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은 자유입니다"

영결식 전날에도 국회빈소를 찾는 조문행렬... 23일 오전 8시까지 개방

등록 2009.08.22 20:16수정 2009.08.2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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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빈소에서 한 어린이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 모음집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속 사진을 보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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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빈소에서 한 할머니가 헌화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2일 국회 빈소에는 조문객들의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저녁 7시까지만 해도 2만1천여 명의 조문객들이 몰려 국회 앞 마당까지 이어진 줄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태. 한창 조문객들이 몰렸던 낮 12시에서 1시 사이에는 2천여 명이 다녀갔다. 이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 30분 정도 기다려야 조문을 할 수 있었지만 조문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이들은 없었다.

조문하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헌화한 후에 몇 초간의 묵념, 상주들에게 악수나 목례를 한 뒤 퇴장했다. 조문객들이 많은 만큼 60여 명이 함께 단상에 올라섰다.

잠실에서 온 김유정(10)양도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김 전 대통령과 마주할 수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그는 "그래도 짜증나지 않았다"면서 "대통령 할아버지를 사진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고 전했다.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조문을 안내하는 사회자가 21일 공개된 고인의 일기 중 2009년 1월 15일자 내용을 낭독하자 차례를 기다리며 울음을 꾹 참고 있던 한 여성이 끝내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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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을 하루앞둔 22일 저녁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군악대가 연습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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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을 하루앞둔 22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영결식 사회를 맡은 조순용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환경부장관을 지낸 연극인 손숙씨가 영결식 준비를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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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을 하루앞둔 22일 밤 빈소가 마련된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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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을 하루앞둔 22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영결식 준비가 한창이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떠나간 남편이 사랑한 대통령


조문객들도 다양하거니와 그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혼자 오거나 연인과 함께 온 시민들, 온가족을 동반한 가족 단위의 조문객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국화로 둘러싸인 고인의 영정사진을 보며 오열하는 여성, 휠체어를 끌고서라도 고인을 만나기 위해 빈소를 찾은 청년.

"어떤 분이셨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금모으기 운동은 알아요. 엄마가 제 돌반지를 다 가져갔었거든요. 그래도 이제 괜찮아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신 분이잖아요."

사당동에서 가족과 함께 온 최서현(18)양의 말이다. 최양이 이어 "국사 교과서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악수하던 장면을 본 적 있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그의 모친이 "그게 고인의 햇볕정책이다"라고 설명했다.

조문을 끝내고 방명록을 쓰던 성북구에서 온 정인남(70)씨는 한참 동안이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고인은 남편이 굉장히 존경하던 사람"이라면서 "낙선되는 것만 보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떠나가 너무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정씨는 이어 김 전 대통령이 남편만큼이나 사랑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고인을 존경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쓴 방명록을 소개하며 "김 전 대통령만큼이나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이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씨가 쓴 방명록의 일부다.  

"무모하고 이기적인 정치 앞에서 당신이 있어 우린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병든 사람, 외로운 사람에게 희망을 준 당신이여…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눈물을 보냅니다. 이제 당신은 자유입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보면 죄스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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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빈소에서 부인 이희호씨가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여덟 명 정도의 상주는 고인의 유가족과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김 전 대통령의 아들 내외와 정동영 의원, 정세균 민주당 대표, 박선숙 의원, 신건 전 국정원장,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 수많은 정치인들이 조문객들을 맞았다.

이 중 김 전 대통령 후보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상황실 집행의원이었고, 현재는 신건 전 국정원장의 보좌관인 강동규씨는 "고인이 이뤄놓은 업적들이 무너지고,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면서 "너무나 뛰어난 사람 밑에서 일하느라 부족했지만, 앞으로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후퇴한 민주주의를 살릴 것"이라고 전했다. 

강동규 보좌관은 이어 "고인이 '무엇이 되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김 전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도 따라가지 못하는 열정을 가졌고, 강한 것 같지만 자상하고 부드러운 분"이라고 회고했다. 

돌아가는 시민들은 국회 앞 마당에 있는 게시판에 고인을 위한 짧은 메모를 남겨 고인을 추모하거나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대통령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삐뚤삐뚤한 아이들의 글씨부터 어르신들의 눈물 맺힌 사연까지 빽빽하게 붙어 있다. 그 중의 일부다.

"8월 25일 발사하는 나로호 타고 승천하소서."
"2MB 정권의 민주주의 후퇴를 막고 대통령님의 바람대로 약자가 보호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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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과 투옥시절 부인 이희호씨와 주고 받은 '옥중서신' 복사본이 공개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메모가 붙은 게시판 맞은편에는 1924년부터 2009년까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을 수십장의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염창동에서 딸과 함께 온 박광호(39)씨는 "87년 이후 대학생활을 하면서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고인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면서 "잘 모르는 내 딸에게 그 분의 삶을 가르쳐 주고 싶어 둘러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딸이 좋은 모습을 보고 그 분의 가치를 가슴 속에 새기길 바란다"며 옆에 있던 딸의 손을 꼭 잡았다.

국회 앞 잔디광장의 가운데에는 김 전 대통령의 유품이 전시돼 있어 조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부인 이희호씨가 고인이 병상에 있을 때 짠 벙어리장갑과 양말, 김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 녹음기 등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태릉에서 남편과 함께 온 김성진(56)씨는 "깨알 같이 적혀 있는 옥중서신이 가장 인상 깊었다"면서 고단했을 고인의 과거를 안타까워했다. 이어 김씨는 "벙어리장갑도 굉장히 정성스러워 보였다"고 말했다.

국회빈소 자원봉사자들로 북적

국회 빈소 주변에는 노란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물병과 빵을 나눠주는 등 조문객들의 안내를 맡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DJ로드, 시민연대, 노사모, 노삼모(노무현 전 대통령과 삼겹살 파티를 준비하는 모임) 등의 동호회 회원들로서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20일부터 22일 현재까지 총 7백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광장에서 시민들을 안내하던 장경애(34)씨는 "어제 오후부터 밤새 일했다. 계속 조문객들이 끊이지 않아 그만 둘 수도 없다"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끝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조문객들을 보면서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찾아올까'하는 생각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20일 오후 5시 35분부터 마련된 국회 빈소에는 22일 오후 7시까지 총 4만7천여 명이 다녀갔고 영결식이 있는 23일 오전 8시까지 방문객들의 조문이 가능하다. 이후에는 국회 출입문 밖에 임시분향소가 설치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김솔미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솔미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기자입니다.
#김대중서거 #국회빈소 #조문 #벙어리장갑 #옥중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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