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동쪽 하늘을 보며 울었다는 단종비 정순왕후

걸으면서 느끼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 ③

등록 2009.08.10 15:47수정 2009.08.10 15:47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6월 친구들이랑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종로 중구 걷기 모임>을 만든 후, 8월 모임은 숭인동, 낙산공원, 이화동을 거쳐 대학로를 둘러보는 것으로 정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기기운이 약간 도는(?) 초등학생인 아들 연우를 데리고 9일(일) 오전 9시 30분, 지하철 1호선 동묘역 10번 출구 앞으로 갔다.   

 

너무 더운 날씨 때문인지 예정된 시간이 되어 겨우 7명이 집결했다. 많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운동 삼아 산책을 하는 코스라 큰 부담은 없어 7명이라도 모인 것 같다.

                 

a

동망정 숭인공원에 위치한 동망정 ⓒ 김수종

▲ 동망정 숭인공원에 위치한 동망정 ⓒ 김수종

 

일행이 먼저 오른 곳은 숭인공원(崇仁公園)의 동망정(東望亭)이다. 조선의 6대 왕이었던 단종을 그리며 60년 넘게 홀로 지내다 생을 마친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가 인근 동망산(東望山) 동망봉(東望峰)에 눈비와 상관없이 조석으로 올라 강원도 영월 쪽을 바라보며 남편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동망정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지만, 정순왕후의 뜻을 기리기에 충분한 곳이다. 동망정에 올라 동서남북을 바라보니 너무 맑은 날씨라 남산, 북악산, 청량리, 동대문 주변이 훤히 보인다. 전망이 최고다.

           

a

동망봉 동망공원에 위치한 동망봉 표지석 ⓒ 김수종

▲ 동망봉 동망공원에 위치한 동망봉 표지석 ⓒ 김수종

 

정자에서 내려와 동망공원(東望公園)으로 이동한다. 동망봉과 표지석이 있는 곳이다. 지난 2008년부터 4월에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문화제'가 종로구청 주관으로 열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망봉과 함께 인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강원 영월군 청령포 등지에서 '단종제'와 함께 열리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여고생을 대상으로 한 정순왕후 선발대회가 진행되며, 행사의 마지막은 영월 청령포에서 단종과 정순왕후의 상봉행사가 열려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a

청룡사 단종비가 살던 절 ⓒ 김수종

▲ 청룡사 단종비가 살던 절 ⓒ 김수종

 

동망봉을 둘러본 다음, 일행은 단종비 송씨가 세 시녀와 함께 여생을 보낸 작은 암자인 정업원(淨業院)이 있던 숭인동의 청룡사(靑龍寺)로 향했다.

 

청룡사에는 귀양길에 나선 단종과 왕비가 마지막 밤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우화루(雨花樓)가 있다. '꽃이 비처럼 흩날리듯 쏟아졌다'는 뜻의 우화루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원히 이별한 장소라는 의미로 '영리정(永離亭)'으로 불렸다. 이후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는 뜻의 '영미정(永美亭)'으로 불리기도 했다.

         

a

청룡사 옛절의 지붕 기와, 고풍스럽다 ⓒ 김수종

▲ 청룡사 옛절의 지붕 기와, 고풍스럽다 ⓒ 김수종

 

청룡사는 생각보다 아주 작은 비구니 사찰이었다. 원래의 더 큰 규모였을 것 같은데, 일제 침탈기를 거치면서 인근에 주택 등이 들어서면서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구인지 문화재를 깔아먹는 솜씨가 대단하다.   

 

청룡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명으로 창건되어 비구니 혜원을 주석하게 하였다. 1456년(조선 세조 2) 단종이 죽은 후, 단종비 송씨가 이 절에 머무르며 날마다 동망봉에 올라 단종이 죽은 영월 쪽을 바라보며 울었다고 전해진다.

          

a

비석 정업원구기 - 단종비를 기리를 비석 ⓒ 김수종

▲ 비석 정업원구기 - 단종비를 기리를 비석 ⓒ 김수종

 

1771년(영조 47)에 영조가 절 내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을 세우고, 동망봉이라는 친필 표석을 세워 단종을 애도하였는데, 이때부터 절 이름을 정업원이라 불렀다.

 

1823년(순조 23)에는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병세가 깊어지자 부원군인 김조순(金祖淳)이 이 절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왕후의 병이 나은 뒤 김조순이 절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내 외부를 대대적으로 공사하는 중이라 어수선한 경내를 둘러본 다음, 정업원구기를 둘러보고 나왔다. 너무 더워 인근 슈퍼에 들러 연우랑 함께 음료수를 한잔 마시고, 연우에게는 과자를 사주었다. 나도 힘든데 연우는 짜증이 보통 아니다.

                

a

원각사 표지 단종을 모시는 절 원각사 ⓒ 김수종

▲ 원각사 표지 단종을 모시는 절 원각사 ⓒ 김수종

 

청룡사를 끼고 돌아 낙산(駱山) 방향으로 이동을 하려는데, 채 1분을 못가서 '단종대왕천도도량 원각사'라는 표지판이 보여 원각사로 들어갔다. 쌍용아파트 뒤편에 위치한 조그만 절로 크게 볼품은 없었지만, 단종과 정순왕후를 추모하는 절이 이웃하고 있어 보기에 좋았다.

                

a

원각사 단종을 모시는 절, 원각사 ⓒ 김수종

▲ 원각사 단종을 모시는 절, 원각사 ⓒ 김수종

 

절 우측에 조그만 초가집이 있기에 그냥 스쳐 지나려 하였지만, 궁금하여 잠시 내려갔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이며 조선에 서학을 도입한 이수광(李睟光) 선생의 '우산각(雨傘閣)' 혹은 '비우당(庇雨堂)'이라고 불리던 사저다.

이곳에서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 원래 이집은 조선 초기 청백리로 소문난 유관(柳寬) 선생이 돌담은커녕 나무 울타리도 없고 대문도 없이 지내던 초가삼간이었다.

              

a

이수광 집 이수광 선생이 지봉유설을 집필한 초가 비우당 ⓒ 김수종

▲ 이수광 집 이수광 선생이 지봉유설을 집필한 초가 비우당 ⓒ 김수종

 

먼 훗날 외조부로부터 이 집을 물려받아 살았던 이수광 선생도 우산을 펴 근근이 비를 가렸다는 뜻으로 '비우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청빈함을 기려 '우산각'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청빈했던 조선 선비의 기질과 정신을 배우고 느끼면서 일행은 낙산으로 향했다. 낙산은 한양을 이루는 4개의 산 가운데 서쪽의 인왕산(仁旺山)에 대치하는 산으로, 산 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 불리게 된 야산이다.

              

난개발이 계속되다가 2000년 이후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아파트가 철거되고 자연환경과 역사적 문화재 등을 복원하여 자연탐방을 통해 역사와 문화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하였다.

           

a

낙산 낙산의 서울성곽 ⓒ 김수종

▲ 낙산 낙산의 서울성곽 ⓒ 김수종

 

서울성곽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인 이화장(梨花莊), 단종비 정순왕후가 저고리 깃, 댕기 등에 자줏빛 물을 들이기 위해 사용했다는 자지동천(紫芝洞泉), 우물이 나란히 5개가 있어 이름 붙여진 오형제 우물터, 오부학당 가운데 하나인 동부학당 터 등의 유물과 유적들이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

               

a

성곽 서울성곽 사이로 본 창신동 ⓒ 김수종

▲ 성곽 서울성곽 사이로 본 창신동 ⓒ 김수종

 

성곽을 따라 낙산공원을 크게 한번 둘러 본 후, 이화동 벽화거리로 향했다. 지난 2006년 문화관광부 산하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주도해 70여명의 작가가 벽화와 설치작업으로 가꾸어 놓은 곳이다.

            

a

이화동 이화동 벽화거리 ⓒ 김수종

▲ 이화동 이화동 벽화거리 ⓒ 김수종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 바로 옆에 있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인데 거리벽화작품이 들어선 뒤부터는 사진작가들에게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나도 2년 전에 한번 온 적이 있는 곳이다.

#종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5. 5 채상병·김건희 침묵 윤석열... 국힘 "야당이 다시 얘기 안 해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