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안내판, 신전마을엔 살아있어요

[09-020] 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여순사건 안내판이라도 지켜야지...

등록 2009.08.12 19:16수정 2009.08.1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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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앞 여순사건 안내판 ⓒ 서정일

▲ 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앞 여순사건 안내판 ⓒ 서정일

김태희 기자가 쓴 '그들이 일본 교과서 왜곡 비판 자격 있나'라는 8월 12일자 기사를 여는 순간 필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순천역과 함께 여순사건 안내판 사진이 연달아 나오더니 "보수단체의 문제제기로 인해 2009년 3월 철거되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급하게 컴퓨터를 끄고 곧바로 자동차로 산길을 달렸다. 안개가 심하고 비도 오는 날씨였지만 머릿속은 온통 "순천역 여순사건 안내판이 없어졌다면 그곳에 있던 안내판도?"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재를 넘어 20여분을 달려 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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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앞 여순사건 안내판 (2009년 8월 12일 촬영) ⓒ 서정일

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앞 여순사건 안내판 (2009년 8월 12일 촬영) ⓒ 서정일

참 살면서 안내판 보고 이렇게 기뻐하기는 처음이었다. 그곳의 안내판은 살아있었다. 만약 없어졌다면 철거해버린데 대한 분개도 분개지만 사라져 버린 옛날 순천역 여순사건 안내판을 자료삼아 교육을 하겠다고 나설 동료기자(김태희 기자)가 불쌍하게 생각됐기 때문이다. 순천 쪽은, 더구나 낙안하면 내 구역(?)인데……. 아무튼 원본 사진은 메일을 통해서라도 김 기자에게 보내 줄 생각이다.

 

낙안면 신전마을에 대한 사연을 간략히 열어본다면, 1948년, 총상 입은 아이(당시 빨치산)를 마을 주민들이 돌봐줬다는 이유로 '빨갱이 마을'이라면서 진압군이 32가구에 불을 지르고 22명을 총살한 사건이다.

 

부역자로 구분된 사람들을 한 집안에 몰아넣은 후, 집 밖에서 총을 난사하고 집을 불태워 환자, 노인 등을 포함해 모두 22명이 희생됐다. 이 중에는 4세 이하 어린이가 3명이나 포함돼 당시 얼마나 무자비하게 학살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난해, 필자는 이 마을 주민인 장홍석(64)씨를 만나 "한날한시에 온 마을 전체가 제사를 지내는 황당한 마을이 이 마을"이라며 울분을 터트리는 모습을 지켜봤었다. 장씨 또한 당시 어머니를 잃고 서럽게 자랐기 때문에 그의 분노와 설움이 충분히 전해져왔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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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앞 여순사건 안내판 (2009년 8월 12일 촬영) ⓒ 서정일

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앞 여순사건 안내판 (2009년 8월 12일 촬영) ⓒ 서정일

당시 필자에게 증언해 준 장씨의 말을 요약해 보면, 1948년, 여순사건의 회오리 속에서 총상을 당한 14살 꼬마가 빨치산 무리들의 손에 이끌려 야밤에 신전마을에 들어왔고 빨치산들은 다짜고짜 이장을 찾아 아이를 맡기면서 잘 보살펴 주지 않으면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그 꼬마가 경찰서에 잡혀갔고 진압군은 그 꼬마 아이를 앞세우고 신전마을에 찾아왔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을 모두 한곳에 모은 후 빨치산에게 협조한 사람들을 골라내기 시작했고 치료해준 사람, 밥해준 사람, 옷을 세탁해 준 사람, 심지어 말 한마디 다정스럽게 해 줬던 모든 사람들을 지목해 마을 주민 22명을 총살하고 말았다. 그때가 추석 바로 다음날인 음력 8월 16일이었다.

 

장씨가 분개하고 서러워하는 것은 '사상이 뭔지도 모르고 죽지 않기 위해서 또 어린 꼬마가 총상을 입어서 도와준 것 뿐인데 날벼락 같이 온 마을 주민들을 몰살시켰다'는 것에 있다. 이렇게 해서 낙안면 신전마을은 한날한시가 제삿날이 되었고 추석도 없어진 마을이 됐다는 것이다.

 

김 기자 노력에 깜짝 놀라 부랴부랴 다녀 온 신전마을에서 2009년 8월 12일 찍은 생생한여순사건 신전마을 안내판 사진을 저작권 주장 없이 동료기자인 김태희 기자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보낸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 분산, 침략거점 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21] 로또산이라는 금전산, 얼마나 효력있나?
남도TV

2009.08.12 19:1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예고: [09-021] 로또산이라는 금전산, 얼마나 효력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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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군 #남도TV #낙안면 #신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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