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그러나 아닌, 간도를 아십니까?

등록 2009.09.04 13:25수정 2009.09.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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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4일은 100년 전인 1909년 일제(日帝)와 청(靑)이 간도협약이란 걸 맺은 날이다. 고려대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막걸리 찬가'의 가사 중 '만주 땅은 우리 것 태평양도 양보 못 한다'에서 '만주'가 바로 간도(間島)에 해당한다. 간도는 우리 땅인가?

이 지역은 멀리는 발해와 고구려,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득히 먼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건 난센스다. 그러나, 가까이 조선시대 후기에 조선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여 살았던 땅이고,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만한 몇 가지 근거는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와 시민단체들이 간도를 되찾아야 한다며, 100년 시효를 넘기면 영원히 중국 영토가 된다며 애를 태우고 있는 현실이다.

간도협약의 골자는, 일본이 청으로부터 남만주철도 부설권과 탄광 채굴권을 얻는 대신에 조선과 청의 국경을 압록강과 도문강(圖們江)으로 함으로써 간도지역을 청의 영토로 인정해준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두만강이라고 부르는 이 도문강이 문제다.

중세시대에서 근대국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국경문제가 대두된다. 조선과 청도 국경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양국 대표가 만나 합의를 하고 백두산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숙종 때인 1712년의 일이다. 내용은, 조선과 청의 국경은 압록강과 토문강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1800년대 후반이 되어 다시 국경문제가 대두되는 바, 토문강(土門江)에 대한 해석을 두고 옥신각신 하게 된다.

청은 토문강이 도문강(圖們江, 즉 두만강)이라 주장하고, 조선은 송화강 지류인 토문강이라고 주장한다(한자는 다르나 중국식 발음이 같다). 토문강이 맞다면, 백두산에서 송화강 지류인 토문강 동쪽지역인 이른바 북간도는 조선의 영토가 되는 셈이다. 이 지역은 중세시대에 임자 없는 땅으로 조선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사실은 북간도뿐만이 아니라 동간도 서간도에도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일본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북간도는 지금 우리 영토로 귀착되었을 확률이 높다 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발행한 1963년 6월28일의 '주은래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주은래는 이것을 대국쇼비니즘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간도협약을 포함하여 강압에 의해 맺은 모든 조약의 무효를 선언한 바가 있다. 뿐만 아니라 1915년 일본과 중국이 체결한 '만몽조약' 이후 간도협약의 대부분이 소멸했으며,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 이후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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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사관 건물 용정시내에 있는 일본영사관 건물. 동북3성 지역에는 예외없이 모든 간판에 한글을 병기하도록 돼 있다. ⓒ 김동민


간도지역은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하던 시기에 조선 사람들이 정부를 세워 실질적인 통치를 했다. 독립군을 두고 세금도 거뒀다. 간도에서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치열했던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가 대표적이다. 보천보전투로 유명해진 김일성부대의 활동 무대도 간도였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 후반부 무대가 되는 용정이 바로 이곳이다.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 등이 다녔던 명동학교 등 수많은 애국지사와 투사들을 길러낸 교육기관도 수두룩했다. 일제가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살륙작전을 벌인 곳도 간도요, 용정의 일본총영사관은 지금 역사교육장으로 남아 있다. (고)조선까지 거슬러가지 않아도 간도가 우리 땅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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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학교 교사 건물 명동학교 및 간도의 역사를 증명하는 칠판이다. ⓒ 김동민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중국 정부에게 우리 땅이니 돌려달라고 할까? 그건 아니다. 100년이 지나서가 아니다. 100년 시효설은 터무니 없다. 따라서 현실적인 운동 방향은, 일제의 만행과 청 및 중국의 영토욕에 의해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 중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재 동북3성이라 불리는 간도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다.

'간도협약 무효'를 선언하는 것도 의미는 있으나, 선언 이전에 이미 무효였다. 앞으로는, 간도역사를 부정하는 동북공정을 바로잡아 역사를 바로 세우고, 자치구에서 조선동포들이 터전을 지키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창조한국당 홈 페이지에 올린 글


덧붙이는 글 창조한국당 홈 페이지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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