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여전히 그곳에서 피어나고 있더이다

[포토에세이] 8월에 피어난 우리 들꽃

등록 2009.08.26 15:03수정 2009.08.2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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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취 비바람에 아래로 처진 줄기, 다시 하늘을 향해 오르며 피어나고 있다. ⓒ 김민수


모기 입도 비틀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고 나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가을기운이 느껴집니다. 세상사는 우리의 정신을 헤집어놓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자연은 그냥 무덤덤하게 자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벼 이삭도 서서히 영글어가며 고개를 숙이고, 지난 계절 꽃을 피웠던 과실들도 하나둘 제 속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세상사에 휘둘리지 말고 덤덤하게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참취꽃이 흰 눈 내리듯 피어나면 완연한 가을입니다.
이제 하나 둘 피어나는 것들을 보니 가을 초입에 서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가을꽃들은 수수합니다.
이미 이른 봄부터 새싹을 내었으되 오랜 시간 인내하다가 꽃을 피움에도 화사하기보다는 수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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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오줌 못생긴 꽃이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꽃이다. ⓒ 김민수


여름에 한창 피웠던 꽃, 가을꽃에 바통을 넘겨주기 위해 시들어버린 꽃잎을 마다하지 않고 남은 꽃들을 피워냅니다. 꽃 같지도 않은 작은 꽃들도 모이고 모여 꽃이라고 자신을 드러내어 곤충들을 불러모아 또 다른 자신이 들어 있는 씨앗을 만든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자연에는 수많은 꽃이 있습니다.
홀로 피어나는 꽃이 있고, 무리지어 피는 꽃도 있고, 헛꽃의 도움이 필요한 꽃도 있고, 색으로 곤충을 유혹하는 꽃도 있고, 색깔로 곤충을 불러 모으는 꽃도 있습니다. 이 모든 꽃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어딘가에는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혹한의 겨울에도 양지바른 곳 어딘가에는 꽃을 피워 365일 단 하루도 꽃 없는 날 없이 이어가는 것이 꽃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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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나물 길가에 피어있는 짚신나물, 나그네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 김민수


들판에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도 자신들의 순서를 봐가며 피어나고, 가야 할 때가 되면 갑니다. 지구 위에서 오직 '인간'이라는 종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을 능력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살아남고자 투쟁을 하되 비열하게 싸우지 않고, 될 수 있으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자연입니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싸움이 없어 가만두면 더불어 살아갑니다. 거기에 인간의 욕심이 개입되면 인간도 제어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짚신나물, 그 이름 때문에 드는 상상이긴 하지만 그냥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듯합니다. 인생은 나그넷길입니다. 나그네가 지고 가는 짐은 가벼워야 합니다. 너무 무거우면 나그넷길을 가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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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여뀌 작아도 꽃, 그 작은 것들이 모두 꽃을 피우고야 만다. ⓒ 김민수


이삭여뀌가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제법 볼만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이것도 꽃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꽃 같지도 않은 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침내 피어나는 것을 보면 작은 꽃이라도 꽃의 갖춰야 할 모든 것 다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이른 바 작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그냥저냥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그런 이들이 주류지만 이른바 권력을 쥔 자들, 똑똑하다는 이들이 주류인 것처럼 현혹합니다. 작은 사람의 삶이 별 볼일 없는 삶이 아니라 그 역시도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세상은 많이 따스해질 것입니다.

유명인들은 소소한 개인사조차도 화젯거리가 되지만 보통 서민들은 때론 자신의 목숨과 직결된 문제로 고통을 받아도 관심의 영역에 들지 못합니다. 세상이 어쩌자고 이렇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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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자 비바람에 흔들려도 기어이 눕지 않고 일어서는 꽃이다. ⓒ 김민수


힘있는 자들은 힘없는 이들에게 완벽한 윤리 혹은 도덕적인 삶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법의 잣대를 들이댈 때에도 엄격하지요. 그러나 힘있는 자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대한지 모릅니다.

지난주 산책길에 비바람에 쓰러진 줄기에서도 여전히 보랏빛 꽃을 피워내는 영아자를 만났습니다. 땅에 기대어서라도 꽃을 피우려고 하늘로 향하는 마음, 개중에는 비바람에도 여전히 꿋꿋하게 서 있는 영아자를 보면서 힘없어 짓밟히는 이들의 삶을 떠올렸습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기어이 다시 일어서는 풀꽃처럼, 그들도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바람에 고운 꽃잎 상처를 입고 찢긴들 꽃의 역할을 다 하고야 마는 그들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다짐했습니다.

한동안 세상사에 마음을 빼앗겨 그들을 바라보지 못했던 그 순간에도 꽃은 여전히 그곳에서 피어나고 있더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참취 #영아자 #이삭야뀌 #노루오줌 #짚신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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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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