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니 촌놈 됐다. 왜 우리가 촌놈?

[09-006] 101년 전 낙안향교 유생은 자부심, 현재 학생들은 주눅

등록 2009.07.30 14:16수정 2009.07.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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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향교에서 청소년 예절교실을 하고 있는 모습 101년전 까지 낙안향교는 인근 순천향교와 보성향교와 더불어 남도지방의 핵심 교육기관이었다. 지금, 이곳은 방학중 인근 지역 학생들의 예절교실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학생들의 뒷모습은 자신감이 덜하다 ⓒ 서정일

▲ 낙안향교에서 청소년 예절교실을 하고 있는 모습 101년전 까지 낙안향교는 인근 순천향교와 보성향교와 더불어 남도지방의 핵심 교육기관이었다. 지금, 이곳은 방학중 인근 지역 학생들의 예절교실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학생들의 뒷모습은 자신감이 덜하다 ⓒ 서정일

'낙안읍지'에 따르면 낙안향교는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효종 9년(1658) 낙안 동쪽 용암동에서 현 교촌리로 이건하였으며, 그 후 수차에 걸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대성전, 동ㆍ서재, 명륜당, 내ㆍ외삼문 등이 있다.

 

그런데 낙안향교가 특이한 것은 전국 234곳 향교 중에서 유일하게 시ㆍ군이 다른 순천시(외서면, 낙안면, 별량면) 보성군(벌교읍) 고흥군(동강 일부) 주민들이 유생으로 함께 어울리는 곳이라는 점이다.

 

선조 때부터 다니던 곳이어서 애착을 갖고 있고, 낙안향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로부터 불과 10킬로미터 내외에 있지만, 순천향교와 보성향교는 30킬로미터씩이나 떨어져 있어 다니기가 불편하고 또, 그곳에 가 봐야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낙안군이 폐군된 지 101년이나 됐고, 현재의 낙안향교가 행정구역상 순천시로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ㆍ군이 다른 보성군이나 고흥군 일부 주민들이 계속 다니고 있다는 것은 지역공동체는 인위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순천향교와 보성향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외면하고 낙안향교를 다니는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30일, 종강을 앞두고 있는 낙안향교 여름예절학교를 찾았다. 명륜당에는 인근 초중학교(낙안, 벌교 등)에서 모인 20여 명의 학생들이 지난 21일부터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낙안군 폐군 이전인 10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생들이라고 가정하고, 몇 가지 질문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인근 지역에 가서 낙안향교에서 왔다고 하면 뭐라고 합니까?"

"그냥 낙안향교라고 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부를 때는 뭐라고 부릅니까?"

"낙안향교 유생들이라고 부릅니다."

 

"혹시 촌 향교, 촌 유생들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까?"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시 낙안군과 낙안향교의 위상을 생각하면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던져 당연한 대답을 돌려받은 것이다. 하지만 낙안군이 폐군되고 지역민들이 인근 순천시, 보성군, 고흥군으로 강제로 분리된 지금, 그 질문은 이 지역(옛 낙안군)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는 질문이다.

 

"인근 지역에 가서 00초등학교에서 왔다고 하면 뭐라고 합니까?"

"촌 학교라고 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부를 때는 뭐라고 합니까?"

"촌놈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부릅니까?"

"낙안이 촌이니까 그렇게 부릅니다."

 

"기분은 어떻습니까?"

"촌 이니까 그렇게 부르지만 기분은 안 좋습니다."

 

"여기가 왜 촌입니까?"

"순천시의 변두리잖아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촌놈이 돼 있더라는 말 그대로다. 낙안에 있는 00초등학교를 가정해 보면, 어제까지는 엄연히 전남지역의 내로라하는 낙안군의 군수가 있던 행정 중심지의 중심초등학교였는데, 오늘은 갑자기 인근지역의 변두리 촌 학교로 변해버렸다. 낙안군 폐군이 가져온 날벼락이다.

 

어린 아이들이 같은 또래 학생들에게서 촌학교, 촌놈이라고 놀림 받는 것이 성장하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잠재의식 속에 박혀있을 촌학교와 촌놈이라는 소리. 101년 전, 낙안군 폐군이 일제의 만행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해방 이후에도 그것을 고착화시키고 놀림감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낙안군 폐군 101년, 자부심 많던 낙안향교 유생들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의 몇 대 손자쯤 되는 학생들은 촌학교, 촌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눅 든 채 살아가고 있다. '낙안군 폐군' 이후, 옛 낙안군 지역민들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힘쓰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이 지역 학생들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남겨주었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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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니 촌놈됐다 왜 우리가 촌놈? 101년 전 낙안향교 유생은 자부심, 현재 학생들은 주눅 ⓒ 서정일

▲ 자고나니 촌놈됐다 왜 우리가 촌놈? 101년 전 낙안향교 유생은 자부심, 현재 학생들은 주눅 ⓒ 서정일

덧붙이는 글 | [09-007] 예고: 이렇게 작은 마을이 전국 딸기묘 생산 1위?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2009.07.30 14:1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09-007] 예고: 이렇게 작은 마을이 전국 딸기묘 생산 1위?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낙안군 #남도TV #스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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