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부랑배 공격으로 부터의 탈주

솟대, 잊혀지고 있는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

등록 2009.08.28 11:50수정 2009.08.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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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제게 휴식이기보다 일종의 수행(修行)입니다. 길 위는 어떤 곳보다 흥미 있는 배움터며 그 길 위에서 조우하는 모든 사람들은 저의 스승입니다. 길 위에서 좀 더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처지에도 관심 갖는 도리를 배웁니다. 내 슬픔이 아닌 일로 눈물 흐르는 야릇한 경험을 얻기도 하고, 내 기쁨이 아닌 일로 내가 더 즐거운 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스승들을 만날 수 있는 길 위에 있기 위해 치르는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라 밖, 길 위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제가 속한 나라 사람들은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를 궁금해 합니다. 아마 그것이 우연히 마주친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거의 모든 나라, 어느 곳에서도 한국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리의 대형전광판광고에서도,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와 손바닥에 감아쥔 핸드폰에도 한국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을 '당신집의 TV와 당신 사무실의 에어컨을 만든 나라', '당신이 타고 있는 버스의 고향'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좀 더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방식으로 한국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대금과 단소 등 목관악기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우선 부피가 작아 어느 배낭에도 소지하기가 싶고 독주악기로서 한국적 가락을 소개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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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에 있는 각종 목관악기. 일부는 제가 만든 것입니다. ⓒ 이안수


또한 태권도가 대단히 유효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모두 군에서 태권도를 수련하게 되고 저도 근 3년간 일주일에 몇 시간을 태권도 연마에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덕분에 태극8장까지 익힌 품새 중의 일부는 몸에 남아있습니다.

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의 모습을 보고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조심스럽게 함께 사진 찍기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나미비아 스와코프문트의 한 클럽에서 알았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 클럽에서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던 젊은 일행들이 제가 등장하자 '미야키'를 연호했고 또다시 사인을 요구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를 원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왜 왔는지, 아프리카를 좋아하는지 등의 질문 공세를 받아야했습니다. 제가 스타대우를 받았던 이유는 남부아프리카에서 인기 있는 무술배우가 미야키라는 배우이고, 영화에서 보이는 모습이 저와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를 미야키로 확신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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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19분, 나미미아 Swakopmund의 한 클럽에 들어서자 많은 젊은이 들이 일제히 저를 주시하고, 일부는 급히 카메라를 꺼내들고 저를 찍었습니다. 어리둥절해진 저도 그들을 찍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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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저를 액션배우인 미야키로 여겼습니다. 저는 미야키가 아님을 거듭 밝혔지만 그들은 사진찍기를 멈추지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사진찍는 것에 행복해했습니다. ⓒ 이안수


타운쉽 방문 중에도 수시로 무술시범을 요구받았습니다. 태극1장 정도의 품새 동작만으로 그들은 감격스러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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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코프문트의 타운십 방문중에도 그들은 제게 무술 시범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태권도의 품새 몇동작으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 이안수


오카방고습지에 들어가기 위해 보츠와나 마운Maun에서 2시간쯤 캠핑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길가에 만들어진 이발소의 합판에 그려진 헤어스타일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저의 촬영 모습을 목격한 한 청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이 그림은 내가 그렸고 너는 내 그림을 찍었으므로 대가를 지불해야한다'고 억지를 세웠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렸다는 것을 믿을 수 없으므로 돈을 줄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이발사와 주변의 몇 젊은이들이 합세하여 저의 카메라를 뺏기 위해 달려들었습니다. 아무 방어 수단이 없는 저는 반격자세를 취하고 허공에 두어 번 발차기 동작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주춤했고 저는 그 순간을 틈타 광장을 가로질러 탈신도주(脫身逃走)가 가능했습니다. 이렇듯 태권도는 여행 중 호신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 한국을 선양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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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 마운의 길거리 이발소 벽에 걸려진 헤어스타일 그래픽. 저는 이 그림의 사진을 찍다가 봉변의 위험에 처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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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잡아라!"를 외치며 저를 쫓아오고 있는 부량배. 왼속을 뻗은 이 자의 왼쪽 어깨너머로 자신의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CHOMIYABANA HAIR CUT'의 간판용 그림이 보입니다. ⓒ 이안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자제품과 악기 그리고 태권도로만 한국을 소개하는 것이 크게 미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을 말할 빌미를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가장 큰 자랑거리일 수 있는 것이 이웃과 서로 상부상조하는 '두레'라고 여겼습니다. 두레와 관련된 시각적 자료와 연관시키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솟대를 떠올렸습니다. 음력 정월 대보름, 마을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솟대를 만들고 그것을 동구 밖에 세우는 행위를 통해 그 마을의 두레정신은 더욱 강화되어갔음이 자명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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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 앞의 솟대. 솟대는 우리의 고귀한 미덕이 담긴 소박한 조형물입니다. ⓒ 이안수


솟대자체만으로도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이 한국의 정서를 간직한 조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솟대를 세우는 행위에 담긴 그 내용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마을의 안녕을 담보하고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며 개인의 소망을 담는 솟대를 세우는 행위는 우리의 정신구조(mentality)를 대변한다고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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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에서 만들어 볼 수 있는 솟대 ⓒ 이안수


외국 친구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소개하기위한 도구로서의 솟대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이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제게 위안이 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솟대강사 활동에 이어 모티프원에서 이제 그 명맥조차
끊어지려는 그것에 대해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도시화에 따른 전통마을의 와해와 더불어 더욱 사분해지고 있는 공동체 정신을 다시 옥여 죄는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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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에서 모처럼 나들이 나온 오지 분교학생들의 솟대만들기 체험 ⓒ 이안수


모티프원에서의 제 솟대강의에는 외국인이 과반수를 차지합니다. 대기업체의 포럼을 위해 참여한 서양의 학자일행이 참여하기도하고 한국의 자매학교를 방문한 일본의 학생이나 지구를 살리는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둔 외국의 생협회원들이 참여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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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기업체를 방문하신 외국의 귀빈에게 한국적 체험을 선물하기위해 모티프원의 솟대강좌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삼성전자의 TAC FORUM에 참가하기위해 오신 내빈들의 솟대만들기. ⓒ 이안수


저는 각 지방마다 그 모양을 조금씩 달리했던 전통적인 방식의 솟대뿐만 아니라 그 조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창작하는 입체작품을 하기도 합니다. 그 소재로 나무와 돌을 사용했던 것에 국한하지 않고 콘크리트나 재생 철을 사용하기도하고 조형을 입체와 부조로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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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중계하는 메신저이기도 한 솟대를 세우며 흐트러진 질서와 화합을 도모하고자했던 선조들의 마음을 솟대를 만들고 강의하면서 더욱 확연하게 읽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솟대 #여행 #모티프원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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