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왜 기무사 군인수첩에 적혀 있나?"

김향수 작가의 항변... 야당 "기무사, 민족학교 교류사업 사찰"

등록 2009.09.01 16:14수정 2009.09.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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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기무사 민간인사찰 관련 민주당, 민주노동당 공동기자회견'에서 사찰 대상이 됐던 어린이작가 김향수씨가 "기무사 소속 군인의 수첩 내용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황당하고 답답했다"며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 유성호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아내가 '몸조심하라'고 하더라. 내가 왜 몸조심해야 하는지 밝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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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대상이 됐던 어린이작가 김향수씨. ⓒ 유성호

사보와 어린이 잡지를 만들던 김향수씨는 현재 어린이와 부모들이 보는 책에 글을 쓰거나 '빛그림'(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책 베스트셀러인 <구름빵>에서도 빛그림 작업을 한 바 있다.

그런 김씨의 이름이 기무사 신아무개 대위의 수첩에서 발견됐다. 기무사의 사찰대상이 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07년에 일본에 있는 민족학교를 다녀왔다. 거기 가서 '내가 너무 모르고 잘 먹고 살았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 민족학교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 것이다. 일본 안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눈물을 흘렸다."

재일민족학교 방문을 계기로 김씨는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재일민족학교 이야기>라는 사진집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2008년 12월 30일 나온 이 사진집은 (사)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그동안 진행해 온 '재일민족학교 책문화교류사업'을 정리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재일민족학교인 기후조선초·중급학교와 도요하시초급학교를 중심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재일민족학교를 방문했다가 참 감동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후원하고 있다는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가 책을 낸다고 해서 기꺼이 도와준 것이다."


김씨는 현재 재일민족학교 책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인터넷카페 '뜨겁습니다'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1월 8일 성균관대 앞 '도마뱀'이라는 술집에서 이 책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그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날 그의 행적은 고스란히 기무사 요원의 수첩에 적혔다.

"내가 군인도 아니고…. 그냥 잘 살고 있다가 재일민족학교에 다녀왔는데…. 왜 내 이름이 군인 수첩에 적혀 있어야 하나? 나는 그림책 작가일 뿐이다."

'05:45 ○○호텔(3명) →뜨겁습니다'에서 '뜨겁습니다'의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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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기무사 민간인사찰 관련 민주당, 민주노동당 공동기자회견'에서 기무사가 사찰한 수첩 내용을 제시하며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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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9일 어느 식당에서 무얼 먹었는지, 어느 모텔에 가서 잤는지 등이 치밀하게 기록돼 있다. 심지어 이아무개씨의 생년월일까지 적혀 있다. ⓒ 이정희 의원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1일 오전 민주당 대표실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가 재일민족학교 책 보내기 운동과 관련된 민간인들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지난달 30일 <오마이뉴스>가 단독보도한 내용과 그대로 일치한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기무사는 지난 1월 9일 새벽부터 11일까지 '재일민족학교 책 보내기 운동'과 관련된 인사들의 행적을 집요하게 뒤쫓았음을 알 수 있다.

기무사 요원은 시간대별로 번호를 매기며 이들의 행적을 기록했다. 이들의 행적은 대체로 지난 1월 8일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출판기념회 행사가 끝난 이후에 집중됐다.

①21:20 出 김향수
②22:50 出(김○○ 동승 3명) 이○○(女) 0▲고 △△79→마티즈
③03:25 出(소나타 이▲ △△95) 인사-이○○(61. 8. 20)→대리
④04:08 出 백○○(4명)
⑤04:15 出도마뱀
⑥04:25 8명(노래방)? 혜화역 오감도(불고기, 함흥냉면)

사찰대상자의 이름을 거의 다 알고 있고, 차량번호와 식당에서 먹은 음식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생년월일까지 메모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S소극장 대표로 알려진 방아무개(연극인)씨가 운영하는 술집의 주소도 적혀 있다.

05:20 出 오감도
05:45 ○○호텔(3명) →뜨겁습니다

이것은 이정희 의원이 '1월 사찰'의 실체를 파악하도록 실마리를 제공해준 메모다. '뜨겁습니다'는 야릇한 언어가 아니라 지난 2003년 개설된 인터넷 카페 이름이다. '뜨겁습니다'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일민족학교에 어린이책을 보내는 운동을 펼쳐왔다. 결국 기무사 사찰대상은 '재일민족학교 책보내기 운동'이었던 셈이다. 

이 의원은 "평범한 회사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회비로 두세 달에 한번씩 어린이 그림책 200-300권을 보냈고, (직접 재일 민족)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책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뜨겁습니다'와 함께 '재일민족학교 책 보내기 운동'을 펼쳐온 곳은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다. 이 협회는 지난 1998년 전국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로 창립해 2005년 (사)어린이와도서관, 2007년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로 명칭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미경 민주당 사무총장이 이 협회의 이사장이다.   

이 의원은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는 2005년 하반기 재일교포 책문화 교류사업을 서울시에 프로젝트 방식으로 제안해서 채택되었다"며 " 2006년부터 예산이 집행되었고 2007년과 2008년 우수사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기무사가 사찰을 시작한 1월 8일 명륜동 소재 도마뱀 술집에서는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책문화교류사업을 서울시에 보고하기 위해 제작된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출판기념회가 열렸다"고 덧붙였다.

절 근처 찻집에서 고구마 먹은 것까지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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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자 재일민족학교에 책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인터넷 카페 '뜨겁습니다' 회원들이 사진집 출간 행사 이후 강화도에 여행한 행적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 이정희 의원실


기무사의 사찰은 출판기념회가 열린 다음날(1월 9일)에도 계속됐다. 같은 날 새벽 N호텔에서 숙박한 '뜨겁습니다' 회원 3명이 이날 낮 12시 20분에 나온 것부터 시작해 12시 25분 H식당에 들어간 것, 14시 40분 다른 사람들이 합류한 것, 16시 42분 승용차를 타고 어디론가 출발한 것 등의 행적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1월 9일-10일자 사찰메모에 따르면, 이들은 강화도에 위치한 역사박물관과 성당, 대안학교, 절, 찻집, 활터 등을 방문했다. 특히 강화군에 위치한 한 대안학교의 설립자와 교장 이름, '진보성향'이라는 메모가 눈길을 끈다. 다음은 1월 10일자 사찰메모다.

11:30 出 내가 저수지(펜션)
11:50 낙조대(낙조봉) 적석사(차집/고무마)
13:10 出
13:25 入 현궁터(남한산성)
13:40 出(오○○와 헤어짐)
15:00 서울역(해장국집 入)
15:30 出 서울역
17:00 도착
17:20 302호(빌라)

이 의원은 "1월 8일 행사가 끝나고 강화도 근처에 여행을 갔는데 조그마한 찻집에서 다른 손님도 없이 호젓하게 고구마를 먹은 것까지 기록돼 있다"며 "또 1월 9일에는 한 대안학교의 이름과 교장 이름, 설립자 이름까지 적고, 맨 아래에는 진보성향이라고 낙인까지 찍어놓을 정도로 기무사의 사찰은 광범위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의원은 "기무사의 사찰은 1월 8일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며 "(출간기념회) 당일 행사에 참여한 사람이 100명이 넘었는데 사찰기록에 의하면 바로바로 이름을 적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얼굴과 직함, 이름 등을 사전에 정확히 숙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며 "오아무개씨는 고향이 남원인 것까지 적시돼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아무개씨는 책 제작을 후원했을 뿐인데 새벽 3시 25분에 인사를 하고 대리운전을 한 것까지 사찰당했으며, S소극장 대표인 방씨는 장소를 빌려줬을 뿐인데도 사찰대상에 올랐다"고 말했다.

또한 이 의원은 "기무사는 12일 보도된 이후 21일이 지났지만 제대로 해명도 하지 않고 거짓말로 일관하며 오히려 직무범위 내 합법적인 활동이라고 한다"며 "기무사가 합법적이라면 민간인 사찰의 피해자는 간첩인가, 고위급 군사기밀을 탐지하는 사람인가"라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 피해자를 중대 범죄자로 만드는 2차 가해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국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파렴치한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5공시절의 국정원·기무사·경찰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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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진상규명위원장 원혜영 의원이 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기무사 민간인사찰 관련 민주당, 민주노동당 공동기자회견'에서 "기무사 민간인 사찰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권력기관을 통치수단으로 삼는 관행을 청산하고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제도적 노력이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무위로 돌리고 정보기관을 통치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도 이러한 여러 움직임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원 의원은 "1990년도 노태우 정권 때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밝혀진 민간인 사찰이 그 이후 정권 차원의 노력을 통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부활했다"며 "재발방지대책을 강력히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원 의원은 "이명박 정권의 등장 이래 국정원장,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가 부활했고, 경찰의 정보과 형사들이 대운하 반대를 하던 교수들을 사찰하고 있다"며 "5공 시절의 경찰, 기무사, 국정원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 의원은 "이번 민간인 기무사 사찰을 계기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를 통해서 이명박 정권 이후 국가 정보기관들이 조직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한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도높은 진상규명활동을 예고했다.

원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방위와 정보위 국감을 통해 기무사의 역할과 기능을 전면적으로 점검하겠다"며 "중복되고 불필요한 기능을 과감히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겠다"며 예고했던 브리핑까지 취소했다.
#기무사 민간인 사찰 #이정희 #뜨겁습니다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김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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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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