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에 맞아죽을 위험

그는 과연 하느님을 믿는 사람일까

등록 2009.09.03 09:58수정 2009.09.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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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사노라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별스런 사람들을 다 보게 된다. 또 이런 소리 저런 소리, 이런 일 저런 일을 두루 겪게 마련이다. 그게 바로 인간 세상의 속내다. 나이 먹어가면서 세상 물정도 웬만큼은 알아채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세상의 보편적 이치도 알만큼은 알기에, 어떤 상황에서는 관용과 초연의 미덕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관용과 초연의 미덕을 올곧게 유지했다 해도, 그게 과연 옳은 처신이었을까 하는 슬픈 의문과 후회가 앙금처럼 남는 경우가 있다.

 

수년 전부터 구성원이 꽤 많은 한 상조 단체에 참여해서 매월 정해진 날에 모임에 참석한다. 구성원 중에 걸걸한 음조로 유난히 말을 잘하는(?) 후배가 있다. 걸쭉하면서 과격하기도 한 언사가 어느 모로는 재미있기도 해서 대개들 귀담아듣고 웃음으로 호응하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감내'라는 단어를 껴안고 초연(超然)하려고 애를 쓴다. 너무도 거침없고 지나친, 마구 욕설을 섞기도 하는 언사가 불안하기도 하고 반감이 솟기도 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 친구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초청한 K 목사의 특별 설교를 들었다고 했다. 귀담아 들은 얘기를 침이 마르도록 해댔다. 그 목사가 우상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 후 그 친구는 K 목사의 책을 탐독하는 모양이었다. 한 번은 또 열렬하게 책 얘기를 했다. 자신의 표현대로 '이빨 까는 데는 선수'여서 또 모두들 재미있게 들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일찍부터 그 목사를 수구 쪽에서 기생하는 얼치기 지식인, 목사나부랭이 정도로 보고 있는데, 그를 잘 모르는 이들은 그 이름을 뇌리에 단단히 새겨두는 것도 같았다.

 

모임을 끝내고 나올 때 한 후배가 내게 물었다.

 

"선배님은 왜 가만히 듣고만 계십니까?"

 

아,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친구도 있구나! 그 사실에 감격하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아마도 5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책이라곤 그 목사 책 하나만을 읽었을 거야. 나는 그 친구와 논쟁할 수 없어. 책 백 권을 읽은 사람하고 한 권 읽은 사람하고 싸우면 백 권 읽은 사람이 지기 마련이거든. 나는 그 친구와 논쟁할 자신도 없고, 단순함과 무지함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야. 내가 한마디하면 열 마디 백 마디를 하고 덤벼들 텐데, 내가 무슨 수로 감당하겠나?"

 

그러자 그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이 웃었다.

 

그 후 한 번은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두어 달 전에 겪은 잊혀지지 않는 일이다. 시간이 오래 흘러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다. 어지간히 술을 마신 성싶은 예의 그 후배는 특유의 크고 걸쭉한 소리로 이른바 진보 세력, 좌익 세력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나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이분법적인 용어 자체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면서도 그의 발언을 인내하며 들었다. 그 친구는 급기야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징역을 1년만 살고 나올 수 있다면, 촛불집회를 하는 것들, 노무현 분향소 앞에 줄지어 서 있는 것들을 기관총으로 모조리 쏴 죽이고 싶어!"

 

그 말에 여러 사람이 동조 또는 재미있어 하는 웃음을 지었고, 한 친구가 "염치도 좋다.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고도 감옥에서 일년만 살고 나오기를 바라냐?"라는 말로 핀잔을 했는데, 그도 역시 웃는 얼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국면에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화제를 바꾸어서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내년 지방선거에도 모 정당 후보로 출마가 예상되는 친구를 지원하는 발언을 하는 것까지 꾹 참고 들어주었다. 감내하기가 정말 힘이 들었지만 용케 참았다. 그리고 식사를 끝내자마자 먼저 일어서서 그곳을 나와 버렸다.

 

그 날 밤 나는 길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후배가 나를 의식하지 못했거나, 내 성향을 전혀 알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나를 훤히 의식하면서도 물불 안 가리고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생각할수록 궁금하면서 모욕감이 커져 올랐다. 그가 내 성향을 몰라서 그런 말을 했다면, 내가 지역사회에서 너무 안이하게 살았다는 얘기 아닌가? 또 그가 내 성향을 잘 알면서도 그런 말을 했다면 나를 우습게 본다는 얘기 아닌가?

 

그런 국면에서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 참고만 있었는지 나 자신이 의아스럽기도 했다. 내가 너무 유약하고 비겁했던 건 아닐까? 그 감내가 과연 관용이고 초연일 수 있는 걸까? 나 자신에 대한 모멸감과 후회도 여간이 아니었다.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한 달 내내 그 모호한 의문들 속에서 살았다. 나는 그 후배가 마구 쏘아댄 기관총에 이미 맞아 죽은 사람일 수도 있는 처지였다. 가만히 앉아서 총 맞아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총 맞아 죽을 바에는 싸우다 죽는 편이 낫고, 이판사판이라는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 달 모임에 과감히 '노짱 티셔츠'를 입고 갔다. 나는 요즘 어디를 가든 노짱 티셔츠를 입고 가지만, 5·60대 수구적 관습과 사고방식이 응고된 채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그 모임에 노짱 티셔츠를 입고 가는 것은 가히 모험이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닌 그 친구는 내 가슴팍을 보면서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상황은 싱겁게 끝났고, 나는 총을 맞아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 <태안신문> 3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2009.09.03 09:58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충남 태안 <태안신문> 3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기관총 #촛불집회 #시민 분향소 #노짱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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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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