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벙커에 들어간 사이 핵전쟁이 터졌다

로버트 스윈델스의 청소년 소설 <땅속에 묻힌 형제>

등록 2009.08.30 10:14수정 2009.08.3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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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묻힌 형제>겉표지 ⓒ 청소년소설

핵전쟁이 벌어진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현실은 지옥의 다른 이름으로 변했다. <땅속에 묻힌 형제>의 주인공 '대니'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우연히 발견한 벙커에 호기심으로 들어간 사이에 핵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벙커에서 나온 대니는 시체들을 넘어 간신히 집에 온다. 대니를 반겨주는 건 아버지와 동생이었다. 가족을 만난 대니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살아남은 사람들과 힘을 모을 것인가. 과거의 실수를 거울삼아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인가. 대니는 그럴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핵전쟁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욕심이 세상을 더 지옥처럼 만든다.


<땅속에 묻힌 형제>는 인간의 욕심과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소설이다. 핵전쟁이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면 살아남은 사람 모두가 힘을 합쳐도 살기가 꽤나 고달플 것이다. <땅속에 묻힌 형제>의 '그들', 군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소수의 권력자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럴수록 힘을 더 보태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행동을 한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긴급하게 병원을 만들었으니 심각하게 부상 입은 사람들을 보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가족을 보낸다. 하지만 돌아오는 가족은 없다. 모두 죽였다, 는 소문만 돈다. 방사능 오염을 걱정해서인지, 혹은 식량을 아끼려는 속셈이었는지는 모른다. 가족이 돌아오는 대신 소문만 들려올 뿐이다.

식량을 배급하겠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물품을 뺏어가는 건 어떤가. 사람들은 거세게 저항한다. 그러자 군인들은 총을 앞세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려간다. 대니의 아버지도 그렇게 끌려갔고,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물품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도 아니다. 한 줌의 권력을 쥔 사람들, 그들이 스스로를 위해 사용할 뿐이다.

이기심은, 그리고 잔인함은 '그들'에게서만 보이는 것일까. 아니다. <땅속에 묻힌 형제>의 거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 음식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뺏으려 하고,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간성을 포기했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투쟁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인간성을 포기한 사람들은 그런 것에도 관심 없다. 그저 '나'만 관심 있을 뿐이다.

<땅속에 묻힌 형제>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절망적인 사건이 벌어진 후에 처참하게 사라져가는 인간성과 그 자리를 대신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을 그리는 모습이 여러 모로 닮았다. 그 정도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의 다른 청소년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 모습을 따라 가다보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청소년소설인데,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묘사 '수위'가 너무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저자도 그것을 아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더 '세게', 절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왜 그런 것인가. 따라하고 싶은 생각은커녕 무조건적으로 피하고 싶은 풍경을 보고 생각해보라는 뜻일 게다. 인간성을 상실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이야기만으로도 '핵전쟁'이라는 단어를 두렵게 만든다. 이야기의 세밀한 모습까지 살펴본다면 인간의 이기심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그 과정을 거쳐 <땅속에 묻힌 형제>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잔인하지만 한번쯤, 아니 여러 번 마주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땅속에 묻힌 형제>, 그 묵직함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땅속에 묻힌 형제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원지인 옮김,
책과콩나무, 2009


#청소년 소설 #핵전쟁 #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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