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은 왜 자전거를 안 탈까?

[책읽기가 즐겁다 297]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등록 2009.07.23 20:38수정 2009.07.23 20:38
0
원고료로 응원
- 책이름 :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 글 : 윤준호, 반이정, 지음, 차우진, 임익종, 박지훈, 서도은, 조약골, 김하림
- 펴낸곳 : 지성사 (2009.7.30.)
- 책값 : 13800원

 (1) 서울에서 자전거 타는 일이란


a

겉그림. ⓒ 지성사

두어 달쯤 앞서, 서울 홍제동에 있는 헌책방 일꾼 자가용을 얻어타고 마실을 한 적 있습니다. 늘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던 길을 자가용으로 움직이니 몹시 새삼스러웠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아홉 해를 지내는 동안 자전거 다음으로 지하철을 가장 많이 탔고, 버스는 아주 드물게 탔으며, 택시는 훨씬 드물게 탔는데, 자가용은 더더욱 드물게 탔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몸에 땀을 줄줄 흘리지 않고 자가용을 타니까,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 무게를 느끼지 않고 언덕길을 사뿐히 올라가니까,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는 데에도 시원하게 앉아서 다리쉼을 할 수 있으니까,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좋았습니다. 힘이 안 든 대목에서는.

그렇지만 힘이 안 들기 때문에 '힘을 덜 쓴 대목에서 좋다'뿐이지, 이렇게 힘 안 빼고 다니는 일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한 권 사서 읽어도 그 책에 걸맞게 값을 치르면서 장만하여 읽어야 제맛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으려고, 아기 돌보고 빨래하고 집살림 꾸리는 틈틈이 졸린 눈 비벼 가며 읽어야 참맛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는, 더운 여름날 시원한 보리술 한 잔을 거저로 얻어마셔도 짜릿하겠으나, 저 스스로 땀흘려 일해 번 돈을 치르며 사마시는 보리술 한 잔 맛에는 견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자가용 마실은 자가용 마실대로 맛과 멋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자가용 마실도 재미있습니다. 부산 광안다리는 자전거로 건널 수 없는 한편, 걸어서도 건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길은 차를 얻어타고 지나면 새삼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만, 저는 자전거가 갈 수 없는 길에서 보는 모습이라든지,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닐 수 없는 데에서만 보는 모습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 결국 나 혼자 조심하고 나 혼자 열심히 자전거를 탄다고 이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을 듯 보였다. 인터넷의 자전거 동호회는 그렇게 인기가 높건만 한 발짝만 바깥으로 나가면 일반인들은 자전거에 관심조차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자전거를 안전하고 즐겁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동호인이 아닌 일반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28쪽/윤준호)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던 지난날, 처음 몇 해는 지하철을 곧잘 탔지만, 지하철을 타면서 흐뭇하거나 기뻤던 일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제법 먼길을 천 원 안팎이면 실어다 주니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처음 서울에서 살림을 꾸리던 1995년에는, 이때 제 일터이자 살림집이었던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배달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1998년과 1999년에도 웬만하면 신문배달 자전거로 움직였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독립문이나 종로까지는 으레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이문동에서 미아리로 가든 상계동에 가든 언제나 자전거와 함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독립문이며 종로며 신촌이며 미아리며 상계동이며 하는 헌책방을 다녀올 때에는, 신문배달 자전거 짐받이에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친친 묶어서 신나게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8월 8일부터 신문배달 일을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가던 때부터는 자전거하고 멀어졌습니다. 주머니가 가난하여 자전거를 살 돈이 없기도 했고, 일터에 '출판사에서 쓰는 자전거'가 있지도 않았으니 타고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 출판사에 자전거 한 대 있었다면, 이문동에서 서교동으로 자전거로 오갔으리라 생각합니다. 2000년에는 일터하고 가까운 종로구 평동으로 살림집을 옮겼는데, 얄궂게도 이때부터 다닌 출판사는 김포공항 쪽에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걸어서 일터를 다니려던 꿈(종로구 평동에서 서교동으로)을 접고 지하철을 탔는데,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신촌이나 외대 앞이나 청구동이나 용산 쪽 헌책방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으레 걸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는 길을 가방에 책을 잔뜩 채우고 두 손에는 끈으로 질끈 동여맨 책꾸러미를 영차영차 땀 뻘뻘 흘리면서 신나게 걸었습니다. 가방에 채우고 두 손에 든 책짐은 사십 킬로그램 남짓이 되기 일쑤였지만, 한 시간 남짓 걷는 밤길이 고단해 쉬엄쉬엄 쉬면서 돌아오곤 했지만, 왠지 지하철을 타기보다는 팔힘이 쪽 빠지더라도 걷는 길이 좋았습니다.

때로는 노량진부터 한강다리를 넘는 길을 걷기도 했는데, 이렇게 길을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낮에도 그렇고 밤에도 그렇습니다. 길을 거닐며 늘 느꼈지만, 이 길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걷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거님길은 언제나 들쑥날쑥이거나 전봇대나 거리나무가 걸리적거리도록 놓여 있거나, 으레 공사중 간판이 붙으면서 어지럽혀져 있거나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보도블럭 까뒤집기'는 숱하게 보았어도, '울퉁불퉁하고 깨진 거님길 손질하기'는 거의 못 보았습니다.

a

동네 길가에 자리한 자전거집에서 자전거를 손질하는 젊은이들. ⓒ 최종규


.. 자동차 운전자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서 유리창 너머로 텔레비전 화면 같은 세상만을 보며 계절과 날씨와 공기의 변화를 에어컨과 히터와 공기청정기로 막아 보려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행위 때문에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은 더욱더 가속화되고, 운전자 스스로는 둔감하고 허약하고 재미없어져 버릴 뿐이다 … (자동차로) 시속 60킬로미터로 시내를 관통하며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내게 서울은 언제나 최고로 빠른 도시였다. 거리의 옷차림들, 건물에 도배된 최신 광고들, 나타나자마자 사라지는 유행들, 지하철 창밖으로 휙휙 달려가는 건물들, 그리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확 시야를 막아서는 빌딩들, 주상복합 건물들, 아파트 단지들, 서울은 필요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도시다 ..  (109쪽/지음), (153쪽/차우진)

일터를 쉬는 주말에는 으레 처음부터 '전철도 버스도 안 탄다'는 생각으로 집에서 길을 나섰습니다. 아침 열 시쯤 길을 나선 다음 일고여덟 시간쯤은 넉넉히 거닐며 서울 시내를 두루 쏘다녔습니다. 어느 골목 안쪽에 '아직 내가 모르는 헌책방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온몸이 땀범벅이 되곤 했는데, 점과 점으로 집하고 책방만 오가는 움직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부터 책방 사이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써 찾아간 책방이 쉬는 날이었든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든 마음이 허전하거나 아프지 않았습니다. 나고 지고 하는 흐름은 자연스러운 삶과 죽음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두 다리로만 걸어다니다가 2002년에 비로소 푼푼이 모아 놓은 돈으로 제 자전거를 한 대 마련했고, 이때부터는 두 다리로도 다니고, 때로는 자전거로도 다니면서 더 멀리 서울 시내 골목을 쏘다닙니다. 다리쉼을 할 때면, '사진쟁이 김기찬 님도 이 골목을 거닐며 이쯤에서 다리쉼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리에 날개를 달고 보니, 저로서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 서울이기는 해도 골골샅샅 살갑고 애틋한 곳이 참으로 많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재개발되어 사라진 숱한 골목길 아름다운 모습을 두 눈으로 담았고 두 다리로 느꼈으며 두 팔로 껴안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이태 뒤에는 서울을 떠나 충주 산골마을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울 시내를 타고다니던 자전거는 선배한테 물려주고, 저는 반으로 접는 자전거를 장만해서 고속버스에 싣고 다닙니다. 첫 한 해는 고속버스 짐칸 신세인 자전거였으나, 그 이듬해부터는 '고속버스로만 다닐 노릇이 아니라 국도를 자전거로 다녀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태째 되는 해부터 자전거로 한 번 길을 뚫었고, 이제부터는 충주와 서울을 자전거로 오가는 삶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퍽 먼길을 한 주에 한 차례씩 자전거 나들이를 하고 보니, 서울 시내를 자전거로 달리는 일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뭐, 하루에 너덧 시간을 달려 충주에서 서울을 오가는데, 서울 시내 한두 시간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곰곰이 헤아려 보면, 먼길을 달리고 나서 서울 시내 달리기는 쉬운 달리기임을 느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러 해에 걸쳐 신문배달을 자전거로 했기 때문에 다리에 힘이 많이 붙어서 한결 손쉽고 즐겁게 자전거 나들이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바탕이 있으니,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릴 생각을 품을 수 있었겠지요.

.. 나도 자전거를 좋아하긴 하지만, 자전거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까이하기 좀 꺼림칙하다. 깃발 꽂은 비싼 새 자전거를 타고 떼로 몰려다니며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아저씨들과 그들이 여기저기 뱉어 놓은 이야기들이 불편하다. 물론 좋은 자전거는 좋은 자전거다. 동어반복이니 틀릴 수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오래 듣는 것은 좀 피곤하다. 결국 비싸니까 좋더라는 이야기에 불과하잖은가. 그건 당연한 건데 왜 따로 말이 필요한지 난 모르겠다. 단지 돈을 좀 썼다는 말에 불과하다 ..  (212쪽/박지훈)

a

길가에 묶인 자전거는 훔쳐 가기에 '좋을'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많이 도둑을 맞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어느 곳이든, 자동차 댈 곳은 많아도 자전거 댈 곳이 모자랍니다. 자전거 도둑이 잦은 까닭 가운데 하나도, 자전거를 걱정없이 둘 데가 없는 탓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그러나, '한국에서 서울처럼 자전거를 달리기 좋은 곳은 더 없음'을 느낀 때는, 충주부터 서울까지 먼길을 달리던 때부터입니다. 자전거마을 상주도 있고, 땅이 제법 판판한 영동 같은 곳도 있으며, '발바리 떼잔치질' 역사가 깊은 수원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한국땅에서 자전거를 타기 가장 좋은 곳은 서울입니다. 그리고, 한국땅에서 자전거를 가장 안 타는 곳 또한 서울입니다.

웬만한 여느 도시나 시골에서는, 웬만한 볼일을 보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도 됩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걷는 일은 '시간 버리기'가 아니라 '길 즐기기'이며 삶입니다. 흔히들 '그 길을 뭐 하러 두 시간이나 걸어가며 시간을 버리느냐'고 합니다만, '두 시간 거닐 길을 자가용으로 십 분 만에 씽 달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자가용을 장만하느라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할 뿐더러, 자동차를 굴릴 기름값을 버느라 더욱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매한가지가 됩니다. 애써 더 많은 돈을 벌고자 '내가 하고프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돈벌이에 시간을 바치느'냐, 아니면, 나 스스로 내가 하고픈 일을 골라서 하면서 즐겁게 길나섬을 하느냐로 갈립니다.

서울이라는 곳은 길이 곳곳으로 잘 뚫려 있고, 어디로든 손쉽게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시골과 서울이 다른 대목은, 시골길은 걷기에 알맞고, 서울길은 자동차한테 알맞습니다. 그런데 길이 곳곳으로 잘 뚫린 서울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자동차가 제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자동차 계기판에 20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다고 새겨져 있어도 시내에서 100킬로미터 넘게 달릴 일이란 없습니다. 시내에서 30킬로미터로만 달릴 수 있어도 잘 달리는 셈입니다. 이제 서울은 버스길을 따로 뚫어서 버스는 좀더 빨라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느 자전거로 설렁설렁 달릴 때하고 견주어도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치솟는 찻삯을 헤아리면, 버스도 지하철도 하나도 안 빠르고 하나도 안 값싼 차편인 셈입니다.

더구나 맛집이니 멋집이니 찻집이니 술집이니 책집이니 극장이니 공연장이니 옷집이니 뭐니뭐니 하는 곳은 모두 길가에 있거나 골목에 있습니다. 차 댈 곳이 넉넉한 데가 드문드문 있을 터이나 차를 대느라 보내야 하는 시간과 품이 얼마나 많으며, 차 대며 치르는 삯은 얼마나 많습니까. 자전거로 움직이며 마땅한 곳에 착 잠가 놓으면, 또는 자그마한 접는 자전거를 착착 접어서 날라 놓으면, 서울에서는 문화며 예술이며 장보기이며 모든 일을 훨씬 빠르고 가볍고 신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서울에는 한강 자전거길이 있어서 자전거 즐기기에 좋다고들 하지만, 저한테는 한강 자전거길은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저한테 한강 자전거길은 '지루한 고속도로'와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오로지 앞으로 달리도록만 하는 길이 한강 자전거길입니다. 가끔가끔 널따란 쉼터가 나오지만, 훨씬 긴 길은 자전거 두 대가 겹쳐서 달리면 아슬아슬한 좁은 자리입니다. 이 좁은 자리에 '걷는 사람-강아지 데리고 나온 사람-인라인 타는 사람-달리기 하는 사람-자전거 타는 사람'이 뒤죽박죽 섞여야 합니다. 빠르기를 짜릿하게 즐기고픈 사람이든 설렁설렁 타고 싶은 사람이든, 자전거를 자전거답게 즐기기 어려운 데가 한강 자전거길입니다.

서울이 자전거 타기에 좋다면, 다름 아닌 찻길이 잘 뚫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로든 다 이어진 찻길들, 고가도로이든 지하도로이든 이 찻길들 한쪽 50센티미터만 자전거한테 내어준다면, 서울이라는 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자전거 문화를 높이 이루며 널리 나눌 수 있는 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급한 일이 있지 않은 한 파리를 자전거로 달릴 때는 속도를 내지 말자. 왼편으로 센강이 흐르고 오른편으로 기차역 형태를 간직한 오르세 박물관이 아름다운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무에가 급할쏜가! 파리의 땅 아래에는 갈 길이 급한 사람들이 가득 찬 메트로가 달리고 땅 위에서도 갈 길이 급한 사람들의 자동차가 달리지만, 나 같은 한량의 자전거는 유유히 길 위를 날아간다 … 친환경 도시로 탈바꿈하려는 파리에서 오염물질 생산기계인 자동차 타기는 점점 힘든 일이 되어 가고 있다 ..  (256, 264쪽/서도은)

a

비를 옴팡 맞고 있는 동네 짐자전거.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늘 그대로 놓여 있는 자전거. ⓒ 최종규


그런데 서울사람은 서울길이 얼마나 잘 뚫려 있는가를 살갗으로 잘 깨닫지 못합니다. 오로지 자가용을 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가용이 없는 이는 버스나 지하철만 타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길흐름을 따라서 내가 가려는 곳으로 가 보면, 서울이 자전거로 오가기 얼마나 좋은 데인지를 곧바로 알아챌 수 있건만, 기꺼이 자전거로 돌아서지 않습니다.

서울사람은 자전거를 타도 생활자전거로 타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도 '동무들 앞에서 뽀대 세우는' 자전거를 사 줍니다. 이른바, 유사산악자전거를 사 줍니다. 어른들 스스로도 당신 삶을 살찌우는 자전거를 알아보지 못하고 즐겨타지 못합니다. 뱃살이 너무 나왔다 싶은 아저씨들이 아내 몰래 지름신에 따라 '뽀대 나는' 자전거를 인터넷으로 지르곤 합니다. 자전거를 왜 타려 하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자전거를 어떻게 타려 하는지 살피지 않으며, 자전거를 타며 무엇이 나아지는가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너무 많이 몰려 있고, 너무 많이 누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기름값이 그렇게 치솟아도 자동차는 줄어들지 않을 뿐더러, 더 많은 자동차가 새로 나올 뿐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소리는 끊이지 않아도 하나같이 '재개발 비싼 아파트'를 꿈꾸는데다가, 이웃끼리 오순도순 어울리는 낮은 자리 골목마을을 어깨동무하지 않습니다. 몸을 써야 하는 자전거요, 나 스스로 땀을 내야 하는 자전거입니다. 땀을 안 내고 탈 수 없는 자전거이고, 몸을 안 써도 되는 자전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서울은 모든 좋은 조건이 다 갖추어진 곳이지만, 이 모든 좋은 조건을 머리로만 깨닫고 몸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비계덩어리 뚱뚱이가 되어 버린 도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시도 비계덩어리 뚱뚱이이지만, 도시사람도 비계덩어리 뚱뚱이입니다.

a

지난날 짐자전거였던 '생활자전거'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공짜로 나누어 주거나 아이들한테 값싸게 사 주었던 유사산악자전거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자전거로 잘 타고다닌다면 얼마든지 '좋은 생활자전거'로 뿌리내립니다. ⓒ 최종규


 (2) '우리를 사로잡는' 자전거를 말하는 책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이라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아홉 사람이 아홉 가지 '자전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노래하는 사람, 그림을 말하는 사람, 자전거로 짐 나르는 사람, 노래를 말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회사원, 파리 유학생, 라디오방송 맡은 사람, 인터넷 자전거모임 꾸리는 사람, 이렇게 아홉 사람이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만나고 느끼고 사랑하는 자전거 이야기를 아홉 꼭지 들려줍니다.

틀림없이 다 다른 아홉 꼭지입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즐겨타고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홉 꼭지를 읽어 보았을 때에는, 꼭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하나는 '자전거를 삶으로 받아들여서 지내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전거를 취미로 삼으며 지내는 사람'입니다.

.. 어느 날 사무실 마당 구석에 낡고 녹슨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바퀴는 휘었고 브레이크는 헐거웠다. 무심코 그 자전거에 올라 골목길을 달려 봤다. 바람이 시원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지하철역 세 정거장 거리의 집까지 타고 와 봤다. 한 시간이 걸렸다. 자전거는 도로를 달려야 하는 차라는 것을 배웠다 … 나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다 … 우리 나라에서도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쌀, 우편, 신문, 우유, 채소 등등은 자전거가 도맡아서 배달했다. 넓은 지역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재래시장에는 이른바 '쌀집 자전거'를 이용해 화물을 나르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 물론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하기 때문에 타지 말아야 할 것은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다. 위험을 만든 것이 바로 자동차기 때문이다. 길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어린아이, 걷는 사람, 자전거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자동차다 … 인도로 올라가면 자전거는 교통 약자에서 강자로 뒤바뀌고 만다. 인도에서 난폭하게 달리며 벨을 눌러대는 것은 도로에서 과혹하며 빵빵대는 자동차와 다를 바가 없다 ..  (78, 82, 83, 110, 112쪽/지음)

a

도심지를 달리며 '자전거한테 찻길 하나'를 외치던 발바리 모임 모습. ⓒ 최종규


오늘 우리 사회에서 자전거 타기란 거의 '취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자전거 동아리 또한 '취미' 테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기쁘고 홀가분하게 나누는 모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날마다 자전거 타는 고단함과 짜릿함과 힘겨움과 싱그러움을 주고받는 모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자전거 모임은 '중고 물품 사고파는 장터' 구실 하나, '더 뽀내 나는 자전거 자랑하는' 노릇 하나, '장비병과 지름신에 놀아나는 자위행위'를 달래는 쉼터 하나, '자전거를 차에 태워 주말에 어디 놀러다닐 만한 데 찾는' 정보검색소 하나, '가까이에서 술동무할 사람 찾는' 사귐터 하나, 이런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취미로 즐기는 자전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술동무 사귀려고 자전거 모임에 들어와서 어울리는 일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띠 모임', '지역 모임', '나이 모임', '학교 모임'처럼, '취미로서 자전거 모임'은 얼마든지 할 만합니다.

그런데, 자전거 타기를 취미로만 그친다면, 어딘가 허전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자전거 나들이를 취미와 사람 사귀기에서 멈춘다면, 무엇인가 쓸쓸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돈이 있어 더 크고 비싼 자가용을 끌듯, 돈이 있어 더 비싸고 넓은 아파트를 사듯, 돈이 있어 더 이름 높고 잘 빠진 자전거를 몰듯 할 수 있습니다.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음을 뽐낼 수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자유만 누린다면, 이런 자유 말고는 다른 자유를 찾지 못한다면, 이런 자유가 '모든 자유'인 줄 아는 가운데 자전거 손잡이를 붙잡는다면, 왠지 슬프고 딱합니다.

.. 평균 속도는 가장 느렸을 경우가 시속 8.3킬로미터, 가장 빨랐을 경우가 시속 25.3킬로미터, 전체 평균은 시속 17.0킬로미터였다. 내가 빠른 게 아니다.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무리하지 않아도 이 정도 속도는 나온다 … 사람들은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자전거는 생각보다 빠르다. 자전거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능력은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다 … 결국 우리 나라에서 90퍼센트의 (배달) 오토바이는 자전거보다 속도나 효율성 면에서 그다지 월등한 것도 아니면서 기름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 도시에는 가난하면서도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기회들이 종종 있는데, 자전거는 그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 준다 … 나는 식당도 술집도 극장도 콘서트도 학교나 학원도 거의 가지 않지만, 부족함을 느껴 본 적이 없다 ..  (96, 100쪽/지음)

a

행사 때라 이렇게 탄다고 하지만, 법으로 따져도, 자전거는 이렇게 찻길 하나를 차지할 권리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 최종규


중국 나들이를 몇 번 하던 지난날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으레, 우리가 말하는 '짐자전거'를 타고다니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자동차가 부쩍 늘고 자전거 또한 짐자전거에서 '뽀대 나는' 자전거로 차츰 바뀌고 있습니다만, 집과 일터를 오가는 사람한테는 짐자전거만큼 좋은 자전거가 따로 없습니다. 또한, 가게일을 보는 사람한테도 짐자전거처럼 훌륭한 자전거가 더 없습니다.

한 사람이 안장에 앉고 한 사람이 짐받이에 앉기도 하는 짐자전거입니다. 아가씨가 안장에 앉아 사랑하는 님을 짐받이에 태우든, 젊은 사내가 안장에 앉아 사랑하는 님을 짐받이에 태우든, 짐자전거는 두 사람을 사랑스레 잇는 끈입니다. 더욱이, 아이를 낳아 기를 때에는 한두 아이까지 함께 태울 수 있는 짐자전거입니다.

산을 타는 자전거이든, 길을 싱싱 달리는 자전거이든, 반으로 뚝딱 접는 자전거이든, 짐받이 없는 자전거가 무척 많고, 이런 자전거는 처음부터 짐받이를 달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바구니를 안 달기 일쑤입니다. 이리하여, 이와 같은 '취미' 자전거는 '삶' 자전거가 되지 못합니다.

.. 대도시에는 차가 너무 많기 때문에 차가 빠르게 이동하지 못한다. 아무리 도로를 넓혀도 그에 비례하듯 차가 늘어나기 때문에 평균 시속에서 자전거는 차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택시와 견주어 봐도 자전거는 목적지에 당도하는 데 택시와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자주 하는 이유가 어찌 보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있으면 당연히 자전거보다 빨라야 하고 도로에서는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자전거보다 빠르지도 않고 도로는 항상 차들로 북적인다. 개념과 현실의 괴리인 것이다. 빨리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는데, 지하철을 타고 온 사람보다 더 늦게 도착했을 경우 느끼는 허탈감 같은 것이 대도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게 아닐까? … 교통체증은 본질적으로 집회가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자동차가 유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체증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 대안은 비장애인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  (279, 303쪽/조약골)

다만, 취미 자전거를 삶 자전거로 거듭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만 달리다가 혼인을 하면서, 때로는 사랑을 하면서, 짝꿍하고 함께 타려고 하면서 자전거가 달라집니다. 새 식구가 태어나면서 자전거 뒤에 수레를 달아 아이를 태우기도 합니다.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가운데 아이가 혼자서 탈 자전거를 새롭게 장만해 주기도 합니다. 아직 아이가 없을 때에는 '자전거 빠르기를 늦추'면서 서로 페달질을 맞춥니다. 페달질을 늦추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운데, 함께 달리는 길을 더 느긋하게 즐깁니다. 천천히, 아니 서로한테 알맞게 달리면서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아예 자전거를 세운 다음 어깨동무를 하며 길가에 나란히 앉습니다.

.. 자동차를 운전하는 어떤 한 개인이 폭력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속도와 석유에 중독된 문명에서 폭력이 자연스럽게 자라난다는 것이다 … 전에 지하철을 탔다가 지하철 한 대가 자동차 2247대를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자동차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법이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은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면서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겨울에 내복 입기 캠페인이나 여름철 냉방온도 높이기, 승용차 요일제 등이다. 솔직히 우습다. 초고층 빌딩 건축을 속속 허가하고, 전국에 골프장을 건설하고, 4대강 정비한다는 핑계로 운하나 파면서 무슨 에너지 절약이고 녹색 운운하는가 ..  (280, 292쪽/조약골)

자전거책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에는 프랑스 박물관 이야기가 살짝 나오는데, 우리가 프랑스에 있는 어느 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가려고 한다면, 그곳에 있는 그림 한 점이나 유물 한 점 보려고 갈 수 있으나, 우리가 사는 집부터 프랑스 그곳 그 박물관까지 가는 길에서 만나고 스치고 어울리고 부대끼는 모든 삶자락을 내 가슴으로 느끼려고 하는 데에, 그리고 이렇게 느끼는 가운데 그 그림과 유물 한 점을 받아들이는 데에 깊고 너른 뜻이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여행은 내 삶일 때 비로소 여행입니다. 취미 또한 내 삶일 때 바야흐로 취미입니다. 자전거도 똑같아, 내 삶으로 자전거와 한몸이 될 때에 드디어 자전거입니다.

자전거가 우리를 사로잡는다면, 자전거가 우리를 잡아끈다면, 자전거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면, 자전거로 우리 삶이 아름다워진다면, 바로 '자전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자전거는 바로 '내 삶이기 때문'이며, '자전거가 내 삶으로 녹아들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윤준호 외 지음,
지성사, 2009


#자전거 #자전거책 #책읽기 #자전거 문화 #서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