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비정규직 교수

고려대로 교환학생 온 부산대생, 거리의 비정규직강사를 먼저 만나다

등록 2009.09.02 08:54수정 2009.09.0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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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일 고려대학교에서 첫 수업을 들었다. 이제 대학에서도 고학번 축에 들었지만 새로운 학교에 대한 기대를 안고 교정에 들어섰다. 그러나 고려대에서 나를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부산대학교에서 내가 늘 보아왔던 그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늘 보았던 '비정규직'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번 학기에 부산대학교에서 고려대학교로 교환 학생을 신청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역시 이명박정권의 영향이 컸다. 올해 서울에서 촛불을 들었다가 경찰에 의해 몇 번 잡혀갔는데, 첫 번째 질문이 '왜 서울에 왔냐?'는 것이다. 대학생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 서울에 올라와 있었는데, 경찰이 원하는 대답을 하는 꼴이 되어 막당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고려대학교 교수님들의 수업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래서 강의계획서를 꼼꼼히 검토하며 열심히 멋진 수업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평범한 학생으로 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고려대학교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88명의 비정규직교수가 하루아침에 해고되어버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기막힌 것은 그즈음에 부산대학교의 비정규직교수들도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작년에 부산대비정규직교수노조가 결성되고 처음으로 임금단체협상을 맺었는데, 1년도 안 되서 해고가 된 것이다. 서울에 있는 최고의 명문사학이라 자부하는 고려대학교도, 지역에서 글로벌 대학으로 나아가겠다는 부산대학교도, 비정규직교수들을 해고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보다. 학문을 사랑하고, 학문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최고가 될 수는 없을까?

 

  학교를 믿고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수업이 폐강되어 적지 않게 당황한 듯하다. 이번에도 역시나 학생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기업이나 학교에서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가 효율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졸속 행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혼란과 비효율, 학생들의 피해는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런 연유로 고려대에서 처음으로 만난 교수님은 강의실에서의 교수님이 아니라, 거리의 비정규직교수님이었다. 고려대 비정규직교수 김영곤 선생님은 대학강사의 교원지위를 법적으로 명시한 고등교육법개정을 위해 국회 앞 천막농성을 730여일 째 이어온 분이다.

 

  "임금인상?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교원으로서의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야 강사가 소신과 양심에 따라 연구하고 토론식 수업이 가능해져요. 그렇다면 대학교육의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입니다. 학생들의 수업권과도 연관되어 있어요."

 

  함박웃음을 지으며, 주변에 고려대로 유학 온 학생이라고 나를 소개시켜주시던 김영곤 교수님은, 부산대학교의 상황도 궁금하셨던지 이런저런 것을 나에게 물으셨다. 그리고는 자신의 소신을 열정적으로 말씀하셨다. 정작 당신은 나이가 55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법개정과 해고된 비정규직교수들을 위해 싸우고 계시는 열정적인 선생님이셨다. 그런 선생님을 보며 고려대학교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대학교에서 첫 강의를 듣고 나올 때 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다니는 한 후배로부터 문자가 왔다

 

  '비정규직교수 해고 되서 수업 폐강이래요 -_-;;'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교정으로 나왔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만이 차별 없이 우리들을 바라봐 주고 있었다.

2009.09.02 08:54 ⓒ 2009 OhmyNews
#비정규직교수 #김영곤 #고려대학교 #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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