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락 성장소설] 하늘을 나는 돛단배 - 13회

들물이 있으니 날물도 있다(1)

등록 2009.08.19 09:32수정 2009.08.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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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굣길, 교문을 나서 굴전리 쪽으로 20여 분을 걷다보면 오른편 언덕 아래로 바다가 펼쳐진다. 여남은 명의 같은 학년 남자아이들이 무리지어 집으로 향하다가 외팽나무 고목이 서 있는 지점쯤에 이르자 우리는 저마다 하늘을 한 번 보고, 바다를 보고,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하늘을 쳐다본 것은 오늘 날씨가 멱을 감아도 될 만한지를 살피는 것이고 바다를 바라본 것은 파도가 너무 세지 않은지를,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것은 다른 동무들 생각은 어떤지를 타진하는 눈짓이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부러서 조깐 춥겄는디. 노부리(파도)도 솔찬히 쳐쌓고…."
"맞어. 6학년 성들도 기냥 갔응께 오늘은 우리도…."


오늘은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다는 분석에 따라서 다들 주춤거리고 있는데 선철이가 묵묵히 책보를 벗어서 오른 손에 들었다. 선철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삼사 년 늦게 입학을 한 데다 여느 아이들보다는 머리통 하나 만큼이나 키가 더 컸기 때문에 적어도 완력으로는 그를 거역할 아이가 없었다. 다음 순간 선철이가 자신의 책보를 집어던졌다. 내던져진 책보는 공중에서 두어 바퀴 재주를 넘은 다음에 이십여 미터 아래 갯돌밭 바닥에 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를 따르라'는 선동이었다. 아이들은 그의 선동에 반기를 들 엄두를 내지 못 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아무리 막강한 완력을 가진 선철이라 할지라도 학급에서 공부를 잘 하는 축에 드는 아이에게만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선철이가 만일 공부까지 잘 해버렸더라면 우리 모두는 그의 거칠 것 없는 독재에 오랫동안 시달렸을 것이다.

"나도."
"좋아, 나도!"

아이들이 모두 책보를 던졌다. 이어서 공중으로 솟구쳤던 책보들이 갯돌 밭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보나마나 그 충격으로 필통 속에 든 연필들은 토막토막 심이 부러져서 못 쓰게 될 것이 뻔했지만 그렇다고 얌전하게 책보를 허리에 두르거나 어깨에 맨 채로 언덕길을 내려가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나사못 같이 생긴 언덕길을 순식간에 감아 내렸다.

위아래 한 조각씩 걸친 옷을 벗어서 자기 책보로 눌러놓은 우리는 꾸부정한 자세로 주춤주춤 물가로 내려갔다. 날씨가 잔뜩 흐렸기 때문에 으스스 몸이 떨렸다. 아이들이 주춤대는 모습을 또 보고만 있을 선철이가 아니었다. 이번에 선철이 내민 것은 완력이 아니라 당근이었다.


"잘 들어. 몬침 들어간 놈 다섯 멩은 낼모레 우리 어막에 데꼬 가서 꼬록 멕여 줄 것이여. 시이작!"

아이들이 쏜살같이 질주해서는 바닷물로 첨벙, 빠져 들었다. 선철이 아버지는 멸치어장 주인이었다. 갯돌 밭에 그물을 펴고 삶은 멸치를 널어 건조하였는데 꼬록(꼴뚜기)이 섞여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꼴뚜기를 일일이 골라내고 종이포대에 넣어야 멸치가 제대로 된 상품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선철이 아버지가 꾀를 내었다.


"선철아, 느그 동무들 중에서 펭소에 밥을 많이 묵는 놈 다섯 멩만 데꼬 온나."

그렇게 해서 평소에 늘 허기져 보이던 아이들 다섯을 데려다 멸치 건조장에 풀어놓았다. 소금물에 데친 꼴뚜기를 다들 얼마나 많이 주워 먹었던지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 나타난 아이들은 한 결 같이 얼굴이 해쓱하였다. 밤새도록 설사를 해댄 탓이었다. 어쨌거나 떫은 맹감을 사카린에 버무려서 허기를 달래던 아이들에게, 삶은 꼴뚜기를 양껏 먹을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더 할 나위 없는 횡재였다. 말하자면 그 때 우리가 보기에 선철이는 권력과 부를 함께 거머쥔, 그래서 거역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장이었다.

그러나 선철이는 우리가 헤엄치는 일에까지 간섭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들을 모두 물에 들어가게 해놓고서 스스로는 한 서른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외따로 멱을 감았다.

"헤엄을 못 칭께 챙피해서 그란 것 아니까?"
"선철이 시방 헤엄치고 있는디?"
"두 손으로 몰래 땅바닥을 짚으고, 마치 헤엄칠 줄 안 데키 발로 물장구를 치는 것 아녀?"
"빙신들, 그거이 아니고…."
"그라먼 뭣인디?"
"가랭이 새다구에 있는 그 거시기 안 있냐."
"거시기가 뭣이여?"
"앗다, 그거 안 있다고. 고추."
"고추가 어째서?"
"선철이는 고추가 징하게 크고 또 머리에 있는 시커먼 털이, 잘 못 돼 갖고 가랑이 새다구에도 나부렀응께, 챙피해서 우리랑 같이 멱을 안 감는 것이여."

희용이가 제법 진지하게 아는 체를 했으므로 우리는 긴가 민가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편을 갈라서 물싸움을 하기도 하고, 물속으로 잠수하여 누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내기도 하였으며, 빨간빛이 나는 돌을 바다 속 깊은 데다 내던지고서 자맥질을 하여 찾아오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집채 같이 밀려오는 커다란 물굽이를 향하여 헤엄치다가 허옇게 부서지기 직전에 굼실, 타고 넘는 그 맛은 짜릿하고도 통쾌하였다. 물론 딴전을 피우다가 턱밑에서 찰박거리는 물결이 입안으로 왈칵 달려드는 바람에 얼결에 짠물을 꿀꺽 들이켜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짭조름한 그 맛이 크게 싫지는 않았다.

우리는 바닷물에 멱을 감으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아무리 호기를 부리고 싶더라도 바다 쪽을 향해 대책 없이 멀리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바닷가 아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이었다. 별스런 '대책' 있다면 사정은 달랐다. 우리는 더러 정박해 놓은 배에 올라가서 널장(노 젓는 배의 밑바닥에 까는 나무 판대기)을 하나씩 떼어다가, 고놈을 두 손으로 짚고서 꽤 오랫동안 상당히 멀리까지 헤엄쳐 갔다 돌아와서 제자리에 갖다놓곤 했는데, 나무판자의 부력에 의지할 수 있어 가라앉을 염려가 없으니 한결 안정적인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아이들과 내기를 하다보면 붉은색 돌멩이를 상당히 깊은 곳에 던져놓고 꺼내 와야 할 경우가 있었다. 양발을 돛대처럼 허공에 세웠다가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자 숨은 자꾸 차오르는데 바닥에 붉은 목표물이 보였다. 무리해서 고놈을 손에 쥐긴 했는데 아무리 위로 솟구쳐 올라도 수면은 까마득하였다. 이러다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물을 한 바가지나 먹은 채 수면위로 나와 보니 여지없이 코피가 터져버렸다. 그러니까 멱을 감으면서 무엇인가를 배웠다 했는데 누가 가르쳐줘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기실은 온갖 영금을 당하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우리는 싫증이 나고 배도 고팠으므로 이만하면 됐다싶게 첨벙거리다가 밖으로 나와 갯돌위에 엎드렸다. 마주보고 엎드린 종석이 얼굴이 추위 때문인지 파랗게 질려 있었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내 모습이 바로 그러할 것이었다. 그 때쯤 아침에 학교에 갈 때 했던 어머니의 당부가 떠올랐다.

"학교 파하먼 또 뭔 놈의 멱 감는다 뭣 한다 해찰피지 말고 집으로 피잉 와야 쓴대이."

우리는 바닷물을 씻어내기 위해 민물이 우러나는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민물에 몸을 헹구지 않으면 얼굴이며 목덜미에 허연 소금 앙금이 서걱거려 흉할 뿐 아니라, 그 소금기가 땀에 젖어 눈으로 흘러들라치면 여간 따갑지가 않았다. 쫄쫄쫄 조금씩 흐르는 민물을 두 손바닥으로 떠서 세수를 하고 가슴에 끼얹었다. 등 쪽은 씻어내기가 어려웠으므로 우리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서로의 등에 민물을 끼얹어 주었다.

"헤엄치다가 짠물을 마세부렀듬만 목이 타서 죽겄어야. 나, 쩌 욱에 올라가서 물 조깐 마시고 오께 이."

목이 말랐으므로 나는 민물이 솟아나오는 맨 위 쪽으로 올라갔다. 옴팍하게 패인 언덕 안쪽에 장독 뚜껑만큼 자그맣게 웅덩이가 있었고, 벽에서 우러난 물이 그 웅덩이 쪽으로 쫄쫄쫄 흘러들고 있었다. 누군가, 물 마시러 온 사람이 무릎을 고일 수 있도록 납작한 호박돌 둘을 양쪽에 심어 놓았다. 나는 두 무릎을 양쪽 돌팍에 나눠 디디고서, 무성하게 얽혀 있는 푸나무들을 옆으로 젖혔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웅덩이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켜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으악! 저, 저건…'
웅덩이의 물을 마시기 위해 두 무릎을 단단히 딛고 고개를 숙이려다 말고 얼핏 눈을 들었던 나는, 물이 우러나는 그 구멍으로부터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두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뱀!'

머리가 세모꼴로 생긴, 잿빛을 띤, 영락없는 독사였다. 녀석이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몸을 떨 수도 없었다. 난 얼음처럼 얼어붙은 채로 그 독사와 눈싸움을 했다. 순간적으로 뒷걸음을 쳐서 물러날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모르긴 해도 녀석은 내가 뒤로 몸을 빼는 순간에 독이 든 이빨로 나를 공격해 올 것만 같았다.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이웃 마을인 서성리의 춘삼이 아제네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무섭게 생긴 개 한마리가 있었다. 송아지만한 녀석이 사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더니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대었다. 혼비백산하여 아버지 가랑이를 붙잡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선호야, 너는 사람이여. 사람은 영물이여. 그라고 저놈은 짐상이랑께. 너가 뒤 돌아서 도망을 치면 저놈이 너를 시뻐보고 가랑이를 물을 것이여. 그란디 그 자리에 딱 버티고 서서 두 눈을 부릅뜨고 눈쌈을 한 번 해봐. 사람 눈은 겁나게 무서웅께 짐상들이 함부로 못 달라든당께 그래. 자, 두 눈 부릅뜨고 노려봐!"

나는 눈자위에 쥐가 날 만큼 두 눈을 부릅뜬 채로 그 개를 노려보았고 아니나 다를까 금세 달려들 듯 하던 녀석은 실없이 컹컹대기만 할 뿐 더 이상 공격을 해올 엄두를 내지는 못 하였다. 그 사이에 춘삼이 아제가 와서 개를 쫓아버렸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뱀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혀를 날름거리기만 할 뿐 감히 공격을 해오지는 못 했다. 그런데 문제는 뱀을 야단쳐서 쫓아버릴 춘삼이 아제 같은 사람이 그 웅덩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벌써 돌팍 위에 놓인 양쪽 무릎이 아리고 저려오기 시작했다. 뱀의 혀 놀림이 더 빨라진 듯했다. 나는 그때서야 뱀이 아무런 의미 없이 혀를 그렇게 바삐 움직거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나에게 무언인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잘 못 했습니다. 이것저것 다 잘 못 했습니다. 한 번 만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무조건 잘 못 했다고 빌었다. 어린 동생 선유가 칭얼댄다고 어머니 몰래 허벅지를 꼬집어버렸던 일, 남의 밭 고구마를 몰래 캐먹었던 일, 음악 실기시험에서 '몇 리나 되나'를 '얼마나 되나'로 고쳐 부르지 않았다고 점수를 깎아버린 선생님에 대해서 '오늘 밤 칙간에 갔다가 발을 잘 못 디뎌서 똥통에 퐁당 빠져부러라'하고 맘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던 일, 아 그리고 무엇보다 이슬비 오던 날 등굣길에 길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꽃뱀을 피해서 갈 수도 있었는데 동무들하고 돌멩이 세례를 퍼부어 다치게 했던 일, 학교에서 훔친 붉은 분필로 동네 담벼락에다 '진수 즈그 성님하고 희갑이 즈그 누님하고 연애 걸었다네'라고 몰래 써놓고 도망쳤던 일…나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 독사 앞에서 마음속으로 길디긴 반성문을 썼다.

"선호야! 물 마시러 간 놈이 어디서 뭣을 하고 있는 것이여?"
종석이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무어라고 큰 소리를 내었다간 독사가 놀라서 달려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야, 이선호! 너 거그서 시방 뭣을 하니라고…어어? 하하하하…."

종석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나 하고 있는 모양새가 우습기도 할 것이었다. 발가벗은 알몸으로 무릎을 꿇은 채, 똥구멍은 치켜들어서 저기 멀리 수평선쯤을 겨냥하고 있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았다면 아니 웃고 배길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한참을 웃어젖힌 종석이가 내 엉덩짝을 철석 때렸다. 그러나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어? 웅덩이 넘에 뭣이 있다고 그렇게 뚫어지게…."

종석이는 내가 하고 있는 자세를 흉내 내며 웅덩이 안쪽을 바라보았다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독사를 발견하고는,
"배, 배, 뱀이다. 도, 도, 독사…"
낮게 중얼거렸다. 종석이는 온몸을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천천히 뒷걸음 쳐서 일단 몸을 뺀 다음 후다닥 도망쳤다. 후회막급이었다. 종석이 녀석이 얼굴을 내 얼굴 옆에 들이대고 독사를 향했을 때 내가 슬그머니 몸을 빼고 도망을 쳐버렸다면, 반성문 쓰는 일을 녀석에게 인계하고서 나는 해방될 수 있었는데….

종석이로부터 내가 처한 상황을 보고 받은 아이들은 나름대로 나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의논하였는데 묘안이 백출하였다.
"큰 마을 지서에 가서 순겡을 데꼬 오자. 뱀 대가리를 총으로 쏴불면 안 되까?"
"뱀은 개구락지를 좋아항께 고놈을 한 마리 잡어다가 휙 땡게 주고 선호를 거그서 끄집어 내면 되겄다."

그러나 결국 나를 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나이가 많은 선철이였다. 선철이는 갯돌 밭에 벗어둔 내 러닝셔츠를 들고 웅덩이 쪽으로 다가오더니 셔츠를 내 얼굴 앞에 슬그머니 내려서 뱀과 나의 시선을 차단한 다음, 내 목덜미를 뒤쪽으로 낚아챘다. 그 바람에 나는 뒤로 나자빠졌다가 갯돌 밭으로 달려 내려왔다. 마치 마술사가 휘장을 친 다음 그 안에 있던 사람을 감쪽같이 없어지게 만드는 것과 같은 기막힌 솜씨였다.

"와아, 진짜 수리수리 마하수리다."
아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잖아도 우리들 세계에서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고 있던 터였는데 독사 앞에서 그렇듯 신통력까지 선보였으니 이제 선철이는, 그 마을 어른들이 무엇인가 소원을 빌 때 찾곤 하는 지왕님이나 용왕님 버금가는 존재가 돼가고 있었다.

"그랑께, 난냉구로 선호 얼굴을 딱 개렜다가 선호가 도망 나온 뒤에 도로 갖고 왔는디 그 독사가 꼼짝 안하고 그대로 있었다고?"
"난냉구를 물어뜯었을 것 같은디 암시랑토 안한 거이 이상하당께."

다시 언덕길을 올라 집으로 향하면서, 아이들은 선철이가 무슨 무용담이라도 몇 마디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한참만에 선철이가 입을 열었다.

"난냉구를 눈앞에다가 딱 봬 줬을 때 독사가 어째서 꼼짝 못 한 중 알어?"
"왜 그랬는디?"
"옷을 안 뽈아 입고 댕게서, 던적스런 때꼽자기에다 땀 냄새가 징하게 낭께 독사가 기절을 해뿐 것이여."
"하하하하…."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나 내가 입던 러닝셔츠에서 '독사를 기절시킬 만큼 독한 냄새가 났다'는 선철이의 발언에 대해서 내 의견을 말하자면 심히 억울하다. 비록 깔끔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 시절 그 섬마을의 평균적인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딱 그만큼의 청결의식은 나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일이 있고난 뒤 한참 동안은 꿈을 꿀 때마다 문제의 독사를 만나곤 하였다. 아니, 사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등산 중에 그 비슷한 물웅덩이를 만나면, 그 때 나를 노려보며 혀를 날름거리던 녀석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올라 부르르 소름을 떨곤 한다.
#섬마을 #하교길 #미역감기 #물웅덩이 #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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