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장 무색무취, 차라리 보수가 낫다"

[인터뷰] 곽노현 전 인권위 사무총장 쓴소리

등록 2009.07.24 10:53수정 2009.07.2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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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 권박효원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 권박효원

"차라리 보수적 위원장이 낫다. 현병철 위원장은 아예 논쟁이 불가능하다."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전 인권위 사무총장)는 "사람을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현병철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22일 오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곽 교수는 현 위원장에 대해 "중량감이 떨어지고 함량 미달"이라고 평가했다.

 

현 위원장은 이렇다 할 반인권적 경력이나 발언이 없기 때문에, 위원회 안팎에서 "뉴라이트 인사가 오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곽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보수적이더라도 역량과 위상이 있는 인물이 오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국가기관은 그 수장의 수준을 넘지 못하며, 인권은 보수와 진보 위에 있기 때문이다.

 

"현병철 인권위원장 임명에 모욕감 느꼈다"

 

그래서 곽노현 교수는 이번 인사를 '인권위 무력화' 시도로 풀이했다. 인권위가 끊임없이 정책권고와 의견표명을 해야 할 다른 권력기관으로부터도 위원장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안경환 전 위원장이 마지막까지 강조했던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의장국 수임국 선출도 어려워졌다고 그는 분석했다. 이 대목에서 안 전 위원장의 퇴임 시기에 대해 "조직 축소가 결정된 3월 31일에 그만 두는 게 맞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곽 교수는 이번 인사에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애정이 컸다. 그는 1998년부터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공동대책 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초대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면서 직접 인권위에 몸을 담았다.

 

그런 곽 교수에게 인권위의 나아갈 길을 물었다. 그는 인권위원들에게 "'익명의 회의 참석자'로 그치는 것은 곤란하다, 현장에 가서 이야기를 듣고 의제도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신이 비판한 현 위원장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닫지 않았다. "변화가 쉽지 않다"면서도 "무소속 독립기구의 수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조직을 운영해달라"고 당부했다. 그것이 법이 요구하는 위원장의 임무라는 것이다.

 

곽노현 교수 인터뷰는 22일 오후 2시 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한국방송통신대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무색무취 인권위원장, 다른 기관 수장들에게 어떻게 인정?"

 

곽노현 교수. ⓒ 권박효원

곽노현 교수. ⓒ 권박효원

- 인권단체들이 인권위원장 취임을 막아서는 초유의 사태를 보는 심경과 생각은?

"인권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모욕감을 느꼈다. 3월 31일 조직 축소가 1차 폭거라면 현병철 위원장 임명은 사실 2차 폭거다. 인권위를 낳은 인권운동과 인권 역사에 대한 모욕이다. 인권위는 수많은 인권 피해자의 희생 위에서 민주화의 성과로, 또한 인권운동 활동가들의 단식농성을 통해서 독립기구로 세워졌다. 간신히 '비교적 덜 관료적인 기구'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비전문가인 분이 위원장이 됐다."

 

- 같은 법학자로서, 또한 전 인권위원이자 사무총장으로서 현 위원장을 평가해달라.

"전임 위원장들은 액티비스트(활동가) 기질도 좀 있고, 누가 봐도 중량감이 있었다. 인권운동 공동체에서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신 분들이다. 그런데 현 위원장은 법학자로서는 물론이고 민법학자로도 미미한 분이다. 교수생활도 대부분 (연구보다) 학내 보직을 섭렵했다.

 

그 분 나름대로 장점과 덕목이 왜 없겠나. 다양한 보직 경험도 있고 30년 이상 법학자라면, 다른 국가기관의 수장은 맡을 수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일반 시민이나 인권단체들이 주인의식을 갖는 유일한 국가기관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료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권 전문성·감수성·현장성·대표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위원장이 공부해온 민법의 원칙은 인권의 원칙과 감수성이 많이 다르다. 이 분이 '법학자로서 인권을 모를 수 없다'고 했는데, 민법도 인권과 연계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인권지향적 민법 연구나 활동을 하진 않았다. 단정짓고 싶진 않지만, 간단히 보면 중량감이 떨어지고 함량 미달이다."

 

- '무색무취'한 인물이라서, 보수 인사보다는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도 나온다.

"어떤 국가기관도 수장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보수냐 진보냐, 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인권은 보수와 진보 위에, 또 그 전에 있는 것이다. 물론 보수·진보에 따라서 '한 인권과 다른 인권이 충돌할 때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이냐', '인권의 한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이냐' 이런 문제들이 달라진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한 일이고 논쟁적인 일이다. '보수적 위원장'은 역량과 위상은 있지만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현 위원장은 아예 논쟁이 불가능하다. 인권의 역사, 주요 결정 판례, 국제사회 동향, 새로운 인권 의제 등에 대해서 백지인 분이다."

 

"ICC 의장국 선출? 인권위 방패막 안될 것"

 

- 청와대가 현 위원장을 발탁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 가벼운 인연에 따라서 거의 즉흥 인사 비슷하게 했을 것이다. (한양대 법학과 출신인) 정동기 민정수석과 개인적 연고도 있고, 현 위원장이 한양대 행정대학원장을 지냈으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한양대에서 교수할 때 (이 대통령은 2006년 9월에서부터 2007년 8월까지 한양대 초빙교수였다) 인사 정도 나누었을 것 같다."

 

- '실세 사무총장설'과 '인권위 무력화설'이 나온다. 어떻게 분석하나?

"인권위를 있는 듯 없는 듯한 기구로 만들려는 무력화 정책이다. 이렇게 존재감 떨어지는 분을 임명한 것은 인권위를 하찮게 보고 '누가 위원장을 해도 상관없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인권위는 검찰·경찰·군대 등 다른 권력기관에 대해 권고도 하고 의견표명도 해야 하는데, 인권위원장이 이런 기관들의 수장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아야 할 것 아니냐.

 

청와대는 인권위를 아주 귀찮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인권위가 이라크 파병 반대의견을 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위는 그런 얘기 하라고 만든 조직'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그런 식의 이해가 필요하다. 경제위기로 대량실업이 오고 사회복지 예산은 감축될 때 인권위는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이 대통령이 '인권위가 소신있게 일하라'고 하는 게 맞다."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오전 현병철 신임 국가위원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오전 현병철 신임 국가위원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제공

 

- 현 위원장으로는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의장국 선출도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하나.

"법학교수들이 현 위원장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고, 인권단체들도 거부했다. 게다가 그동안 UN 인권최고대표와 ICC 의장이 두 번씩이나 '인권위 독립성을 침해하지 말라'고 공식서한을 보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비전문가를 위원장에 임명했다. 이런데도 한국 인권위가 국제 인권기구들의 수장으로 뽑힐 수 있겠나.

 

그리고, ICC 의장국이 되면 (국제적 위상에 맞는 인권수준을 요구할 수 있어서) 인권위의 방패막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이거야말로 안 맞는 얘기다. 정부가 계속 독립성을 위태롭게 할 때 ICC 의장국으로서 한국 인권위가 한국 정부에 항의서한을 보낼 수 있나. 불가능한 구조다."

 

- "ICC 의장국을 수행할 후임 위원장"을 강조하면서 사퇴한 안경환 전 위원장의 '카드'가 안 먹힌 셈인가.

"안 먹혔다. 정부가 ICC 의장국 선출을 원했으면 인선기준도 달라졌겠지. 안 전 위원장은 조직 축소가 결정된 3월 31일에 그만 두는 게 맞았다. 끝까지 (조직을 안정시키는 등)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조직 내부의 관점이다. 새 위원장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은 평가하고 비판하는 게 자연스럽다. 조직에 남아서 (정부 쪽의 움직임을) 지연시키는 일은 잘 안되게 되어 있다."

 

"깨어있는 인권위원들이 제 역할 해주시길"

 

- 인권위가 지금 같은 상황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때일수록 현장 감수성을 가진 인권위원들이 활동력을 보여야 한다. 단순히 '익명의 회의 참여자'로 그치는 것은 곤란하다. 현장에 가서 이야기를 듣고 의제도 개발해야 한다. 위원회 전체적으로도 이런 인권위원의 말을 경청하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검찰이 용산참사 피고인에게 유리한 수사기록을 법원에 내지 않고 있는데, 인권위가 관련 법안에 대해 개정 권고하고 검찰을 나무라야 한다. 탈 시설을 감행한 중증장애인들은 주소지가 없어서 기초수급권도 못 받는다. 인권위원 누군가는 이들의 얘기를 듣고 의제화해야 한다.

 

다른 답은 발견 못하겠고. 깨어있는 위원들이 제 역할을 해주십사 바란다. 그렇게 애써도 잘 안될 수 있다. 그 때는 잠정적으로 승복해야 하고 비판을 강화하면 된다. 이를 살리는 것은 인권위원의 역할이다."

 

- 인권위의 구조적 변화도 필요한 것 아닌가.

"투명한 임명과정이 있으면 이렇게 안 됐겠지. 법적 요건에 맞게 인권위원을 인선해야 한다. 검증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위원장 인사청문회는 필수적이다. 지금 위원회 구성은 대통령과 여당이 11명 인권위원 중 6명, 특히 인권위원장과 상임인권위원 2명을 임명하는데, 이런 정권 프리미엄을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

 

법에 인권위원은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전문적 경험과 지식, 독립성 수호와 인권 증진에 대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걸 검증할 절차가 없다. (그 절차에 따라 뽑힌) 인권위원들은 당연히 누구에게 지명받았든 법적 의무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 그래도 좀더 보수적 인권위원과 진보적 인권위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국민과 인권을 위한 경쟁이다."

 

-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했다. 현 위원장에게 당부할 말은?

"현 위원장이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서, 인품이 아무리 좋고 학습능력이 좋아도 변화가 쉽지 않다. 그런데 정말 자신이 무소속 독립기구의 수장이라는 점을 깊게 인식하고, 인권위의 특성과 '시민사회와 개방성', '국제사회와 친화성' 등을 유의해서 투명하게 조직을 운영한다면, 가능성은 있다. 그게 인권위법이 위원장에게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제일 후회했던 인사가 (정부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하여 싸웠던) 가인 김병로 대법원장이었다. 골수 공화당원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임명한 얼 워렌 대법원장은 흑백차별을 철폐하려고 노력한 진보적 법관으로 칭송받는다. 현병철 위원장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는 몇 %의 가능성을 미리 막을 필요는 없다. 현 위원장은 물론이고 지금의 인권위원들, 그리고 이후 이명박 정권에서 새로 임명되는 인권위원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자기 성향이야 있겠지만, 법에 쓰인 대로 인권위원의 임무에 충실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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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3시 현병철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취임식이 열리는 가운데,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취임식장에서 현 위원장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서유진

20일 오후 3시 현병철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취임식이 열리는 가운데,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취임식장에서 현 위원장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서유진
덧붙이는 글 서유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입니다.
#현병철 #곽노현 #인권위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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