 가득 담긴 꽃새우, 광어, 도다리, 아귀, 간재미 등 각종 생선과 어패류들이 질서 있게 정돈되어 경매를 기다리고 있다. 생선을 나르는 아저씨들과 쭈그리고 앉아 어상자를 정리하는 아주머니들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경매를 앞두고 이길원 '해망동 공판장' 장(54)을 만났다. 생선상자를 부둣가에 정박한 배에서 육지로 올리는데 고깃배가 맞느냐고 물었더니, '운반선'이라고 한다. 배는 바다에서 물건을 사다가 팔아 이익을 내는 '상고선'과 육지 화물차처럼 수수료를 받고 생선을 항구까지 운반해주는 운반선으로 나뉜다고 그는 설명했다.

번호가 적힌 빨간색 모자를 쓴 사람들은 중매인, 그 뒤에 서 계신 분들은 대 매인(중매인에게 수수료를 주고 사가는 사람)들이란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선주하고 계약을 맺고, 일당 대신 생선으로 받아 시장에서 산매하는 아주머니도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이 공판장장은 꽃새우 한 상자에 1만 5천 원에 경매된 일이 있었는데, TV 방송이 보충설명도 없이 내보내는 바람에 그 가격에 사겠다는 전화와 택배로 보내달라는 전화가 빗발치고, 직접 찾아오기도 해서 해명하느라 애먹었던 일도 있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새우가 너무 많이 들어와 그날 하루만 값이 폭락했는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시청자들이 아무 때나 가면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몰려와 설명해서 돌려보내느라 근무도 못하고 애를 먹었던 것. 그는 기사를 작성할 때 조심해줄 것을 에둘러 당부하기도 했다.

경매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경매를 끌어가는 사람은 군산수협 직원인 '세리꼬'(경매사), '보사시'(경매보조원), '하마조'(속기사) 이렇게 셋이 한 조를 이룬다. 이 공판장장은 세 사람의 손발이 잘 맞아야 경매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며, 요즘은 3D업종이라 그런지 그런지 경매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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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에 시작한 첫 경매 광경. 기가 실린 것 같은 경매사(파란색 티) 목소리가 구경하는 저에게도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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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경매사 김창수(검은줄무늬) 씨가 경매하는 모습. 몸은 뚱뚱해도 어딘가 세련되고 몸짓도 가벼워 보였습니다. ⓒ 조종안


이날도 경매보조원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되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니까 여기저기에서 얘기꽃을 피우던 중매인들과 대리인들이 생선상자가 쌓인 주변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여기에 구경나온 시민들과 시세가 궁금한 소매인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경매가 시작됐다. 경매보조원이 갈고리로 간재미를 찍어 들어 올리더니 고수가 추임새를 넣듯 큰 소리로 "물 좋은 간재미!"라고 외쳤다. 그러자 경매사가 기다렸다는 듯 "아이~야, 간재미, 간재미가 무디기 양만 8천이야, 삼만 이천!"을 이어가며 예민한 눈길로 중매인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속기사는 경매사 옆에서 낙찰될 때마다 '구매 일보'에 메모를 했다.

경매가 한 번 끝날 때마다 경매사가 최종 입찰한 중매인 번호를 알려주었다. 간발의 차이로 기회를 놓쳐 남에게 넘겨주었거나, 손가락 표시가 맞지 않아 사들이지 못한 중매인들의 탄식소리가 높은 어판장 허공을 맴돌았다.

경매사의 우렁찬 목소리는 아직은 바다가 살아 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새벽 6시에 시작한 경매는 아침 8시가 넘어서야 모두 끝났다. 경매가 끝날 때마다 대리인, 아니면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들인 물건에 번호를 붙이고, 상자에도 표시해서 운반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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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가 끝나기 무섭게 꽃새우를 차에 싣는 사람들. 새우 껍질을 벗겨 말리는 가공공장으로 가져가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마침 광어인지 도다리인지 헷갈리게 하는 생선이 보였는데, 이 공판장 장은 "'우광좌돌'이라는 말처럼 입이 오른쪽으로 비틀어진 것은 광어, 좌측으로 비틀어진 것은 도다리"라고 설명해주었다.

"속상할 때도 있지만, 재미도 있어요"

2시간 넘게 진행된 경매는 두 경매사가 교대로 했다.  새벽 6시에 시작해서 7시를 훨씬 넘겨서야 선배 경매사에게 넘겨준 임성재(35)씨를 만나보았다. 경매를 여유있게 끌어가고 체구가 듬직해 경력 10년도 넘는 노련한 40대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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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사 임성재(35세)씨, 아이가 하나이니 아직은 신혼 아니냐고 묻는 그에게서 아내를 사랑하는 착하고 성실한 가장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조종안


결혼을 해서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는 임씨에게 "요즘은 옛날과 달리 경매사가 3D업종에 든다고 하던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바쁘기는 하지만, 힘든 줄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어민이 원하는 가격에 경매가 이루어져 흐뭇해 할 때는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 나이가 든 경매사만 보다가 30대 젊은 분을 만나니까 신기하고 반가운데요. 경매사를 하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나요?
"그냥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되었습니다. 수협에 입사한 지 10년이 되었고, 경매사 경력도 2년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선배 어른들에게 많이 배우는 중입니다."

- 굵고 우렁찬 목소리가 매력이 있고 믿음직스러웠는데요. 중매인들이 가격을 알리는 손가락 표시는 전국 어판장이 같은지요? 그리고 경매를 시작할 때 '이야~' 소리와 '무디기'라는 말도 뜻을 몰라 궁금했습니다.
"손가락의 기본 표시는 같은데 지역에 따라 조금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종이 한 상자씩 있고 그 옆에 작은 상자가 있을 때는 '무디기'라고 하고, 두 개 이상 있을 때는 '접'이라고 하는데 서비스(덤)로 준다는 의미이지요.

경매사 중에는 흥을 돋우려고 '신토불이야!, 신토불이야!'라고 하는 분도 있고, '사이렌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득음한 소리꾼 목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이야~" 소리를 낮고 길게 냅니다. 무척 힘들지요."

- 아까 보니까 '양만', '양만' 하던데 무슨 뜻인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잡어를 경매할 때 '양만 7천 원'은 '2만 7천 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 상자에 10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어종의 20만 원도 '양만'이라고 합니다. 고급 어종이 1, 2만 원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니까요. 그리고 조금 어렵게 표시해야 무게가 있고, 신비감도 있잖겠어요.(웃음)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중매인마다 취급하는 어종이 있어요. 그런데 선물을 한다거나, 집안 잔치에 쓰려고 더 주고 사가는 바람에 3만 원 하던 어종이 갑자기 3만 5천 원에 경매될 수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가격이라고 볼 수 없지요. 그리고 오늘 4만 원에 사들인 어종을 잘 팔면 내일 값이 오를 확률이 높고, 재미를 못 보면 다음날 2, 3만 원으로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 혹시 하는 일에 대해 다른 불만이나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네요.
"다른 큰 불만은 없고, 지금도 신혼이나 다름없는데 휴일이 정확하게 잡혀 있지 않아서 어디 한 번 놀러 가기도 어려워요. 바쁠 때는 '중동 어판장'이나 '비응도 어판장'까지 지원 나가거든요. 새벽에 출근하면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날도 있습니다."

- 혹시 중매인과 신호가 맞지 않아 옹색한 입장이 됐을 때는 없었는지요?
"저나 중매인이나 사람이니까 당연히 실수가 있지요. 중매인과 눈이 맞지 않아 만족한 가격을 받지 못하거나 구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도 대부분 이해를 해줍니다. 그런데 따지고 드는 선주도 있고 중매인도 있어서 속상할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재미도 있습니다.(웃음)"

경매가 끝나면 경매사가 하는 일은 모두 끝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차에 오르더니 어디론가 출발하려고 하기에 아침도 먹지 않고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경매 결과도 전해주고 결재도 해줘야 합니다. 경매가 이루어지면 우리(수협) 돈으로 어민들에게 대금을 지급하고 중매인에게는 15일간의 여유를 주는데, 만약 그날까지 입금하지 못하면 이자가 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약속을 지키지요. 신용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다음에 또 뵙기로 하지요."

경매사와 헤어지고 근처 해장국집에 들어가 얼큰하고 시원한 물메기국에 밥 한 공기로 허기를 달래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무겁고 아팠다. '2시간이 넘도록 경매사를 따라다녔으니 아프지 않으면 비정상이지'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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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식 명칭은 ‘해망동 공판장’인데 편리상 ‘어판장’으료 표기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식 명칭은 ‘해망동 공판장’인데 편리상 ‘어판장’으료 표기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해망동어판장 #경매사 #군산 #째보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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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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