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이냐 민속마을이냐... 낙안읍성의 고민

[09-011] 세계문화유산과 민속마을의 기로에 선 낙안읍성

등록 2009.08.05 15:08수정 2009.08.05 15:12
0
원고료로 응원
play

낙안읍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숙제 많아 낙안읍성은 사적지이면서 민속마을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좀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 순천시에서는 낙안읍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해결해야 할 부분은 많아 보인다 ⓒ 서정일


고려말인 650여 년 전, 현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에 있던 낙안군의 치소가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좀 더 안전한 지대를 찾아 현재의 순천시 낙안면으로 이전해 왔다.

그리고 조선 건국 초기인 1397년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흙으로 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낙안성이며 이후 석성으로 개축된 것은 1426년경의 일이다.

낙안읍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가능할까

하지만 낙안군은 101년 전 일제 통감부에 의해 폐군되면서 약 500여 년간 전라도 남동부지역 현 순천시 외서면, 낙안면, 별량면, 보성군 벌교읍, 고흥군 동강면 일대를 관장하던, 지방 행정중심도시였던 낙안군의 치소로서의 낙안읍성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된다.

25년 전인 1984년, 낙안성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식한 당시 승주군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좌·우익 대립과 6·25 동란 속에서 파괴됐으며, 새마을운동 등으로 변화된 환경을 복원해 사적지이면서 민속마을로 낙안읍성을 재탄생시킨다. 일부를 제외하고 훼손되고 파괴되고 변화됐던 80여년의 세월을 다시 돌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후, 지자체가 낙안읍성에 대한 사적지 보존보다 '지자체와 주민소득 증대'를 앞세운 민속마을 조성 정책을 밀고 나가면서 매년 관광객 200만 명이 찾아오는 전라남도 최대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지만 600년의 역사는 왜곡되고 말았다.

순천시는 '낙안읍성'에 대해 "한국 중세 지방계획도시, 지리적 요충지로서 나타났던 행정·상공업 등 성읍취락의 중요성, 판소리와 같은 무형유산의 계승지" 등을 기술해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할 목적으로 7월 31일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 및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유산으로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녀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뜻있는 주민들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낙안읍성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행정과 주민이 심기일전해 사적지로서의 낙안읍성을 가꿔보자는 취지"로 받아들이면서 환영을 표시했다.

"낙안읍성, 잘못하다간 용인민속촌보다 못해진다"

a

낙안읍성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초가집을 구경하고 있다 낙안읍성은 사적지이면서 민속마을이라는 좀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점도 특별한 부분이다. 최근 순천시가 유네스코에 낙안읍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해결할 부분은 많아 보인다 ⓒ 서정일


그러나 다른 주민들은 만약 이대로 간다면 "임의로 조성해 놓은 용인 민속촌보다 못할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역사적 의미는 별개로 하더라도 건물 등의 유산적 가치로만 따져본다면 낙안읍성보다 10년이나 앞서 지난 1974년에 울릉도나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방별 양반 민가가옥, 관아 서낭당 등을 복원한 용인민속촌이 더 보존할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뜨끔한 속내다.

왜냐면, 낙안읍성이 용인민속촌보다 10년이나 늦게 복원됐으며 그나마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육방관아 등은 복원되지 않았고, 복원했다는 민가들도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 길어봐야 25년 전에 새로 만든 것으로 겉모양은 초가집이지만 내부는 모두가 입식부엌에 좌변기가 있는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현대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의 내막을 살펴보면 낙안읍성 안에 있는 60% 정도의 집이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실거주지로서 개인사유라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시 행정당국이 그들의 삶에 깊이 관여해 편의시설까지 제재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인데 문제는 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40% 정도의 집도 대동소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점과 함께 낙안읍성에서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객사건물, 임경업장군비, 석구, 성곽 일부 등임을 상기할 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고 행정당국이나 주민들에게 남겨진 숙제 또한 산더미 같아서 독한 맘 먹지 않으면 쉽지 않아 보인다.

"현 상태에서 낙안읍성이 민속마을이라면 세계에서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하지만 만약 세계문화유산이라면 이보다 더 최악은 없다. 적어도 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15동의 전시가옥과 9동의 보존가옥만이라도 옛 모습을 되찾은 후에 얘기를 섞어야 한다"는 주민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세계문화유산을 선택할 것인지 민속마을을 선택할 것인지는 오로지 행정당국과 주민들의 의지와 뜻에 달려 있다. 또한, 세계문화유산 등록 신청이 늦은 것인지 그나마 빠른 것인지에 대한 평가도 지금은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이 문제는 역사에 맡길 수밖에 없을 만큼 복잡해 보인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 분산, 침략거점 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12] 낙안군 폐군? 벌교는 나쁜것만은 아니었다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예고: [09-012] 낙안군 폐군? 벌교는 나쁜것만은 아니었다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낙안군 #남도TV #스쿠터 #낙안읍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군산 갯벌에서 '국외 반출 금지' 식물 발견... 탄성이 나왔다
  2. 2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3. 3 광주 찾는 합천 사람들 "전두환 공원, 국민이 거부권 행사해달라"
  4. 4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5. 5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