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낡은 양말엔 고무밴드가 없다...왜?

유품 30여 점 공개, "휴지도 둘로 잘라쓰던 대통령"

등록 2009.08.22 12:26수정 2009.08.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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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유품이 언론에 공개됐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영결식을 하루 앞둔 22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남긴 유품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날 오전 DJ 비서관들이 공개한 유품은 평소 입던 양복과 셔츠, 잠옷, 지팡이, 돋보기, 붓과 벼루, 낙관, 대통령 연설문 수정원고 등 30여 점이다.

DJ가 남긴 유품은 평소 고인의 소박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낡은 회색 여름양복과 붉은색 계통의 셔츠, 넥타이(2점)는 오래 전 유행했던 디자인이다. 외출 때 짚던 손때 묻은 지팡이도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다. 안경과 안경집, 낡은 돋보기는 반질반질하게 잘 손질돼 있어 고인의 꼼꼼한 성품을 보여줬다.

한쪽에 작은 갈색 깃털이 달린 회색 중절모는 평소 부인 이희호씨와 함께 여행 다닐 때 쓰고 다닌 그 모자다. 작년 가을 경기도 구리시에서 열린 코스모스축제에서 부인 이씨와 찍은 '마지막 사진'에서도 DJ는 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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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한 중절모.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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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침실에서 등받이로 사용했던 방석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씨가 꽃밭을 가꾸는 다정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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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즐겨쓰던 낙관엔 '행동하는 양심' 문구가

서예애호가였던 김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붓과 벼루도 공개됐다. '필묵함(筆墨函)'이라고 쓰인 나무상자에 담긴 붓과 벼루 역시 깨끗하게 손질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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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한 유품 중 인장과 낙관.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옥으로 만든 낙관 4점도 함께 공개됐다. 낙관에는 각각 '후광'(DJ의 호), '김대중인', '만방일가'(세계는 하나의 가족)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낙관 중 하나에 새겨진 문구다.


다른 낙관에 비해 길쭉하게 생긴 이 낙관에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글귀가 담겨 있었다. DJ가 올해 6월 마지막 공개 연설에서 강조한 '행동하는 양심'이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지표였다는 점을 잘 나타내는 대목이다.   

오래된 유품인 만큼 갖가지 사연도 담겨 있었다. 여름마다 DJ가 사용하던 붉은색 손부채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 4장 13절)라는 성경 구절이 붓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 글씨는 부인 이씨가 남편을 위해 직접 쓴 것이다. 부채 한편에는 '이희호 씀'이라는 표시가 뚜렷하게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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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부채.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부채 하나에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DJ 부부의 신앙심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가 즐겨읽던 가죽양장본 성경도 부채 옆에 함께 놓였다.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들고 다니던 검은색 가방은 지난 2004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퍼그워시 컨퍼런스' 기념품이다.

퍼그워시 컨퍼런스는 핵무기 발명자인 아인슈타인과 반전사상가였던 버트란트 러셀이 주도해 지난 1957년 캐나다 퍼그워시에서 열린 국제회의로 '반전'과 '핵실험 중지' 등을 주요 기치로 내세우는 모임이다. 전세계 각국의 주요한 과학자들이 참가하고 있는 퍼그워시 컨퍼런스는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가장 유명한 평화운동으로 지난 199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평생을 반전, 통일, 한반도평화에 바친 DJ가 퍼그워시 컨퍼런스 기념품 가방을 애용했다는 점은 평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교통사고 후유증 다리 붓기 예사... 비서들 양말 고무밴드 빼는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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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한 유품 중 양말로 고무단 부분을 늘려 신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DJ가 신던 양말은 고무밴드가 다 빠져 있어 일반인들은 신을 수조차 없을 정도다. 작은 양말에도 온갖 역경을 헤쳐 온 DJ의 '고난사'가 들어 있다.

DJ가 양말을 사면, 비서들은 항상 양말의 고무밴드를 빼고 전해드린다고 한다. 1971년 대선 유세 당시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친 DJ는 고관절이 나빠 조금만 오래 서있거나, 오래 걸어도 다리가 퉁퉁 붓곤 했다.

이 때문에 비서들은 양말이 다리를 조이지 않게 아예 고무밴드를 빼 버리는 게 일이 됐다.

이날 유품에는 고인의 시계, 노벨상수상 기념 메달, 비비안 상표 잠옷, 만년필, 혁대, 주머니빗, 슬리퍼, 손수건 등 평소 즐겨 사용하던 생활용품이 함께 들어있다.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휴지(티슈) 한 장도 잘라서 두 번 쓸 정도로 근검 절약하는 삶을 사셨다"며 "김 전 대통령의 소박한 삶을 국민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유품을 일반인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DJ측은 국회도서관과 협의해 유품을 유리관에 넣은 뒤 영결식이 끝날 때까지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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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한 유품들.시계,안경 영일 사전,만년필,빗,지갑,돋보기.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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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한 성경.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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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한 구두.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유품 #낙관 #행동하는 양심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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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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