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민주주의 횃불 밝힌 임이 가셨습니다

[추모시]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전에 올립니다

등록 2009.08.21 09:35수정 2009.08.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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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분향소 영정 사진 ⓒ 이승철


임이 가셨습니다.
임이 가셨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인동초의 삶을 살아오신 임
불의와 독재에 맞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온몸을 던져 싸우셨던 임
이 땅에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 횃불 밝히시고 임이 가셨습니다.

민주개혁정치로 같은 길을 가던 동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눈물로 먼저 보내고
내 몸의 반쪽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던 임
후퇴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안타까워하시던 임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임은 가셨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다가
추방당하여 머나먼 이국땅으로 기약 없이 떠나던 날
반드시 돌아오리라, 새벽처럼 돌아오리라
다시 돌아와 자유의 종을 치리라며 떠나셨다가
당당하게 돌아와 정의의 종소리를 크게 울렸던 임이 가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당신을
좌빨이라, 빨갱이라 매도하던 자들에게도 관대하셨고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람들까지 용서하고 포용하여
정치보복을 청산하고 참된 정치인, 참된 신앙인의 본을 보였던 임
미움도 없고 이념도 색깔론도 없는 하늘나라로 임은 가셨습니다.

외환위기로 이 나라가 국가부도사태를 맞았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여 망해가는 국가를 구원하셨던 임
햇볕은 따뜻하여 감싸기도 하지만 음지의 약한 균을 죽이기도 한다며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끌어안고 동포애를 발휘했던 임
넓고 따뜻한 가슴으로 민족통합을 이끌었던 임이 가셨습니다.

반세기 동안 이념의 장벽으로 얼어붙었던 땅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질시와 반목으로 들끓던 땅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에 휩싸여 있던 이 땅에
동고동락의 기나긴 오랜 역사와 동족의 더운 피를 서로 확인하며
막혔던 평화의 강줄기 물꼬를 터뜨려 흐르게 하였던 임이 가셨습니다.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적대적 경쟁은 고립된 투쟁이며 스스로와 남을 파멸시키고
형제적 경쟁은 협력하는 관계이며 스스로와 상대를 성장시킨다.
불의에 맞서는 용기는 공포와 나태를 물리치는 최고의 덕이라는
당신의 말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가를


적대집단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중상모략으로 대응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분단된 조국통일을 위해 민족화해와 평화통일방안을 제시한
당신의 미래를 내다본 탁월하고 날카로운 예지와 용기가
이 나라 이 민족을 향한 살신성인의 뜨거운 사랑이었다는 것을

뒷전에 물러 앉아 점잔만 피우지 않고
꼭 필요할 할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나서
이 민족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이정표가 되어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되고 거친 광야에 들불을 피워
가야할 길을 인도하고 손발시린 사람들에게 모닥불이 되어 준 당신

당신을 시점으로 일구어낸, 어떤 사람들이 잃어버렸다는 10년 세월
부도덕한 조상 덕이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기득권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거들먹거리던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쩌면 억울한 10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세월은
이 나라 반만년 역사 이래 최초로 만들어 낸 평등세상을 향한 위대한 세월이었지요.

임은 가셨습니다.
사람이 피울 수 있는 사람다운 향기 가득 피운 임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던 큰 기둥이었던 임
어두운 세상을 찬란하게 비추던 큰 별이었던 임
소외당하는 백성들과 자유평화의 수호자였던 임이 가셨습니다.

임이여, 이제 평안히 가소서
아픔과 눈물이 없고 전쟁과 이념도 없는 평화와 자유만 있는 하늘나라로
그곳에서 앞서간 노무현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소서, 그리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함께 기도하소서. 임들이 꿈꾸던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 나라가 될 수 있도록

-2009년 8월 20일, 46년생 개띠 시인 이승철의 추모시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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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하는 시민들 모습 ⓒ 이승철


시작노트: 이 나라에 민주주의 초석을 쌓고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였으며 민족화해와 남북협력시대를 열었던 대통령, 자신을 탄압하고 죽이려고까지 했던 정적을 용서하고 포용했던 화합과 평화의 대통령,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3일 째인 20일 오후, 서울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추모시민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엄숙한 표정으로 분향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존경과 아쉬움이었습니다. 가혹한 탄압과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운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녀노소와 출신지역을 뛰어넘어 고인을 추모하는 애틋한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나는 충청도 출신이지만 대학시절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습니다. 그렇게 인격적이고 훌륭한 대통령 또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추모행렬 뒷줄에 서있던 50대 후반의 신사는 더 오래 사셔야 할 분이 돌아가셔서 몹시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작고 노란 종이쪽지에 "김대중 대통령 할아버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적어 쪽지 판에 붙이는 귀여운 어린이의 표정도 깜찍했지요. 이 땅의 민초들에게 존경심과 사랑을 남기고 영면의 길을 떠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전에 애도와 경의를 담아 이 추모시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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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이어지는 분향행렬 ⓒ 이승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민주주의 횃불 #46년생 개띠 시인 이승철 #추모시 #서울광장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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